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성문화]] [include(틀:상위 문서,top1=대한민국/문화)] [include(틀:대한민국 관련 문서)] [include(틀:세계의 성문화)]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성문화]][* 성문화의 정의에 대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다. == 시대별 변천사 == 현재 [[대한민국]]은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성에 다소 보수적인 나라로 여겨지곤 하지만, 과거부터 항상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래는 시대에 따른 한국 성문화의 변천사에 대해 다룬다. === 삼국시대 === 삼국 중 가장 마지막까지 존속했던 [[신라]](기원전 57년~서기 935년)가 멸망하고 1,000년 이상 지난 만큼 현대인들에겐 아득한 과거로 취급되는 게 삼국시대지만, 현대 여느 나라 못지 않게 개방적인 성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시대였다. === 고려시대 === 고려시대에도 개방적인 성문화는 여전했는데, 이는 유명한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잘 나타난다. 쌍화점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 여인이 [[무슬림]] 상인에서부터 [[승려]], 심지어 [[용]]([[왕족]]의 은유)에게도 [[성관계|손목을 잡혔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이런 높은 수위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즉 '음사'([[淫]][[辭]])라 하여 배척받았다고 하지만, 소실되지 않고 현대까지 남아있는 걸 보아 당시에는 이보다 더 높은 수위의 성적 묘사를 한 작품들도 많았을 것이다. [[송나라]] [[휘종(송)|휘종]]대에 [[사신(외교)|사신]]으로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이 개경에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을 곁들여 기록한 <[[고려도경]]>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 '여름철에 시냇물에서 [[혼욕|남녀 구별 없이 옷을 벗고 목욕하였다]]'는 대목이 있으며,[* 여담으로 고려인들이 [[중국인]]들을 두고 더럽다고 욕한다는 사실도 언급되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더럽다고 인식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걸로 보인다.] 고려인들의 남녀관계를 경합이리([[輕]][[合]][[易]][[離]]), 즉 '[[원나잇 스탠드|쉽게 만나 쉽게 헤어진다]]'고 표현하며 [[성진국]]으로 취급했다. 또한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는 '곳곳의 절에서 여자들이 술 먹고 춤추며 놀아 풍기가 문란하다'고 고려의 성풍속을 묘사했다. 이러한 인식은 [[유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송나라와 조선과는 달리,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는 상대적으로 유교의 영향력이 약했기에 성적 개방성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적 유희에서의 개방성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사회적 지위도 [[조선|후대]]에 비해 훨씬 평등했다. 과거 [[원나라]]에서는 [[축첩]]이 인정되었는데, [[충렬왕]] 때 [[박유]]라는 신하가 이를 보고 '고려도 축첩제도를 도입하자'고 국왕에게 건의했다가 온 고려 여성들의 비난을 산 일이 있을 정도였다. [[부모]]의 사후 유산 [[상속]]도 [[장남]]을 제외한 모든 [[아들]]과 [[딸]]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었고, 조선시대와 달리 [[과부]]의 [[재혼]]도 가능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도 [[동성애]]는 상당히 터부시되는 일이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선 상류층 남성들 사이에서 [[와카슈도]]라는 [[미소년]]과의 남색이 유행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하층민 출신이라 남색을 즐기지 않아 [[풍류]]를 모른다고 까였을 정도였다. 대신 도요토미는 [[여색]]을 굉장히 밝혀 늦둥이를 두기도 했다. 가신들이 "도요토미는 교양도 없는 호색한"이라는 소문을 잠재우려 미동들을 여럿 뽑아 바쳤으나 도요토미는 미동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미동들에게 누나가 있냐고 물었다.], [[고대 그리스]]에선 군대에서 사기 진작 목적으로 동성애가 장려되었던 것과는 대비된다.