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대한민국/문화 검열/역사)] [목차] == 총평 == 19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가 서서히 진전되면서 1988~1989년에 월북/납북 작가들의 작품들이 해금되고 공연사전심의가 철폐되는 등 개방이 시작되었으나 아직도 만화, 영화, 음악에 사전검열이 잔존하고 있었고, 특히 1989년 [[문익환]]과 [[임수경]] 등의 무단 방북 사건으로 [[공안정국]]이 형성되어 사회주의 계열 서적 상당수가 금서처분을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 일지 == === 1988년 === ||<-3>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88년''' ||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 [[1988년]] [[3월]] || [[문학]] || 경찰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저서 <좌익소아병의 두 가지 전술>을 판매한 서점주 2명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22200289107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12-22&officeId=00028&pageNo=7&printNo=191&publishType=00010|구속했다.]] || || [[1988년]] [[3월 12일]] || [[신문]], [[잡지]] ||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제정되었다. || || [[1988년]] [[3월 17일]] || [[문학]] || 서울 YWCA 어린이 만화모니터 모임이 지난해 12월부터 동년 1월까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서울시내 어머니 228명을 대상으로 <[[보물섬(만화잡지)|보물섬]]>, <[[소년중앙]]>, <[[새소년]]> 등 3개 어린이 잡지에 실린 만화들을 조사한 결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3170009921300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8-03-17&officeId=00009&pageNo=13&printNo=6780&publishType=00020|유익한 내용을 지닌 만화는 59편 중 19편에 불과했다.]] || || [[1988년]] [[4월 4일]] || [[문학]] || 법원은 1심에서 <한라산>의 작가 이산하에 징역 1년 6개월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40500099209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8-04-05&officeId=00009&pageNo=9&printNo=6796&publishType=00020|선고했다.]] || || [[1988년]] [[4월 19일]] || [[방송]] || 방송법 시행령이 부활하였다. || || [[1988년]] [[5월 16일]] || [[문학]] || 법원은 1심에사 친구출판사의 대표 이상경 씨에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52200289105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5-22&officeId=00028&pageNo=5&printNo=7&publishType=00010|선고받았다.]] || || [[1988년]] [[6월 4일]] || [[연극]] || [[서울대학교]] 교직원들은 6월 1일에 학생회관 라운지 2층에서 6.10 남북학생회담에 앞서 조통특위가 투쟁선언식장에서 인공기를 휘날리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학생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사실 문제의 인공기는 북한 인공기가 아닌 연극 <통일밥>에 쓰일 1946년 조선인민공화국 깃발임이 밝혀졌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60400329215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6-04&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133&publishType=00020|당시 기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6080028910401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6-08&officeId=00028&pageNo=4&printNo=21&publishType=00010|반박 기사]] || || [[1988년]] [[6월 6일]] || [[연극]] || 경찰은 [[서울대학교]] 오월제에서 개최될 희곡 <통일밥> 소품 중 인공기 발견 건으로 대본작가인 주인석과 연극반 회장을 연행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60700289107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6-07&officeId=00028&pageNo=7&printNo=20&publishType=00010|조사했다.]] || || [[1988년]] [[6월 10일]] || [[서적]] || 경찰은 '조국통일학생추진위원회(이하 통학추)'가 편집한 책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를 펴낸 도서출판 남풍을 압수수색하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61000289107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6-10&officeId=00028&pageNo=7&printNo=23&publishType=00010|책 1천여권을 압수하고 영업부장 박완규 씨를 연행했다.]] || || [[1988년]] [[6월 11일]] || [[연극]] || 경찰은 희곡 <통일밥>의 내용과 관련하여 필자인 주인석 씨와 서울대 연극부장을 불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61200289107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6-12&officeId=00028&pageNo=7&printNo=25&publishType=00010|조사했다.]] || || [[1988년]] [[6월 22일]] || [[서적]] || 문화공보부는 <잠들지 않는 남도(노민영 엮음)>, <제주민중항쟁(아라리연구원 엮음)>, <해방조선> 등 7종에 대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하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6230020921402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6-23&officeId=00020&pageNo=14&printNo=20529&publishType=00020|검찰에 고발했다.]] || || [[1988년]] [[6월 23일]] || [[서적]] || 검찰은 <잠들지 않는 남도>, <제주민중항쟁>, <해방조선> 등 6종의 사회과학서적에 국보법에 저촉되는지를 심사해달라는 문화공보부의 사법심사의뢰를 받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6230032920101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6-23&officeId=00032&pageNo=1&printNo=13149&publishType=00020|'불온좌경서적' 여부의 검토에 나섰다.]] || || [[1988년]] [[7월 1일]] || [[문화]] || 정부와 민주정의당이 발표한 '미수교국 예술작품 국내개방' 시책에 따라 북한, 일본, 남아공을 제외한 중국, 소련, 동구권 등 준적성국가의 음악 등 순수 예술작품들이 개방되었다. || || [[1988년]] [[7월 19일]] || [[문학]] ||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7.7 특별조치의 후속조치로 문화공보부는 [[백석(시인)|백석]], [[박태원(소설가)|박태원]], [[임화]], [[이태준(소설가)|이태준]] 등 1백 20여명에 달하는 월/납북 문인들의 작품들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71900329201005&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7-19&officeId=00032&pageNo=1&printNo=13171&publishType=00020|해금 조치시켰다.]] || || [[1988년]] [[8월 9일]] || [[연극]] || 경찰은 <통일밥>의 작가인 주인석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8100028910701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8-10&officeId=00028&pageNo=7&printNo=75&publishType=00010|구속했다.]] || || [[1988년]] [[8월 25일]] || [[만화]] || 서울 YMCA/YWCA, 대한어머니중앙연합회, 전국주부교실중앙회, 한국청소년도서출판협의회, 한국소비자연맹 등 7곳의 시민/사회단체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82500099209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8-08-25&officeId=00009&pageNo=9&printNo=6916&publishType=00020|불량도서 추방운동을 동년 10월부터 연말까지 한국도서출판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 주관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 || [[1988년]] [[8월 26일]] || [[문학]] || 법원은 항소심에서 <한라산>의 작가 이산하에 대해 원심대로 징역 1년 6개월과 자격정지 1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82700289107007&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08-27&officeId=00028&pageNo=7&printNo=90&publishType=00010|선고했다.]] || || [[1988년]] [[9월 9일]] || [[도서]] || 경찰은 서울 종로구 당주동 소재 '논장서적'에 대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김일성사상비판> 2권, <조직전략전술> 2권, <해방조선 II> 2권 등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91000329215012&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09-10&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217&publishType=00020|압수했다.]] 이날 숙명여대 앞 창조서점과 젊은예수서점에서 <김일성사상비판> 2권, <민족해방철학> 2권을 압수했다. || || [[1988년]] [[10월 6일]] || [[방송]], [[도서]], [[신문]] || 법무부는 교도소 내 재소자들의 일일 TV시청 허용, 신문구독 허용, 도서반입 자유화 등의 내용을 담은 '행형제도개선방안'을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8/1814697_19338.html|국회에 보고했다.]] || || [[1988년]] [[10월 11일]] || [[도서]] || [[이종남(관료)|이종남]] 검찰총장은 국회 법사위원회 감사에서 북한의 실상을 단순 소개하거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해 객관적으로 해석해도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8/1814832_19338.html|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 [[1988년]] [[10월 27일]] || [[음악]], [[미술]] || 문화공보부는 [[김순남]], [[안기영]], 이건우 63명의 작곡가와 김주경, 길진섭 등 미술인 41명 등 총합 104명의 월/납북 예술인들의 작품들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0270032920200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10-27&officeId=00032&pageNo=2&printNo=13259&publishType=00020|해금 조치시켰다.]] || || [[1988년]] [[12월 31일]] || [[시민]], [[패션]] || [[경범죄처벌법]] 개정으로 [[장발]]과 [[미니스커트]] 착용 등이 완전 합법화되었다. 