[include(틀:신라 추존 국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 {{{#FBE673 '''동륜태자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신라의 왕자/혁거세 거서간 ~ 문흥왕)] ---- [include(틀:역대 신라 태자)] ---- [include(틀:성골)] ----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0%, #4A2D5B 20%, #4A2D5B 80%, #3A2646); color: #fbe673" '''신라의 태자[br]{{{+1 동륜태자 | 銅輪太子}}}'''}}} || ||<|2> '''출생[br]{{{-3 (음력)}}}''' ||550년 전후[* 아버지 진흥왕(534년 출생)의 생년을 역산] || ||[[신라]] [[서라벌|금성]] || ||<|2> '''사망[br]{{{-3 (음력)}}}''' ||[[572년]] [[3월]] || ||[[신라]] [[서라벌|금성]] || || '''능묘''' ||미상 || ||<|2> '''재위기간[br]{{{-3 (음력)}}}''' ||'''{{{#fbe673 신라의 태자}}}''' || ||[[566년]] ~ [[572년]] [[3월]] {{{-2 (6년)}}}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경주 김씨]] || || '''휘''' ||동륜(銅輪) || || '''법명''' ||전륜(轉輪) || || '''부모''' ||부왕 [[진흥왕]][br]모후 [[사도부인]] || || '''형제자매''' ||동생 [[진지왕|김사륜]], 김구륜 || || '''배우자''' ||[[만호부인]] 김씨 || || '''자녀''' ||아들 [[진평왕|김백정]], [[김백반]], [[김국반]] || || '''종교''' ||[[불교]] || ||<|2> '''별호''' ||'''동륜대왕(銅輪大王)''' || ||'''동륜태자(銅輪太子)[* 삼국유사 왕력편에서의 명칭.]''' || || '''작위''' ||[[왕태자]](王太子) || || '''골품''' ||[[성골]](聖骨) ||}}}}}}}}} || [목차] [clearfix] == 개요 == [[신라]]의 [[왕족]]. 신라 24대 왕 [[진흥왕]]과 [[사도태후]]의 장남이자 25대 [[진지왕]]의 형, 26대 [[진평왕]]의 아버지. 이름은 4명의 [[전륜성왕]] 중 하나인 동륜왕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동생 김사륜(진지왕)의 사는 [[순우리말]] [[쇠]]를 음차한 것, 즉 동륜왕 다음인 철륜왕을 의미한다. 이 시기 신라는 [[불교]]에서 왕족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흔했다. == 생애 == 진흥왕이 신라의 영토를 확장해 포석을 닦아두고 장남으로서 태자에 책봉되어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지만 572년, 아버지보다 먼저 요절해버렸다. 사망 당시 많아봐야 20대 초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진흥왕은 아직 겨우 38세였는데, 말년에 [[불교]]에 심취해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것이나 진흥왕 본인도 몇년 못 가 요절[* 동륜태자가 죽고 4년 뒤인 576년에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한 것도 태자를 너무 빨리 보낸 충격 탓일지도 모른다. 고모 [[만호부인]]과의 사이에서 이미 [[김백정]], [[김백반]], [[김국반]] 세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려서인지 결국 진흥왕의 차남 사륜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진지왕]]이다. 하지만 색만 밝히고 방탕하게 횡음했기에 5년만에 폐위당하고, 결국 동륜태자의 아들 김백정이 [[진평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왕위가 동륜태자의 동생에게 잠시 갔다가 다시 동륜태자 계열로 돌아온 셈. [[위서]]일 확률이 높은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위 사망 과정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는데,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와 눈이 맞아 몰래 보명궁을 들락거렸는데 담을 넘는 중 그만 [[개]]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 얼마 뒤 죽었다고 한다. [[골품제]]에서 [[성골]]의 기준이 동륜태자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골품제에 대해서는 6세기 이후에 대한 기록부터 적혀있고 동륜태자의 자손인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까지가 성골, 동생인 사륜의 후손인 태종 무열왕을 비롯한 다른 왕족들은 진골이니만큼 유력한 가설로 지목되고 있다. == 같이보기 == * [[전륜성왕]] == 둘러보기 == [include(틀:신라 왕실)] [[분류:신라의 추존 왕]][[분류:572년 사망]][[분류:신라의 왕태자]][[분류:근친상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