[* [[로마 제국]]도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동성애를 다소 이질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하나의 풍속으로 인정했었는데,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이후 탄압하기 시작하여 이는 [[중세]] 유럽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많은 고려국왕들이 동성애를 즐겼고 [[목종(고려)|목종]],[* [[강조(고려)|강조]]가 반정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하고 [[현종(고려)|현종]]을 옹립하며 내세운 명분 중 하나가 목종의 동성애였다.] [[충선왕]], [[공민왕]]은 사서([[史]][[書]])에 그 행각이 기록되어 있기까지 하다. === 조선시대 === [[유교]]([[성리학]])를 신봉하는 [[신진사대부]] 세력이 건국한 [[조선]]에서는 이전 시대에 비해 성 관념이 보수적으로 변하였다. 그래도 조선 전기엔 고려의 영향으로 나름 개방적이었으나 [[16세기]] 말 [[일본]]과의 [[임진왜란]], [[17세기]] 초 [[청나라]]와의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은 후 사회가 급격히 보수화되기 시작했다. 즉, 고려시대까지는 여성의 성적인 선택에 제약이 덜하여 한반도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다면, 여성 인권이 떨어져 여성의 성적인 선택권에 상당한 제약이 걸린 이후에는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회가 된 것이다. [[결혼]] 문화에 있어선 [[연애]] 결혼이 가능했던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와는 달리 [[중매]] 결혼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삼국·고려시대에도 상류층 간의 중매 결혼([[정략결혼]])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남녀의 만남이 자유로워 일반적으로는 연애 결혼을 더 선호하였고 혼례 과정도 매우 간소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 중매 결혼이 주류가 되며 과도한 [[혼수]] 문제가 발생했고, '[[성인]]이 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관념이 퍼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윤회]] 사상을 믿는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삼국·고려시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혈연]]을 중시하여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불효]] 중 하나로 여겨졌기에 대를 이어야 된다는 강박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심했다. <[[맹자(경전)|맹자]]>에서도 나이가 차도록 결혼하지 못한 남자는 광부([[曠]][[夫]]),[* 장가를 가지 않았으니 집에 들어가 봐야 아무도 없기에 허전한 남자.] 여자는 원녀([[怨]][[女]])[* 시집을 못 가 그 원한이 하늘을 찌르는 여자.] 로 표현하였고, 당시 조선 정부에서도 [[노총각]]·[[노처녀]]는 [[홀아비]]·[[과부]] 등과 함께 구제해줘야 할 불쌍한 존재로 인식하여 혼기를 넘긴 전국의 미혼자들을 조사하여 결혼시켜 주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참고로 이전 시대와는 달리 이 시대엔 [[동성동본]] 결혼도 완전히 금지되었다. 이 문단을 읽다 보면 느꼈겠지만, 조선의 결혼 문화는 현대 한국의 결혼 문화에도 깊이 뿌리내려 있다. 남녀 간의 불평등도 심화되었다. 조선의 결혼제도는 공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였으나,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양반]]들 사이에서 [[축첩]]이 매우 성행했기에 실질적으로는 '남자는 [[일부다처제]], 여자는 일부일처제'가 적용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능력만 있다면 여러 여자를 거느리며 살 수 있었던 반면, 여자는 무조건 평생 한 남자만을 모시고 살아야만 했던 처지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편]]이 일찍 죽어 과부가 되어도 [[재혼]]이 금지되었고, 심지어 주변으로부터 남편을 따라 [[자살]]할 것을 강요받는 경우도 있었다. 축첩으로 인해 처첩 갈등이 생겨나기도 했다.[* [[조선 왕실]]의 사례로는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와 [[후궁]] [[희빈 장씨]]의 대립관계가 있다.] 또한 [[부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는 걸 미덕으로 보아 [[이혼]]도 불가능했으며, 여자들 사이에서 악명높은 [[시집살이]]도 조선시대에 시작된 것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하여 남녀의 자유로운 만남을 차단하고, [[칠거지악]]을 내세워 여성을 억압하며 피지배층에 엄격한 성 윤리를 강조해온 것과는 상반되게 [[내로남불|양반 남성들은 쾌락적인 성생활을 누렸다]]. [[풍류]]를 즐긴답시고 [[기생]]과 놀아나며 [[성관계|잠자리]]를 가졌고,[* 단, 모든 [[기생]]=[[매춘부]]는 아니었다. 