아울러 '유언비어 유포금지' 조항 역시 삭제되었다. || === 1989년 === ==== 상반기 ==== ||<-3>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89년 상반기''' ||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 [[1989년]] [[1월 1일]] || [[공연]], [[연극]] || 공연윤리위원회는 공연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무대공연물/대본에 대해 사전심의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23000329201023&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8-12-30&officeId=00032&pageNo=1&printNo=13314&publishType=00020|폐지하였다.]] || || [[1989년]] [[1월 9일]] ~ [[1월 13일]] || [[만화]] || 서울 [[YWCA]] 만화 모니터 모임은 '만화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11200209209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01-12&officeId=00020&pageNo=9&printNo=20703&publishType=00020|#]] || || [[1989년]] [[1월 16일]] || [[독립영화]] || 문화공보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16mm 소형영화 <오, 꿈의 나라>를 만든 홍기선 감독 등 제작진들에 영화법 위반혐의를 씌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11800289107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01-18&officeId=00028&pageNo=7&printNo=212&publishType=00010|경찰에 고발했다.]] 이러한 탄압 조치에 대해 영화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 || [[1989년]] [[1월 20일]] || [[독립영화]] || 법원은 소형영화 <오, 꿈의 나라>를 상영한 '예술극장 한마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반사회성이 드러나지 않다"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12100329215006&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1-21&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331&publishType=00020|영장을 기각했다.]] || || [[1989년]] [[1월 31일]] || [[독립영화]] || 주한독일문화원은 당일부터 2월 2일까지 개최하려던 소형 독립영화제 '민족영화를 위하여'를 "한-독 문화협정에 어긋난다"는 당국의 상영금지 요청에 따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20200289112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2-02&officeId=00028&pageNo=12&printNo=225&publishType=00010|중단했다.]] || || [[1989년]] [[2월 20일]] || [[문학]], [[음악]] || 북한으로 월북 뒤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로 1988년 해금 조치에서 제외된 [[홍명희]], 조령출, [[이기영(소설가)|이기영]], [[한설야]] 등 5명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2200032920802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2-20&officeId=00032&pageNo=8&printNo=13355&publishType=00020|해금되었다.]] || ||<|2> [[1989년]] [[2월 24일]] || [[민중미술]] || 1985년 당시 '20대 힘전'에서 발생한 경찰의 압류사태에 대해 법원은 '유언비어 유포금지' 조항 폐지를 이유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50400289107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5-04&officeId=00028&pageNo=7&printNo=301&publishType=00010|면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압류되었던 작품은 그해 3월에 경찰이 반환의사를 밝히면서 당사자들에게 반환되었다. || || [[음악]] || 문화공보부는 도서출판 한길사가 수입/판매예정이던 [[윤이상]]의 음악전집 중 <광주여 영원히> 등 4개 음반에 대해 이데올로기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수입을 불허했다. || || [[1989년]] [[2월 25일]] || [[문학]] || 검찰은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도서출판 아침 등 2개 서점과 대학가 앞 3개 서점들을 상대로 수색을 벌여 <지리산(이기형 저)> 등 3종의 사회과학계열 서적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22600289111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2-26&officeId=00028&pageNo=11&printNo=245&publishType=00010|압수했다.]] || || [[1989년]] [[2월 28일]] || [[시민]] || 사회정화위원회가 해체되면서 민간단체인 '바르게살기운동본부'로 바뀌었다. || || [[1989년]] [[3월 27일]] ~ [[3월 29일]] || [[문학]] || '남북작가회의예비회담'에 참석 예정인 시인 [[고은(시인)|고은]], 이기형, [[신경림]], [[백낙청]] 등 문인 26명이 판문점으로 가던 중에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가 이틀 뒤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33000209215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03-30&officeId=00020&pageNo=15&printNo=20768&publishType=00020|훈방 조치되었다.]] || || [[1989년]] [[4월 3일]] || [[문학]] || 검찰은 남북작가회담에 참석하려던 [[고은(시인)|고은]] 시인과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 [[이재오]]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40300329215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4-03&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391&publishType=00020|구속했다.]] || || [[1989년]] [[4월 17일]] || [[문학]] || 경찰은 대전 시내에 소재한 '책사랑' 등 주요 서점들을 영장 없이 압수수색해 <민중의 바다> 등 13종 13권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4180028911100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4-18&officeId=00028&pageNo=11&printNo=287&publishType=00010|압수했다.]] || ||<|2> [[1989년]] [[4월 24일]] || [[영화]] || 코스타 가브라스가 1973년에 제작한 영화 <[[계엄령]]>에 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4270028910701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4-27&officeId=00028&pageNo=7&printNo=295&publishType=00010|공연윤리위원회 측이 잔혹성을 이유로 수입불가 의견을 밝혔다.]] || || [[문학]] || 공안합동수사본부는 당시 방북 중인 황석영이 귀국할 즉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42400209201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04-24&officeId=00020&pageNo=1&printNo=20788&publishType=00020|구속한다고 밝혔다.]] || || [[1989년]] [[5월 9일]] || [[독립영화]] || 문화공보부는 [[5.18 민주화운동]] 진압 도중 탈영한 계엄군 병사의 양심선언을 다룬 소형영화 <황무지>의 비디오테이프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5110028911101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5-11&officeId=00028&pageNo=11&printNo=306&publishType=00010|서울 혜화동 예술마당 '금강'에서 상영 도중에 압수했다.]] 이에 제작/연출자인 김태영씨는 이미 당월 4일에 우진필름으로부터 필름을 뺏긴 상태라 비디오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며 상영 강행 의사를 밝혔다. || || [[1989년]] [[5월 27일]] || [[문학]] || 경찰은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펴낸 노동문학사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사인]] 씨와 편집장 임규찬 씨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52800289111006&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5-28&officeId=00028&pageNo=11&printNo=321&publishType=00010|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 [[1989년]] [[6월 30일]] || [[민중미술]] || [[홍성담]] 화백 등 재야 미술가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가 당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평양축전 참가를 위한 범국민 진군대회'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백골단]]들에 의해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06915|파괴/소각되었다.]] || ==== 하반기 ==== ||<-3>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89년 하반기''' ||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 [[1989년]] [[7월]] || [[문학]] || <지리산=None>의 저자 이기형과 이를 출판한 도서출판 아침 대표 정동익 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12900289107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11-29&officeId=00028&pageNo=7&printNo=477&publishType=00010|불구속 입건되었다.]] || || [[1989년]] [[7월 1일]] || [[영화]] || 노동문제를 다룬 [[박종원(영화감독)|박종원]] 감독의 영화 <[[구로아리랑]]>이 공윤의 사전심의 과정에서 21개 장면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7010028910701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7-01&officeId=00028&pageNo=7&printNo=350&publishType=00010|삭제된 채로 개봉되었다.]] || || [[1989년]] [[7월 31일]] || [[민중미술]] || 민족민중미술연합 건설준비위원장 겸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 지도위원을 지낸 홍성담 화백이 평양축전에 걸린 자신의 작품 '민족해방운동사' 대형걸개 그림 슬라이드 사진이 북한으로 유출되었다는 혐의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010028911100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8-01&officeId=00028&pageNo=11&printNo=376&publishType=00010|안기부 소속 기관원 10여명에 의해 연행되었다.]] || || [[1989년]] [[8월 6일]] || [[민중미술]] || 국가안전기획부는 홍성담 화백과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공동작업한 '가는패' 대표 차일환과 민미련 공동위원장 정하수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h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080028911101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8-08&officeId=00028&pageNo=11&printNo=382&publishType=00010|구속했다.]] || || [[1989년]] [[8월 