급에 따라 달랐는데, 일패·이패 기생과 달리 삼패 기생만이 [[매춘]]을 주업으로 삼았다.] [[노비|여비]]([[女]][[婢]])[* 여자 노비. 노비라는 말은 남자 종을 뜻하는 노([[奴]])와 여자 종을 뜻하는 비([[婢]])를 아울러 이른다.] 를 [[겁탈]]하여 [[사생아]]를 만드는 일도 잦았다. 오죽하면 '여비와의 잠자리는 누운 [[소]] 위에 타는 것보다 쉽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 여비는 기생과는 달리 돈이 들지도 않으니 그만큼 자주 범해졌다. [[18세기]]~[[19세기]]에는 [[춘화]]와 성애소설 등 오늘날로 치면 [[야짤]], [[야설]]에 해당되는 [[성인물]]이 유행하기도 했다. === 일제강점기 ===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개항한 [[조선]]에 온갖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며 그 영향을 받은 일부 사람들의 성 관념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여성'([[新]][[女]][[性]])이라 불리는 수준 높은 근대 교육을 받은 여자들은 개방적인 남녀 관계를 추구하게 되었지만[* 다만 이것도 2000년대 현재의 신세대가 보기엔 구시대적인 면이 없진 않았다. 단지 상대적이란 것만 생각하면 된다.], [[농촌]]에 거주하는 절대다수의 저학력 여자들은 조선 후기와 별반 다를 게 없었고 이는 남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1916년 [[조선총독부]]는 [[공창제]]를 도입하며 창녀등록제/성병검진제/영업구역제를 실시했다. [[호주제]]도 실시했는데, 아버지에게 딸의 '공창 취업 승낙권'을 부여해서 아버지가 팔아버린 딸 또는 가난한 집에서 도망쳐 나온 여성 등이 [[매춘부|성매매 여성]]이 되었다. 아직 유교적인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았기에 민간에선 부모나 친척이 이어지는 게 기본이였으며, 이는 아동청소년도 마찬가지여서 현재의 중학교,고등학교인 [[고등보통학교]] 중에서 [[남녀공학]]은 하나도 없었으며, 초등학교에 해당되는 [[보통학교]]조차도 남녀분반이였다. === 광복 이후 === ==== 1940~1950년대 ==== 1945년 [[이승만 정부]]는 '공창제도 폐지령'을 내려 명목상 공창제를 폐지했지만,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모방한 [[한국군 위안부]]를 운영하였다. 휴전 이후에도 이른바 '[[기지촌]]'이라 하여 [[주한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는 매춘부([[양공주]])들이 많았다. 의외로 [[1950년대]]까지 한국에서 [[매춘]]은 불법이 아니었다. 물론 도덕적인 문제는 있긴 했지만 [[고관대작]]들이 [[요릿집]][* 이름만 들으면 단순히 식당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생들이 시중들었던 곳이였다, 물론 그 이후 [[성매매]]까지 한 건 덤이다, 현대로 치자면 식당과 성매매 업소가 같이 한 집에 있었던거나 마찬가지, 여담으로 [[설민석]]이 이걸 갖고 [[설민석/논란 및 사건 사고#s-3.2|3.1민족대표 33인이 룸살롱에 갔다고 하다가 크게 논란이 된 적 있다.]].]에 드나드는 것은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당시는 초등학교는 어느정도 남녀공학이 되었으나, 중고등학교는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를 제외하면 모두 남중남고 혹은 여중여고였다. ==== 1960~1970년대 ====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가 당시 만연해 있던 [[지하경제]]를 뿌리 뽑으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매춘에 규제를 가하며 불법화되었다. 하지만 판매자 및 구매자에 대한 처벌은 가벼운 [[벌금]] 또는 [[구류]]에 그쳤고, 정부가 법이 면제되는 지역을 설정해 [[한국정부의 위안부]]를 운영했다. [[1970년대]]~[[1980년대]]에는 [[일본인]] 남성들이 한국으로 [[기생관광]]을 많이 왔는데,[* 1971년 10만 명에 불과했던 일본인 관광객 수가 1979년에는 65만 명으로 늘어났고, 이 중 85%가 남성이었다.] 당시 일본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이었지만 한국은 [[개발도상국]]에 불과했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성매매를 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당시 한국을 통치했던 [[군사정권]]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외화]] 벌이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는데, 정부 지정 [[유흥업소]] 종사자는 무려 [[야간통행금지]]가 면제되는 혜택을 부여받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에 의해 '외화벌이 유공자'라 칭해지기도 했다. 한편 민간은 40년대~50년대와 별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매우 보수적이였으며, 자유연애가 아닌 친척,가족 등의 소개로 만나는 중매결혼이 대부분이였다. 또한 당시엔 남중/남고, 여중/여고 등 단성학교가 대부분이였고, 이는 2020년대인 현재도 전통이 깊은 학교, 특히 [[대구광역시]],[[경상북도]] 같이 보수적인 지역에 단성학교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 1980~1990년대 ==== 1980년대에 [[12.12 사건]]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부]]는 일명 [[3S 정책]]을 통해 사회 분위기를 어느 정도 자유화시켰으며,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도 이때 폐지되었다. 그리고 1982년 1월 5일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었고 정부가 [[사창가]]에 대한 단속을 느슨하게 함에 따라 전국에 [[유흥업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애마부인]]을 필두로 [[에로 영화]]도 역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만 1992년 [[마광수]] 교수가 소설 '즐거운 사라'를 발표했다가 [[음란물]]로 몰려 구속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3S 정책으로 성적 콘텐츠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이전의 군사정부에 비해선 완화되었긴 하나,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긴 어려웠고 이는 2020년대 현재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엔 [[해외여행]]이 자유화가 되고 [[소련 해체|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및 [[동유럽]]에서 경제난이 일어나자, 러시아/동유럽 출신 여성들이 대한민국의 성매매 업소로 유입이 되기 시작하고, 정반대로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일본의 성매매 업소에 유입되는 일명 원정 성매매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국민의 평균소득이 상승하면서 1970~80년대에 당시 대한민국에 비해 선진국이였던 일본 사람에서 한국으로 온 것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엔 한국 사람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성매매 관광, 즉 일명 "기생관광"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때부터 [[남녀공학]]이 많이 세워졌고, 특히 [[서울특별시]], [[경기도]], [[대전광역시]] 등에선 이 이후 세워진 학교들이 모두 남녀공학인 건 물론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에서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학교가 어느 정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 2000년대~ ==== 비록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성장세가 꺾이긴 하였으나,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 시기 다시 경제적으로 성장하게 되고, 또한 국민의 교육수준도 1990년대에 비해서도 상당히 성장하면서 국민의 [[인권]] 의식은 물론 [[성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한 외환위기의 여파로 가장 한 사람의 수입만으론 생계를 꾸리기 어렵게 되어 [[맞벌이]]가 불가피해지면서 여성도 가정 내에서 일정한 경제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데 또한 [[2008년 세계금융위기]],[[대봉쇄]] 등의 경제위기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코로나 팬데믹과 [[부동산]] 시장 과열까지 겹치면서 신세대 중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으며, 남녀갈등 및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면서 이는 저출산 현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 2000년대에 들어 [[개인주의]]·[[자유주의]]가 대한민국에 확산되면서 가치관 자체가 꽤 많이 변화하였으며, 이로 인해 중매가 대부분이였던 20세기 때와 달리 21세기엔 자유연애로 결혼하는 케이스가 주류가 되었다. ==== 어두운 그림자 ==== 다만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선 어두운 면도 있었는데 위에 언급된 [[한국군 위안부]], [[양공주]] 문제 뿐만 아니라 1980년대~1990년대, 심지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성매매 특별법]] 문서에서 보듯이 막 상경을 한 여성을 취업시킨다고 속여서 성매매 업소로 넘기는 경우와 심한 경우 길을 가던 여성을 납치하거나 등하교 하던, 혹은 시내에서 놀던 여중고생을 납치해서 성매매 업소에 팔아넘기는 등의 범죄 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2023년 7월 7일 전두환 정부 - 노태우 정부 당시 인신매매에 대해 취재한 MBC의 과거 영상을 묶어 만든 MBC 한국범죄백서에도 나온 내용이다. [[https://v.daum.net/v/20230705091033170|#]]][* 그래서 노태우 정부가 [[10.13 특별선언|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할 때 이유로 내세웠던게 조폭들의 인신매매였다.] 