12일]] || [[민중미술]] || 국가안전기획부는 홍성담 등 3명의 변호를 맡은 김선수 변호사 등 3명의 접견요청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1300289111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8-13&officeId=00028&pageNo=11&printNo=387&publishType=00010|거부했다.]] || || [[1989년]] [[8월 14일]] || [[민중미술]] || 홍성담 등 3명의 화가들과 김선수 등 3명의 변호사들은 [[서동권]] 안기부장을 상대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1500289111008&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89-08-15&officeId=00028&pageNo=11&printNo=388&publishType=00010|'변호인 접견 금지처분 취소 준항고'를 냈다.]] || ||<|3> [[1989년]] [[8월 17일]] || [[만화]], [[출판]] || 한국도서출판주간신문잡지윤리위원회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 개편되었다. || ||<|2> [[민중미술]] || 민족미술협회장 신학철 화백이 자신의 작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28414.html|모내기(1987년작)]]>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180028911001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8-18&officeId=00028&pageNo=10&printNo=391&publishType=00010|서울시경에 수감되었다.]] || || 안기부에 구속된 차일환 씨의 부인은 남편과의 접견 과정에서 남편이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1800289110010&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8-18&officeId=00028&pageNo=10&printNo=391&publishType=00010|폭로했다.]] || ||<|2> [[1989년]] [[8월 24일]] ||<|2> [[민중미술]] || 안기부에 구속된 차일환 씨는 서울구치소 면회 과정에서 안기부에서 보복고문을 당했다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2600289111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8-26&officeId=00028&pageNo=11&printNo=398&publishType=00010|밝혔다.]] 이날 홍성담 화백과 정하수 역시 고문사실을 폭로했다. || || 법원은 안기부를 상대로 변호인 접견금지 처분 준항고에 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2500289111007&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8-25&officeId=00028&pageNo=11&printNo=397&publishType=00010|"이유 있다." 고 판결했다.]] || || [[1989년]] [[8월 26일]] || [[민중미술]] || 국가안전기획부는 평양축전에 전시된 '민족해방운동사'의 일부를 그린 전국대학미술운동연합(이하 학미련) 대표 전승일 씨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82700289111007&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8-27&officeId=00028&pageNo=11&printNo=399&publishType=00010|구속했다.]] || || [[1989년]] [[9월 11일]] || [[만화]] || '서울 [[YMCA]] 건전비디오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하 건비연)'이 창설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90700329216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9-07&officeId=00032&pageNo=16&printNo=13524&publishType=00020|#]] || || [[1989년]] [[9월 21일]] || [[민중미술]] || 서울대 의대 조교수 이윤성씨 등은 홍성담 화백과 관련한 신체감정서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92200289111007&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9-22&officeId=00028&pageNo=11&printNo=419&publishType=00010|법원에 제출했다.]] 당시 감정서에 따르면, 홍 화백의 오른쪽 무릎과 정강이 및 왼쪽 귀 등에 생긴 상처는 '둔기에 의해 2~6주 전에 생긴 것'이라고 결론짓고 상처 발생 시기가 안기부에서의 조사 시기와 일치해 안기부에 의한 고문피해 주장을 뒷받침했다. || || [[1989년]] [[9월 26일]] || [[도서]] || 1986년에 문공부로부터 판매금지 종용도서에 올라 재판을 못 내게 된 <김형욱 최후의 그 얼굴>의 저자 손충무 씨와 이우석 문학예술사 대표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9270028911100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09-27&officeId=00028&pageNo=11&printNo=423&publishType=00010|법원이 저자와 출판사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판매금지 종용이 불법으로 판정되었다. || || [[1989년]] [[10월 12일]] || [[문학]] || 검찰은 이기형과 정동익 씨에 대해 각각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0130028911101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10-13&officeId=00028&pageNo=11&printNo=437&publishType=00010|구형했다.]] || || [[1989년]] [[10월 26일]] || [[문학]] || 법원은 이기형과 정동익 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0270028911101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10-27&officeId=00028&pageNo=11&printNo=449&publishType=00010|선고했다.]] || || [[1989년]] [[11월 8일]] || [[민중미술]] || 홍성담 화백은 9일 공판에 앞서 자신을 고문한 안기부 수사관 2명의 몽타주를 그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10900289111010&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11-09&officeId=00028&pageNo=11&printNo=460&publishType=00010|이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 || [[1989년]] [[11월 14일]] || [[민중미술]] || 법원은 구속중인 신학철 화백에 대해 보석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11500289111010&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11-15&officeId=00028&pageNo=11&printNo=465&publishType=00010|허가해 석방시켰다.]] || || [[1989년]] [[11월 23일]] || [[문학]], [[서적]] || [[국가안전기획부]]는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린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의 이적성을 문제삼아 창작과비평사 주간 이시영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12400329214010&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11-24&officeId=00032&pageNo=14&printNo=13589&publishType=00020|구속했다.]] || || [[1989년]] [[11월 29일]] || [[문학]], [[서적]] || [[대검찰청]] 공안부는 전국 검찰에 '좌익출판물/유인물 단속지침'을 내려 <지리산(이기형 저)>, <붉은 산 검은 피(오봉옥 저)>, <사람됨의 철학(채광석, 채희석 저)>, <한국민중사>, <주체사상비판>, <현대 민족사의 재인식>, <월간 노동해방문학> 5~7월호 등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20100289103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12-01&officeId=00028&pageNo=3&printNo=479&publishType=00010|1백30종의 서적들을 '좌익출판물'로 규정하였다.]]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1178|6공 당시의 금서들]] || || [[1989년]] [[12월]] || [[만화]] || 서울 [[YWCA]] 만화 모니터 모임은 <만화자료집>을 작성하여 만화 탄압의 기틀을 닦았다. || || [[1989년]] [[12월 14일]] || [[민중미술]] || 검찰은 차일환 화백에 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21500209215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12-15&officeId=00020&pageNo=15&printNo=20987&publishType=00020|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구형했다.]] || || [[1989년]] [[12월 20일]] || [[만화]] || 서울 [[YWCA]]는 '일본만화 수입개방에 대한 간담회'를 열어 만화가와 만화잡지 편집자, 서울 YWCA 산하 만화 모니터회 회원 등을 모아 한국 만화가 나아가야 할 방안에 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22200209209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9-12-22&officeId=00020&pageNo=9&printNo=20993&publishType=00020|토의했다.]] || ||<|2>[[1989년]] [[12월 29일]] || [[문학]] || 문화공보부는 <월간 노동해방문학>에 대해 3개월 정간처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2300032920200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12-30&officeId=00032&pageNo=2&printNo=13620&publishType=00020|내렸다.]] || || [[민중미술]] || 법원은 차일환 화백 등 3명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12300028911100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89-12-30&officeId=00028&pageNo=11&printNo=504&publishType=00010|징역 1년 6개월과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을 내렸다.]] || || [[1989년]] [[12월 30일]] || [[문화]] || 문화공보부가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되었다. || === 1990년 === ==== 상반기 ==== ||<-3>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90년 상반기''' ||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 [[1990년]] [[1월 6일]] ~ [[1월 9일]] || [[민중미술]] || 1989년에 고문주장을 제기했던 차일환 화백이 당월 6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10900209213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1-09&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007&publishType=00020|신원 미상의 남자에게 협박전화를 당했다.]] 이 외에도 홍성담 화백을 고문한 안기부 수사관 2명의 몽타주가 게재된 포스터를 배포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에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1090028911100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1-09&officeId=00028&pageNo=11&printNo=511&publishType=00010|협박전화가 걸려왔다.]] || || [[1990년]] [[1월 13일]] || [[민중미술]] || 서독의 작가 귄터 그라스 등 예술인 10명은 홍성담 화백을 석방시키기 위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1140028911101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1-14&officeId=00028&pageNo=11&printNo=516&publishType=00010|변호인단에 탄원서를 냈다.]] || || [[1990년]] [[1월 15일]] || [[문화]] || 노태우 대통령은 제6공화국의 문화정책에 대한 담화를 마련하며 "그 동안 문화예술이 정치와 경제 문제에 밀려 항상 역사의 뒷전에서 소외되어 왔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6공화국은 문화예술가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도록 하는 새 환경을 만들어내겠다."라고 하며 "만인이 문화를 골고루 나누어 갖는 문화의 향수권과 누구나 그것을 자유롭게 창조하는 문화의 참여권이 있다."라고도 했다. 이는 창작예술이나 문화활동에 대해 지원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 || [[1990년]] [[1월 16일]] || [[민중미술]] || 검찰은 홍성담 화백에 대해 징역 15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11700289111008&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1-17&officeId=00028&pageNo=11&printNo=518&publishType=00010|구형했다.]] || || [[1990년]] [[1월 17일]] || [[민중미술]] || 서독의 작센 주에 소재한 '정치범을 위한 함부르크재단'은 홍성담 화백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11800289110006&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1-18&officeId=00028&pageNo=10&printNo=519&publishType=00010|'양심수'로 선정했다.]] || || [[1990년]] [[1월 24일]] || [[문학]], [[서적]] || 법원은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 건으로 구속된 창작과비평사 주간 이시영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1250028911101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1-25&officeId=00028&pageNo=11&printNo=525&publishType=00010|보석을 허가했다.]] || || [[1990년]] [[1월 30일]] || [[민중미술]] || 서울형사지법은 1심에서 홍성담 화백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를 적용시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13000329215008&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1-30&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644&publishType=00020|선고했다.]] || || [[1990년]] [[1월 31일]] || [[민중미술]] || 홍성담 화백의 징역 7년 판결에 대해 민미련 측은 이에 규탄하는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20100289111006&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2-01&officeId=00028&pageNo=11&printNo=530&publishType=00010|성명을 냈다.]] || || [[1990년]] [[2월 3일]] || [[문학]], [[서적]] || 법원은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 건으로 구속된 창작과비평사 주간 이시영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20400289111009&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2-04&officeId=00028&pageNo=11&printNo=533&publishType=00010|보석 조치했다.]] || || [[1990년]] [[2월 21일]] || [[문학]] || 경찰은 빨치산을 소재로 다룬 시집 <붉은 산 검은 피>의 작가 오봉옥 씨와 실천문학사 전 대표인 [[이문구]], 전 주간인 송기원 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22200289111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2-22&officeId=00028&pageNo=11&printNo=548&publishType=00010|연행해 조사했다.]] || || [[1990년]] [[2월 22일]] || [[문학]] || 경찰은 실천문학사 전 대표인 [[이문구]]를 석방하는 한편 오봉옥과 송기원 주간에 대해 구속영장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22300289111010&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2-23&officeId=00028&pageNo=11&printNo=549&publishType=00010|청구하기로 했다.]] || || [[1990년]] [[2월 23일]] || [[문학]] || 경찰은 시인 오봉옥과 송기원 주간을 국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하고 이문구 대표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22400289111010&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2-24&officeId=00028&pageNo=11&printNo=550&publishType=00010|불구속 입건했다.]] || || [[1990년]] [[3월 30일]] || [[영화]] || <오 꿈의 나라>의 감독 홍기선,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유동훈 등의 영화인들은 영화 사전심의제도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33100209218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3-31&officeId=00020&pageNo=18&printNo=21076&publishType=00020|신청했다.]] || || [[1990년]] [[4월 4일]] || [[독립영화]] || 서울지방검찰청 공안 2부는 동월 6일부터 상영예정인 16mm 소형 영화 <파업전야>가 노동쟁의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이를 제작한 영화패 '장산곶매'와 이를 상영할 극장들을 영화법과 공연법 위반혐의로 고발했으나 장산곶매 측은 이에 굴하지 않고 상영을 강행하기에 이르렀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0500289111007&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4-05&officeId=00028&pageNo=11&printNo=584&publishType=00010|참고]] || || [[1990년]] [[4월 6일]] || [[독립영화]] || 경찰은 <파업전야>를 상영한 광주 [[YMCA]]에 사복경찰 50여명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0700289111007&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4-07&officeId=00028&pageNo=11&printNo=586&publishType=00010|영화필름 3롤을 압수하고 회원 2명을 연행했다.]] 이날 수원에서도 정오 12시 30분경에 경찰은 해당 영화를 상영하려던 수원문화운동연합 회원 김모씨 등 4명을 공연법 위반혐의로 연행해 조사한 데 이어 저녁 8시 30분에 해당 영화를 상영중이던 [[아주대학교]] 인문사회관 소극장에 경찰 3백여명을 동원해 3명을 연행하고 필름과 포스터 1백장, 팸플릿 750장을 압수했다. 게다가 서울 종로구청 측도 이를 상영한 혜화동 소재 소극장인 '예술극장 한마당'을 공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1300289107010&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4-13&officeId=00028&pageNo=7&printNo=591&publishType=00010|사업자 등록을 취소했다.]] || || [[1990년]] [[4월 7일]] || [[독립영화]] || 경찰은 <파업전야>를 상영한 '예술극장 한마당'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32708_19370.html|영화필름과 영사기 등을 압수했다.]] 이날 인천에서도 [[인천대학교]] 인문관 1405호 강의실에 경찰이 투입되어 영사기와 필름이 압수되고 관계자 5명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0800289111006&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4-08&officeId=00028&pageNo=11&printNo=587&publishType=00010|연행되었다.]] || || [[1990년]] [[4월 13일]] || [[독립영화]] || 경찰은 <파업전야>를 상영하고 있던 광주 [[전남대]]에 정/사복경찰 12개 중대 1천 8백여명과 헬기까지 동원해서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1400209218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4-14&officeId=00020&pageNo=18&printNo=21088&publishType=00020|학생들이 필름을 미리 빼돌리는 바람에 찾지 못했다.]] || || [[1990년]] [[4월 17일]] || [[독립영화]] || 서울시 경찰국(현 서울지방경찰청)은 서울시내 각 경찰서에 '<파업전야> 제작/상영 관련자 긴급수사지시'라는 공문을 보내 해당 영화를 제작한 이용배 씨를 영화법 및 공연법 위반으로 긴급 검거할 것과 예술극장 한마당 등 기타 4년제 대학교 등을 중심으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41800289111008&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4-18&officeId=00028&pageNo=11&printNo=595&publishType=00010|수사하라고 지시했다.]] || || [[1990년]] [[5월 15일]] || [[독립영화]] || 법원은 소형영화 <황무지>의 제작자 김태영 씨가 공윤의 사전심의 없이 상영했다는 이유로 약식 기소된 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51500209214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5-15&officeId=00020&pageNo=14&printNo=21118&publishType=00020|정식 재판에서 벌금 1백만원을 선고받았다.]] || || [[1990년]] [[5월 28일]] || [[만화]] || 서울 [[YWCA]] 만화 모니터 모임은 <만화자료집2 : 만화 - 재미, 그 영원한 족쇄>를 작성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2465832|참고]] || || [[1990년]] [[5월 30일]] || [[문학]] || 법원은 시인 오봉옥에게 징역 8개월/집유 1년/자격정지 1년, 송기원 주간에게 징역 6개월과 자격정지 1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53000329215012&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5-30&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746&publishType=00020|선고했다.]] || || [[1990년]] [[6월 1일]] || [[민중미술]] ||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에서 홍성담 화백에 대해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6010032921501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6-01&officeId=00032&pageNo=15&printNo=13748&publishType=00020|선고했다.]] || || [[1990년]] [[6월 6일]] || [[독립영화]] || 경찰은 <파업전야>를 상영한 구로노동상담소에 대해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에 