그러다가 2000년, 2002년에 일어난 [[군산 화재 참사]]를 계기로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이로 인해 성매매에 대한 처벌이 강화가 되면서 발생하는 건수가 줄어들긴 했다. 다만 이와 동시에 [[풍선 효과]]가 나타나면서 [[키스방]] 등 변종 성매매 업소가 우후죽순 생겨 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이는 2020년대인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와 동시에 2000년대에 들어선 IT 기기의 발달과 일부 남녀의 왜곡된 성적 관념의 결합으로 인해 [[n번방 사건]], [[그루밍#s-3|온라인 그루밍]] 등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도 생겨나는 중이다. == 현황 및 전망 == 현대 한국의 성문화는 개방과 억압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 물론 1950~70년대에 비해 개방적으로 바뀌긴 했으나, 아직 서유럽, 북유럽이나 미국의 진보적인 주와 비교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도 [[2000년대]] 이후로는 서구의 개방적인 성문화가 퍼지면서 국내 성인물 시장도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음지에선 이미 퍼질대로 퍼져 있고, [[풍선효과]]로 인해 단속을 해도 끝이 없을 지경이다. [[포르노]]를 [[다운로드]]를 하거나 시청하는 것 자체는 합법이지만[* 허용되었다기보단 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들지도, 보여주지도 못하면 원칙상으로는 볼 수도 없기 때문.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문호가 뻥 뚫려버린 지금은 옛날 얘기.], [[업로드]]와 [[공유]]를 막거나, 크게 제한을 걸어 세대간에 논란이 크다. 전통적인 [[사회보수주의|유교적 보수주의]]와 [[기독교 우파|기독교적 엄숙주의]]가 21세기부터 퍼지는 [[자유주의]]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으며, 여전히 성생활에 대해 숨기고 부끄러워하고 가리는데 급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거부감이 적은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급작스런 도약을 해버린 나머지 전체적으로 [[세대 차]]가 많이 나며 보수적 장년층은 그 문화충격을 극복 못하고 규제와 검열로 탄압을 가하기도 한다. 젊은층은 이러한 [[문화적 보수주의]]에 반감이 크며 [[성적 억압]]과 [[성적 자유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동성애]] 역시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나 동성애자들의 연대와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으며 젊은층을 중심으로 그 인식도 바뀌어가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대에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주요 이슈화되고 인해 현재까지도 젠더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포르노를 성적대상화로 보는 여성계와 기존 성적 보수주의와 결합되어 대한민국에서는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이 강화되어 성에 대해 언급하는게 힘들어지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 2010년대 초반까지도 포르노에 대해서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농담의 소재가 되었을 정도였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는 n번방 사건과 불법촬영물 사건의 이유를 내세워 포르노에 대해 언급하는게 힘든 정도가 되었다.] 다만 이러한 분위기에 반발하여 국내 검열이 약한 유튜브에서는 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루거나 일본 AV배우가 한국 유튜버 방송에 출연하는 등의 모습이 보여지긴 하지만 아직은 여성계와 기성세대 위주로 [[성적 보수주의]]가 여전히 강하기에 완전히 개방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전반적인 인식으로는 보수적인 부분도 남아있고, 깊이 빠져들수록 기성세대의 검열로 인해 문화 향유에는 불편한 점이 많지만 주로 젊은 층에서 인식과 사회 자체는 예전보다 개방적이다.[* 다만 젊은층 사이에서도 남녀별로, 그리고 분야별로 차이가 존재한다. 안티포르노 페미니즘를 지지하는 젊은 여성들도 많기 때문일 뿐더러, 리얼돌 등 비주류 성인용품을 싫어하는 젊은 남성들도 존재한다.] 