따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60800289114006&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6-08&officeId=00028&pageNo=14&printNo=639&publishType=00010|10여분 동안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나 해당 영화를 녹화해낸 비디오테이프 등을 찾지 못했다.]] || || [[1990년]] [[6월 11일]] || [[음반]], [[영화]], [[애니메이션]] || 정부는 음반 사전심의와 관련된 처벌 규정이 강화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법)'의 법안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61100209202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06-11&officeId=00020&pageNo=2&printNo=21145&publishType=00020|마련되었다.]] || ==== 하반기 ==== ||<-3>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90년 하반기''' ||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 [[1990년]] [[7월 6일]] || [[민중가요]] || [[정태춘]]이 낸 5집 앨범 <아, 대한민국>에 실린 <버섯구름의 노래>, <형제에게>, <우리들의 죽음> 3곡이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http://freedom.jinbo.net/kukbo/text/t7/express2.html|수정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마저도 거부하고 심의 없이 앨범을 내 공윤과의 전면전에 들어갔다. || || [[1990년]] [[8월 16일]] || [[영화]] || 공연윤리위원회는 신진 영화감독 이정국 씨가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해서 제작한 최초의 대중영화 <부활의 노래> 에 대한 새빛영화촬영소의 심의 요청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82300289109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8-23&officeId=00028&pageNo=9&printNo=704&publishType=00010|반송시켰다.]] 그 이유는 제작사인 새빛영화촬영소 측이 동월 9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사전심의를 받지 않고 세방현상소의 시사실과 연세대 통일문화제에서 각각 대중을 상대로 상영해서 검찰에 고발되었기 때문이다. || || [[1990년]] [[8월 26일]] || [[문학]] || <붉은 산 검은 피> 건으로 구속된 송기원 주간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8280028911401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8-28&officeId=00028&pageNo=14&printNo=708&publishType=00010|만기 출소했다.]] || || [[1990년]] [[8월 29일]] || [[문학]] || 광주시내 각 경찰들은 2학기 개강에 앞서 전남대, [[조선대]], [[광주교대]], [[호남대]] 등지의 대학 근처 서점 11곳을 압수수색하여 <조선통사>, <미제침략사> 등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13789|북한 관련서적 2백여 권을 압수했다.]] || || [[1990년]] [[9월 14일]] || [[영화]] || 영화 <부활의 노래>가 공윤의 확대회의와 재심의에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91500329216015&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9-15&officeId=00032&pageNo=16&printNo=13839&publishType=00020|상영이 허가되었다.]] 그러나 공윤의 관계자 측은 "심의에는 합격했으나 심의규정에 따라 일부 장면이 삭제되거나 단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 || [[1990년]] [[9월 18일]] || [[영화]] || 공연윤리위원회는 영화 <부활의 노래>의 장면 중 도청사수 장면과 전야 횃불시위 장면 등 전체 분량의 22%에 '고증오류'를 빌미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92200289109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9-22&officeId=00028&pageNo=9&printNo=730&publishType=00010|삭제 조치를 내렸다.]] || || [[1990년]] [[9월 22일]] || [[영화]] || 공연윤리위원회는 효동필름과 우진필름이 각각 수입한 성인영화 <굿바이 엠마누엘(1977년작)>과 <엠마누엘4(1984년작)>에 대해 "외설 논란은 있으나 시대상을 감안하면 이미 흘러간 영화"라는 이유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9240032920901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9-24&officeId=00032&pageNo=9&printNo=13846&publishType=00020|수입을 허가했다.]] || || [[1990년]] [[9월 25일]] || [[민중미술]] ||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홍성담 화백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간첩혐의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92600289115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09-26&officeId=00028&pageNo=15&printNo=733&publishType=00010|파기되었다.]] 대신 이적표현물 제작과 찬양고무죄만 인정되었다. || || [[1990년]] [[10월 16일]] || [[회화]] || 신학철 화백의 작품 <모내기>의 이적성 여부에 대한 서울형사지방법원 5차 공판에서 서울지방검찰청 공안 2부는 신 화백에 대해 징역 3년형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1700289115004&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0-17&officeId=00028&pageNo=15&printNo=750&publishType=00010|구형했다.]] || || [[1990년]] [[10월 17일]] || [[민중미술]] || 윤범모 [[예술의전당]] 미술관 관장이 문화부의 민중미술 전시회 철거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22600289109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2-26&officeId=00028&pageNo=9&printNo=810&publishType=00010|사퇴했다.]] || || [[1990년]] [[10월 19일]] || [[문학]], [[도서]] || 경찰은 이날 오후부터 서울시내 대학가 서점 및 사회과학서적 전문 출판사에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강좌철학 I/II> 등 재야 이념서적 4백여 권을 압수하는 한편 이를 펴낸 세계출판사 대표 윤후덕 씨를 국보법 위반으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22744|연행했다.]] || || [[1990년]] [[10월 23일]] || [[영화]] || 경찰은 대학가에 한창 상영중인 북한영화에 대해 중앙대와 숭실대 학생회관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22669|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 || [[1990년]] [[10월 29일]] || [[독립영화]] || 서울지방검찰청 형사 2부는 <파업전야>를 만든 장산곶매 대표 이용배와 예술극장 '한마당' 대표 김명곤을 영화법과 공연법 위반 혐의를 적용시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2900329214005&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10-29&officeId=00032&pageNo=14&printNo=13876&publishType=00020|불구속 입건시켰다.]] || || [[1990년]] [[10월 31일]] || [[민중미술]] || 홍성담 화백이 서울고등법원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310020921501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10-31&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285&publishType=00020|보석신청을 냈다.]] || || [[1990년]] [[11월 9일]] || [[만화]] || [[한국기독교총연합회]], [[YMCA]],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 10개 단체는 '스포츠신문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만들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10900209214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11-09&officeId=00020&pageNo=14&printNo=21294&publishType=00020|스포츠만화의 음란성을 시정하고자 거듭 촉구했다.]] 이는 1991년에 '스포츠신문음란폭력성조장공동대책협의회(이하 음대협)'을 거쳐 1994년경에 '음란폭력성조장공동대책협의회'로 발전하게 된다. || || [[1990년]] [[11월 24일]] || [[영화]] || 공연윤리위원회는 영화 <부활의 노래(이정국 감독.)>을 재심의하여 지난 9월 심의 당시 잘린 25분 가량의 장면들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12500289110010&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0-11-25&officeId=00028&pageNo=10&printNo=784&publishType=00010|복원하여 심의필증을 교부했고, 아울러 '수출불가' 판정까지 해제시켰다.]] 그러나 철기(김영건 분)이 총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는 장면 등 1분 가량이 편집되었다. || ||<|2> [[1990년]] [[11월 27일]] || [[만화]] || 서울 [[YWCA]]는 일본만화 수입규제를 위한 `외국만화 수입개방에 따른 법규제정 제안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463799|#]] || || [[민중미술]] || 서울고등법원은 홍성담 화백에 대한 보석신청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12800329214009&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11-28&officeId=00032&pageNo=14&printNo=13902&publishType=00020|기각했다.]] || || [[1990년]] [[12월 4일]] || [[만화]] || 서울 중랑구 지역 학부모, 교사, 공무원 5백여 명이 학교 주변 정화에 나서서 불량만화와 음란비디오 등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20500209213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0-12-05&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320&publishType=00020|소각했다.]] || || [[1990년]] [[12월 8일]] || [[만화]] || 만화가이자 [[덕성여대]] 교수 [[이원복]]의 주도로 스포츠신문 관계자들과 서울 YWCA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충주 수안보의 한 호텔에서 '스포츠 만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0/1841862_13421.html|#]] || === 1991년 === ||<-3>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91년''' ||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 [[1991년]] [[1월 6일]] || [[드라마]] || 전날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땅(고석만 연출, 김기팔 극본)> 첫회분의 정치적 논란 건으로 인한 반발로 인해 [[최창봉]] MBC 사장과 민용기 제작이사가 청와대로 소환되었다. || ||<|2> [[1991년]] [[1월 9일]] || [[방송]] || 방송위원회는 종전의 방송심의위원회를 방송위 산하 연예오락/보도교양/영화/광고 특별심의위원회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10900329202015&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1-01-09&officeId=00032&pageNo=2&printNo=13936&publishType=00020|개편하였다.]] || || [[드라마]] || 방송위원회 산하 연예오락심의위원회는 MBC 드라마 <땅>의 첫회분을 심의해 제작 관계자를 소환할 것을 결의했다. || || [[1991년]] [[1월 15일]] || [[방송]], [[애니메이션]] || 서울 YMCA TV 모니터 클럽이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로 개편되었다. || || [[1991년]] [[1월 22일]] || [[드라마]], [[시사]] || 방송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MBC 드라마 <땅>과 에 대해 각각 '사과방송'과 '주의'조치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1240028911201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1-24&officeId=00028&pageNo=12&printNo=833&publishType=00010|내렸다.]] 당초 방송위 산하 연예오락심의위원회는 <땅>의 첫회분에 대해 제작 관계자를 징계하지 않는 조건으로 해명 조치를 취해달라고 방송위에 건의했지만 방송위는 이를 묵살하고 '사과방송' 조치를 내린 것이다. || || [[1991년]] [[1월 26일]] || [[드라마]] || MBC 제작국 소속 드라마 PD 20명과 박신서 PD연합회 사무국장은 방송위원회를 방문해 드라마 <땅>의 사과방송 철회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12600329214017&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1-01-26&officeId=00032&pageNo=14&printNo=13953&publishType=00020|촉구했다.]] 한편 MBC 드라마 PD들은 철야 대책회의를 열어 방송위 부위원장 김규를 만나 방송위가 정부의 압력 부분에 대해 해명하고 해당 에피소드에 재심을 요구했지만 김 부위원장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13000209213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1-30&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373&publishType=00020|"현행법상 재심은 불가하다"]]는 답변을 했다. || || [[1991년]] [[1월 31일]] || [[민중미술]] || 서울고등법원은 홍성담 화백에 대해 간첩죄 부분에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1310020921500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1-31&officeId=00020&pageNo=15&printNo=21374&publishType=00020|무죄 판결을 내리고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내렸다.]] || || [[1991년]] [[3월 1일]] || [[만화]]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외국 수입만화에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22600099210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1-02-26&officeId=00009&pageNo=10&printNo=7727&publishType=00020|사전심의제를 확대하여 일본 만화 정식수입의 길이 열렸다.]] || || [[1991년]] [[1월 26일]] || [[개그]] || 방송위원회는 개그맨 이창훈이 한 내무반원의 입에 물고 있는 사과를 향해 칼을 던져 명중시키는 장면을 담은 <[[유머 1번지]] - [[동작그만]]> 2월 2일 방영분에 대해 '사과' 조치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30800099210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1-03-08&officeId=00009&pageNo=10&printNo=7737&publishType=00020|내렸다.]] || || [[1991년]] [[3월 8일]] || [[애니메이션]], [[영화]], [[가요]] || 종전의 '음반에 관한 법률'이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53557&ancYd=19910308&ancNo=04351&efYd=19910609&nwJoYnInfo=N&efGubun=Y&chrClsCd=010202#0000|'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법)']]으로 바뀌어 제정되었다. || || [[1991년]] [[3월 20일]] ~ [[3월 21일]] || [[문학]] || 경찰은 부산, 수원, 조치원 등 주요 도시에 소재한 사회과학서적 서점들을 상대로 수색을 벌여 <완전한 만남(김하기 저)>, <노동의 새벽([[박노해]] 저)> 등의 20종류의 인문사회과학 선정 대학생 추천 서적들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32400289109006&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3-24&officeId=00028&pageNo=9&printNo=882&publishType=00010|'이적표현물'로 몰아 압수했다.]] || || [[1991년]] [[4월 3일]] || [[민중가요]] || 경찰은 1989년부터 <노동가요 모음집> 2~4집, <포항제철 노동가요모음집> 1집 등의 노동가요 테이프 1만 2천여개를 제작해 판매했던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 의장 박인배 씨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0400289115010&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4-04&officeId=00028&pageNo=15&printNo=891&publishType=00010|음비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연행했다.]] || || [[1991년]] [[4월 6일]] || [[민중가요]] || 서노문협 의장 박인배 씨가 법원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0700289115007&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4-07&officeId=00028&pageNo=15&printNo=893&publishType=00010|구속적부심을 신청했다.]] || || [[1991년]] [[4월 9일]] || [[독립영화]] || 서울 마포경찰서와 마포구청 직원들은 사설 시네마테크 '영화공간 1895'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여 이날 시사회를 개최하려던 16mm 소형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청년영화제작소 제작.)>이 공윤의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필름을 압수하고 이에 항의한 회원 2명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1000289115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4-10&officeId=00028&pageNo=15&printNo=895&publishType=00010|강제 연행했다.]] || || [[1991년]] [[4월 12일]] || [[독립영화]] ||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상영하던 [[경기대학교]] 수원캠퍼스 정문 앞에서 학생 5백여명이 경찰의 영화상영 저지에 돌과 화염병으로 맞섰다. 이 와중에 한 학생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눈을 맞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130028911500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4-13&officeId=00028&pageNo=15&printNo=898&publishType=00010|실명 위기에 처했다.]] || || [[1991년]] [[4월 16일]] || [[독립영화]] || 당일 오후 1시 30분경부터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상영하던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 5백여명이 법원의 영장을 받고 출동한 경찰 병력 1,200여명에 맞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1700289114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4-17&officeId=00028&pageNo=14&printNo=901&publishType=00010|경찰 병력이 철수하는 2시 50분까지 농성을 벌였다.]] 한편 이날 오후 3시 30분경에 [[경희대학교]]에서도 해당 영화를 크라운관에서 상영하다 교내에 진입한 경찰에 맞서 1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 || [[1991년]] [[4월 17일]] || [[만화]] || 서울 [[YWCA]] 만화 모니터회는 서울지역의 초중고 근처 서점 등을 조사하며 일본 만화 실태를 분석했다. 이들은 외국만화심의기구의 심의기준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565123|#]] || || [[1991년]] [[4월 18일]] || [[독립영화]] || 이날 [[홍익대학교]] 문헌관 16층에서 상영한 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경찰에 의해 10분만에 상영 중지되자 학생들은 40여분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190020921400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4-19&officeId=00020&pageNo=14&printNo=21448&publishType=00020|경찰에 격렬히 맞섰다.]] || || [[1991년]] [[4월 19일]] || [[드라마]] || MBC 프로덕션 간부진들은 원래 50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 <땅>을 15회로 줄여 조기종영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2000329114003&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4-20&officeId=00032&pageNo=14&printNo=14026&publishType=00010|결정했다.]] || || [[1991년]] [[4월 22일]] || [[드라마]] || 방송연예인노조(위원장 [[유인촌]])는 MBC 드라마 <땅>의 조기종영에 대해 저항하며 "땅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땅은 형태상으로 안정이 기본이다. 누가 땅을 뒤흔들고 있는가?"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240028911201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4-24&officeId=00028&pageNo=12&printNo=907&publishType=00010|발표하여]] 이러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출연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 || [[1991년]] [[4월 23일]] || [[독립영화]] || 영화제작소 '청년' 등 18개 영화문화단체들로 구성된 '<어머니 당신의 아들> 상영탄압 저지 공동투쟁위원회'는 공권력의 영화 상영탄압에 맞서고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240028911401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4-24&officeId=00028&pageNo=14&printNo=907&publishType=00010|성명서를 냈다.]] || || [[1991년]] [[4월 24일]] || [[독립영화]] || 이날 [[서울대학교]]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상영한 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의 상영을 막기 위해 경찰병력 1천 8백여명이 진입하자 서울대생 2천여명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250020922200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4-25&officeId=00020&pageNo=22&printNo=21454&publishType=00020|돌과 화염병을 던져 농성했다.]] || || [[1991년]] [[4월 26일]] || [[드라마]] || 드라마 <땅>에 출연한 [[오지명]], [[길용우]], [[반효정]] 등 24명의 탤런트들은 해당 드라마에 대한 조기종영 철회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240028911201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4-24&officeId=00028&pageNo=12&printNo=907&publishType=00010|요구했다.]] 