물론 아직은 청년층도 아무리 예전보다 개방적이라도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개방적인 서유럽과 북유럽, 중남미 그리고 미국의 서부 해안이나 동북부[* 미국인 경우는 서부 해안가나 동북부인 경우는 서유럽보다 약간만 보수적이지만, 남부나 중부, 그리고 유타주인 경우(특히 도심보다 농촌의 경우 등)는 기독교 보수세가 아직도 있어서 동유럽, 그리스보다 더 보수적이다. 심지어 한국의 1970~1980년대 수준인 곳도 있을 정도이다. 개방적인 지역과 보수적인 지역의 차이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중에 하나가 미국이다.] 정도는 아니라 여기 해당되는 외국에 나갔다가 문화충격을 받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기성세대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문화충격적 요소가 줄었기 때문에 이에 적응하기도 좀 더 쉬울 것이다. == 타국과의 비교 == *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성문화]]와 관련해서 한국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고 비교되는 나라다. 한국과 달리 [[포르노]] 산업이 [[AV(영상물)|존재]]하는 점,[* 사실 일본에서 AV는 포르노가 아니라 [[에로 영화]]로 취급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일본도 포르노 산업이 없다.] 성행위뿐만 아니라 유사 성행위조차 불법 [[성매매]]로 처벌하는 한국과 달리 유사 성행위 업소가 버젓이 운영되는 점, 방송에서 성적 요소가 쉽게 등장하는 점, [[사촌간 혼인]]이 가능한 점[* 사실 이건 [[한중일]] 중 일본만 가능해서 특이해 보이는 것이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사촌간 혼인이 '''합법인 나라가 불법인 나라보다 훨씬 더 많다.''' 특히 [[OECD]] 회원국 중 [[대한민국]]과 [[미국]] 일부 주를 제외하면 모두 합법이다. 과거 [[조선통신사]] 일행이 방일할 때마다 가장 경악했던 일본의 성문화가 이것이었으며, 현대 [[한국인]]들도 이웃나라인 일본 문화를 서구권 문화보다 더 많이 접하다보니 일본만이 사촌간 혼인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2005년까지만 해도 [[동성동본]] 혼인조차 금지되어 있던 한국인들의 시각에선 꿈도 못 꿀 일이긴 하다. 다만, 합법 여부와는 별개로 일본에서도 사촌간 혼인은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등으로 인해 한국에선 대표적인 [[성진국]]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일본의 성인물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아시아에서 수준 높은 콘텐츠를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과 [[중국]] 정도인데, 두 나라 모두 포르노 산업이 불법이기 때문에 일본의 경쟁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 보면 일본도 성적으로 보수적인 나라에 속한다. 위에 언급된 특징은 어디까지나 '한국에 비해서' 또는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것이지, 대부분의 구미 [[선진국]]에서는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며 이보다 더한 나라도 많다. 일본에서도 성인물은 엄연히 음지에서 제작 및 소비되는 콘텐츠이기에 철저히 음지에만 머무르고 있다.[* [[AV 배우]]가 [[유튜브]] 등 양지에서 활동하는 것이 눈에 띄면 일본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성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밑바닥이다.] 일본도 결국 [[동아시아]] 문화권이기 때문에 양지, 즉 민간사회에선 성 관념에 있어 한국과 비슷하며 한국보다 더 보수적인 면, 더 개방적인 면이 혼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성애]]에 대해 한국보다 더 관대한 개방적인 면도 있지만, 남녀 관계에 있어 한국보다 [[가부장제]] 풍조가 강한 보수적인 면도 있다.] * [include(틀:국기, 국명=중국)]: 고려시대까진 한국이 중국보다 확실히 '''압도적으로''' 더 개방적이었다. [[송나라]] 사신이 고려인들의 [[혼욕]] 문화를 특이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이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조선시대에 가서야 [[유교]]가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 내렸다는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14세기]] 말 유교를 신봉하는 [[신진사대부]] 세력이 [[조선]]을 건국하며 한국도 중국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었고, [[17세기]] 이후론 조선이 유교 [[근본주의]]에 빠지며 중국(당시 [[청나라]])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하였다. [[20세기]] 중후반 중국은 [[공산주의]], 한국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교적 보수주의 등의 영향으로 [[성적 보수주의]]가 사회 전반을 지배했으나, 이후 양국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21세기]] 들어선 점차 개방적인 사회로 향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워낙 넓은 나라다 보니 여전히 동부 해안의 [[도시]] 지역과 서부 내륙의 [[농촌]] 지역 간 성문화 차이가 크긴 하다. 