단, 당초 출연거부한 <땅>의 마지막회 녹화(19일)에는 일단 출연했다. 같은 날 서울 YMCA '좋은 방송을 위한 시청자 모임'도 MBC의 어린이프로 대폭 축소, ,<땅>, <사람과 사람>, <우리는 지금> 등의 조기 종영에 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42600209208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4-26&officeId=00020&pageNo=8&printNo=21455&publishType=00020|항의했다.]] || || [[1991년]] [[4월 28일]] || [[드라마]] || 드라마 <땅>이 조기 종영되었다. || || [[1991년]] [[5월 6일]] || [[독립영화]] || 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에 대한 감정평가를 위한 공개 시사회 및 기자회견이 공투위의 주최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5050028910901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5-05&officeId=00028&pageNo=9&printNo=917&publishType=00010|한양대학교 학생회관 3층 콘서트홀에서 개최되었다.]] || || [[1991년]] [[5월 7일]] || [[독립영화]] || 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경찰과의 별다른 충돌 없이 성균관대, 건국대, 숭실대 등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50800329114007&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5-08&officeId=00032&pageNo=14&printNo=14043&publishType=00010|6개 대학에서 동시 개봉했다.]] || || [[1991년]] [[5월 11일]] || [[만화]]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청소년의 달인 5월을 맞이하여 서울 [[YWCA]], 서울 [[YMCA]],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및 [[걸스카우트]]연맹, 전국서적상조합연합회, 한국청소년도서출판협의회, 주부교실중앙회 등 8개 단체는 불량만화 폐기식을 시행하며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행사의 이름은 '불량만화추방시민결의대회'였으며 오후 2시에 [[서울어린이대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시행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531458|당시 신문 기사]]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1/1847451_19386.html|당시 MBC 뉴스데스크 자료]] || || [[1990년]] [[5월 15일]] || [[영화]] || 홍기선, 유동훈 등의 영화인들이 낸 영화 사전심의제도 위헌심판제청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5160028911401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5-16&officeId=00028&pageNo=14&printNo=926&publishType=00010|서울형사지법에서 기각되었다.]] || || [[1991년]] [[6월]]초 || [[도서]] || 법무부는 각 교도소를 감사하면서 <녹슬은 해방구(권운상 저.)>, <태백산맥(조정래 저.)>, <완전한 만남(김하기 저.)> 등의 재야계열 소설 32권을 금서목록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70900289112005&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7-09&officeId=00028&pageNo=12&printNo=972&publishType=00010|추가시켰다.]] || || [[1991년]] [[6월 8일]] || [[애니메이션]], [[영화]], [[가요]] ||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제정되었다. || || [[1991년]] [[6월 9일]] || [[애니메이션]], [[영화]], [[가요]] ||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 || [[1991년]] [[6월 22일]] || [[애니메이션]], [[영화]], [[가요]] ||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 제정되었다. || || [[1991년]] [[6월 26일]] || [[독립영화]] ||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제작한 이상인 감독이 경찰에 의해 영화법 위반 혐의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6270032911401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6-27&officeId=00032&pageNo=14&printNo=14093&publishType=00010|구속되었다.]] || || [[1991년]] [[7월 23일]] || [[문학]] || 경찰은 <빨치산의 딸([[정지아]] 저.)>을 낸 실천문학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해당 서적 2천여권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72400329115009&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7-24&officeId=00032&pageNo=15&printNo=14120&publishType=00010|압수한 뒤]] 대표인 이석표 씨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7240028911501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7-24&officeId=00028&pageNo=15&printNo=985&publishType=00010|연행했다.]] || || [[1991년]] [[7월 30일]] || [[민중가요]] || 법원은 노동가요 테이프를 만들어 판 박인배 씨에 대해 음비법 위반을 적용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73100289115010&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7-31&officeId=00028&pageNo=15&printNo=991&publishType=00010|징역 2년을 선고했다.]] || || [[1991년]] [[8월 1일]] || [[만화]]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이날을 기해 불량만화의 홍수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월 10일에 나올 국내만화 단행본에 아동용은 '아동만화'라고 쓰인 연록색 표시를, 청소년용은 '청소년만화'라고 쓰인 청색 표시를 달도록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80200099210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1-08-02&officeId=00009&pageNo=10&printNo=7866&publishType=00020|권장했다.]] || || [[1991년]] [[8월 31일]] || [[만화]] || '스포츠신문 음란폭력조장 공동대책협의회'는 스포츠신문 만화의 음란/폭력성을 시정하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90100289112013&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9-01&officeId=00028&pageNo=12&printNo=1019&publishType=00010|국내 스포츠신문 3개사에 보냈다.]] || || [[1991년]] [[9월 3일]] || [[영화]]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제작한 이상인 감독에 대해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90400289115008&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09-04&officeId=00028&pageNo=15&printNo=1021&publishType=00010|선고했다.]] || || [[1991년]] [[9월 18일]] || [[문학]] || 문화부는 당해 출판된 도서 중 <빨치산의 딸(정지아 저.)>, <녹슬은 해방구(권운상 저.)> 4~9권, <한국현대사(한국역사연구소 저.)>, <한국사회의 이해(장상환 외 9명 저.)>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부정하거나 김일성 주체사상 등을 찬양하는 등 그 내용이 실정법에 현저히 저촉될 우려가 있다’는 이적표현물 26종을 검찰에 통보했다고 그해 국감자료에서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498215|참고.]] || || [[1991년]] [[10월 1일]] ~ [[10월 2일]] || [[만화]] || 서울 [[YMCA]]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만화 73종을 선별한 뒤 서울 YMCA 회관에서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1/1852860_19386.html|'좋은만화 비교전시회']]를 열었다. || || [[1991년]] [[10월 11일]] ~ [[11월 29일]] || [[만화]] || 서울 [[YMCA]]는 안양, 대구, 원주 등 8개 도시를 돌며 '좋은만화 비교전시회'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00300289108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10-03&officeId=00028&pageNo=8&printNo=1045&publishType=00010|순회전시회를 열었다.]] || || [[1991년]] [[10월 26일]] || [[민중가요]] || 법원은 음비법 위반으로 구속된 박인배 씨에 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0270028911501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1-10-27&officeId=00028&pageNo=15&printNo=1066&publishType=00010|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석방시켰다.]] || || [[1991년]] [[12월 31일]] || [[케이블방송]] || '종합유선방송법'이 새로 제정되어 '종합유선방송위원회'가 설립되었다. || === 1992년 === ||<-3>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92년''' ||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 [[1992년]] [[2월]] || [[독립영화]] || 공연윤리위원회는 남누리영상에서 제작한 16mm 소형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에 대해 노동자 계급성을 이유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31000289110002&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2-03-10&officeId=00028&pageNo=10&printNo=1178&publishType=00010|심의 불가 판정을 내렸다.]] || || [[1992년]] [[2월 17일]] || [[독립영화]] || 문화부 측이 전국의 현상업자와 녹음실에 대해 장산곶매 영화들에 대한 작업을 중단하도록 요청하는 바람에 참교육을 주제로 한 16mm 소형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2180028910900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2-02-18&officeId=00028&pageNo=9&printNo=1160&publishType=00010|제작이 중단되었다.]] 