전자는 대체로 한국만큼 개방적이지만, 후자는 아직도 [[혼전순결]]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 [include(틀:국기, 국명=북한)]: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답게 아직도 성문화가 전근대 수준에 멈춰 있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이다. 북한 당국은 [[포르노]]와 [[에로 영화]]를 '[[부르주아]] 사상이 가득찬 것'으로 간주해 이를 제작 또는 시청했을 경우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 [[성교육]] 또한 존재하지 않기에 북한 주민들 대부분은 [[피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인해 [[매춘]]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많은데, 북한 당국에서 관련자들을 [[공개처형]]하는 등 초강경 대응을 하고 있음에도 이를 무마하기 위한 [[뇌물]]이 만연하여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동성애자는 사형에 처한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과 [[조선로동당]] 고위간부들은 여기서 예외이며, 실제로 [[기쁨조]] 등 여러 성 관련 이슈가 터지기도 했다. *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한국에는 [[미국인]]들이 성적으로 굉장히 개방적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실제로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부나 동북부로 갈 수록 진보적이고, 반대로 남부로 갈 수록 보수적인 편. [[뉴욕시|뉴욕]],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등 세속주의적이고 자유분방한 동북부/서부 해안 도시에선 한국보다 확실히 더 개방적이지만, [[바이블 벨트]]를 비롯한 [[기독교]]세가 강한 농촌 지역에선 한국의 [[1990년대]] 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상당히 보수적이다. 참고로 미국은 [[포르노]] 산업 자체가 전무한 한국과 달리 세계에서 가장 큰 포르노 시장을 보유한 나라다. * [[파일:유럽위치.png|width=30]] [[유럽]] : 대체로 서유럽,북유럽으로 갈 수록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동유럽으로 갈 수록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다. 이는 서유럽,북유럽은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큰 반면, 동유럽인 경우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영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 [include(틀:국기, 국명=러시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많은 러시아 출신 [[매춘부]]가 활동하고 있고,[* 사실 이건 러시아 여자들이 성적으로 개방적이라 그렇다기보단,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도 끝없는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게 원인이다.] 인터넷상에도 러시아산 [[포르노]][* 러시아 법률상 합법은 아니지만 개개인에 의해 매우 많이 제작 및 유통되고 있다.]가 범람하고 있기에 개방적인 나라로 생각하기 쉬우나 대체로 마냥 개방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사실 여기는 [[공산주의]]가 도입된 소련 시기만 해도 여성인권이 상당히 보장되었고,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스탈린 시기에 조금 배타적으로 바뀌었을 뿐 현대보다 인권이 보장되었었다. 문제는 [[소련 붕괴]] 이후인데,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가부장제도 다시 강해져서 [[가정폭력]]이 비일비재한 상황이 왔다. 저 두 요소를 제외하면 한국과 비슷하거나 좀 더 개방적인 정도다. * [include(틀:국기, 국명=독일)]: * [include(틀:국기, 국명=프랑스)]: * [include(틀:국기, 국명=스웨덴)]: * [include(틀:국기, 국명=이탈리아)]: * [include(틀:국기, 국명=영국)]: * [include(틀:국기, 국명=폴란드)]: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대한민국/문화, version=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