이 때문인지 상영 시에 대사가 없고 영화 내내 음악으로만 나온다고 한다. || || [[1992년]] [[4월]] || [[독립영화]] || 문화부의 제작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나온 <닫힌 교문을 열며>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주관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영하자 전국의 교육청은 각급 학교에 '전교조 대책' 공문을 발송하여 학생들이 해당 영화를 보지 못하게 철저히 지도하도록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41600289115006&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2-04-16&officeId=00028&pageNo=15&printNo=1211&publishType=00010|촉구했다.]] || || [[1992년]] [[4월 23일]] || [[도서]] || '공명선거실천 시민운동협의회(이하 공선협)'가 국방위원회에서 진상조사 차원으로 <건강한 부대관리> 지침을 공개하여 군의 금서지정 실태를 폭로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4240020920100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04-24&officeId=00020&pageNo=1&printNo=21804&publishType=00020|당시 금서목록]] || || [[1992년]] [[6월 29일]] || [[만화]]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심의통과율이 95%이상을 기록한 건전만화가들에게 사전심의를 면제해 주는 '무심의 작가 제도'를 도입했다. 취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작품의 질보다 양을 중시하여 다작 만화가들에게 특혜를 주어 신인 만화가들의 창작 의욕을 방해하는 제도라고 [[http://animate.kr/zboard/view.php?id=review&no=4716|비난을 받았다.]] || || [[1992년]] [[7월 30일]] || [[PC통신]] || 민간자율심의기구인 '정보윤리위원회'가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0100289108016&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2-08-01&officeId=00028&pageNo=8&printNo=1302&publishType=00010|출범되었다.]] || || [[1992년]] [[8월 7일]] || [[민중미술]] || 홍성담 화백이 3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80800289114005&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2-08-08&officeId=00028&pageNo=14&printNo=1308&publishType=00010|만기 출소했다.]] || || [[1992년]] [[9월 1일]] || [[문학]]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에 대해 음란성을 이유로 저자 마광수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9140020921301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09-14&officeId=00020&pageNo=13&printNo=21940&publishType=00020|검찰에 고발했다.]] || || [[1992년]] [[9월 9일]] || [[독립영화]]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파업전야>를 만든 장산곶매 대표 이용배에게 영리성이 없다는 이유로 영화업자 등록미필 부분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91000289114011&editNo=4&printCount=1&publishDate=1992-09-10&officeId=00028&pageNo=14&printNo=1336&publishType=00010|#]] || || [[1992년]] [[9월 14일]] || [[영화]] || 공연윤리위원회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의 문예 아카데미 영화강좌 <영화로 보는 세계영화사 - 제3세계 영화사>에 사용될 영화 테이프가 공윤의 사전심의를 안 받았다는 이유로 민예총을 고발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91500289109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2-09-15&officeId=00028&pageNo=9&printNo=1338&publishType=00010|#]] || || [[1992년]] [[9월 24일]] || [[문학]]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에 대해 음란성을 이유로 제재할 것을 문화부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9270020912201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09-27&officeId=00020&pageNo=22&printNo=21953&publishType=00010|건의했다.]] || || [[1992년]] [[10월 29일]] || [[문학]] || 검찰은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와 이를 출판한 청하출판사 대표를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2/1749781_13444.html|구속/수감했다.]] || || [[1992년]] [[11월 2일]] || [[문학]] ||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등 9개 단체들은 '음란출판물대책협의회'를 구성하고 스포츠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마광수씨의 음란소설 게재를 즉각 중단하라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11300289114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2-11-13&officeId=00028&pageNo=14&printNo=1391&publishType=00010|촉구했다.]] || || [[1992년]] [[11월 3일]] || [[문학]] || 만화가 [[이현세]] 등 한국만화가협회 회원 1백여 명은 종로 2가 탑골공원에서 '불법 일본만화 퇴치 결의대회'를 개최하여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2/1918523_19402.html|음란/퇴폐만화의 단속을 정부에 촉구했다.]] || ||<|2> [[1992년]] [[11월 5일]] || [[문학]], [[만화]] || 대검찰청은 1993년 2월 말까지 일간지부터 만화에 이르기까지 '음란간행물 특별단속기간'으로 정하여 이를 판매하거나 구경시키는 행위 제작 수출, 수입하는 행위를 집중단속하기로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2/1918659_13444.html|했다.]] 그러나 단속 과정에서 스포츠신문에 대한 단속이 어려워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10800209121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11-08&officeId=00020&pageNo=21&printNo=21994&publishType=00010|자제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고 했다.]] || || [[문학]], [[도서]] || 검찰은 <즐거운 사라>를 발간한 인쇄업체 고려제책(주)를 압수수색하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10500209223008&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11-05&officeId=00020&pageNo=23&printNo=21991&publishType=00020|5천여권을 강제 수거했다.]] || || [[1992년]] [[11월 7일]] || [[문학]]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마광수 교수와 청하출판사 대표에 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10800209122006&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11-08&officeId=00020&pageNo=22&printNo=21994&publishType=00010|구속적부심을 실시했다.]] || || [[1992년]] [[11월 9일]] || [[문학]]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마광수 교수와 청하출판사 대표의 구속적부심 신청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1100020922301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2-11-10&officeId=00020&pageNo=23&printNo=21996&publishType=00020|기각했다.]] || || [[1992년]] [[11월 12일]] || [[민중미술]]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1심 재판에서 신학철 화백에 대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11300289114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2-11-13&officeId=00028&pageNo=14&printNo=1391&publishType=00010|무죄를 선고했다.]] || || [[1992년]] [[11월 14일]] || [[문학]], [[도서]] || <즐거운 사라>를 펴낸 청하출판사의 출판사 등록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12100099210015&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2-11-21&officeId=00009&pageNo=10&printNo=8266&publishType=00020|취소되었다.]] || || [[1992년]] [[11월 18일]] || [[문학]], [[도서]] || <즐거운 사라> 여파로 인해 연세대학교 측은 마광수를 교수직에서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2/1749892_19402.html|해직할 방침을 밝혔다.]] || ||<|2> [[1992년]] [[12월]] || [[만화]] || 서울 [[YWCA]] 만화 모니터 모임은 <만화자료집4 : 만화 모니터 지침서>를 작성하여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http://www.dlibrary.go.kr/JavaClient/jsp/wonmun/full2.jsp?v_kw_str=Z3:657&v_db=4&v_doc_no=114165&mode=1|#]] || || [[영화]] || 공연윤리위원회는 루이 말 감독의 영화 <데미지>에 음란성을 이유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52900289109014&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3-05-29&officeId=00028&pageNo=9&printNo=1573&publishType=00010|심의보류 판정을 내렸다.]] 이후 루이 말 감독은 자기 작품에 대한 도덕성을 옹호하는 서한을 공윤에 보내는 등 공윤을 설득코자 했다. || || [[1992년]] [[12월 3일]] || [[문학]] ||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와 이를 펴낸 청하출판사 대표에 대한 첫 공판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120400329123013&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12-04&officeId=00032&pageNo=23&printNo=14604&publishType=00010|열렸다.]] || || [[1992년]] [[12월 17일]] || [[문학]] || 검찰은 마광수에 대해 징역 1년을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2/1750827_13444.html|구형했다.]] || || [[1992년]] [[12월 28일]] || [[문학]]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마광수와 청하출판사 대표에 대해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1년을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2/1751181_13444.html|선고했다.]]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대한민국/문화 규제와 탄압/일지, version=376, paragraph=2.1)] [[분류:대한민국의 검열]] [[분류:노태우 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