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L-147282-1616066330-6956.jpeg.jpg]] {{{+1 [[大]][[星]][[音]][[盤]]}}} [목차] == 개요 == 대성음반은 서라벌레코드에서 ‘피디(PD) 메이커’ 시스템을 구축했던 전무 이흥주가 독립해 1981년에 세운 회사이다. == 상세 == [[산울림]]의 음반 제작을 맡아서 하던 이흥주는 서라벌을 퇴사한 후 [[산울림]]의 리더였던 [[김창완]]과 한국 음원제작자협회장을 역임한 서희덕을 문예부장으로 입사시키고 대성음반을 설립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대성음반에서 출반(出盤)한 첫 번째 음반은 [[산울림 7집]]이며 카탈로그 넘버도 0001번이다. 설립 초기에는 음반에 대성음향과 대성음반 표기가 혼용되었지만, 이후 대성음반으로 확정되었다. [[김창완]], 서희덕의 주도로 [[대성음반]]은 창립 첫 해부터 [[산울림]], 로커스트 등 밴드 앨범을 시작으로 김태정, [[김범룡]], [[정광태]], 김원중, 홍삼트리오, 조인숙, 너랑나랑, 안정희, 혜민, 유태인 등 많은 신인 가수들을 발굴하며 주목을 받았다. 또한 [[조용필]], [[이정선(1950)|이정선]], 산이슬 출신 주정이, 김민식 등 인기가수들의 [[앨범]] 20여 장과 해외 팝 음반으로 상당한 판매수익을 올렸다. 특히 미국의 음반사 MCA와 라이선스계약을 맺었던 대성음반은 [[1982년]]부터 [[서울]] [[종로1가]]에 소재했던 무아음악실에서 무료 [[팝송]] 감상회를 개최해 대성황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마이너한 [[음반]]들을 많이 출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뮤지션]]들에게 [[대성음반]]은 "돈 안 되는 [[음반]]도 꺼리지 않고 내 주던 회사"라는 인식이 깔려있었으며, 실제로도 그랬다. 김창완은 이 시기 무려 '''[[개소리]]'''를 샘플링해 한국 최초로 샘플링 기법을 앨범 전면에 사용한 음반인 [[노래하는 강아지]]를 발매하였으며, [[독도는 우리땅]]이 실린 웃기는 노래와 웃기지 않는 노래 1집도 이 회사에서 발매되었다. 이에 대해서 [[정광태]]가 다른 음반사들을 돌아다니며 부탁했지만 가사가 장난스럽다, 괴상하다며 퇴짜만 맞다가 그 노력이 가상해서 간신히 받아준 곳이 대성음반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대성음반]]의 [[전성기]]였다. 처음 [[산울림]]과 캠퍼스 밴드 위주로 [[앨범]]을 제작했던 대성음반은 언더그라운드와 주류 가수들 그리고 [[트로트]]에서 [[국악]]까지 다양한 음반을 발매하며 영역을 넓혀나갔다. 수많은 히트 앨범을 제작하여 흥행과 작품성의 균형을 갖춘 대성음반은 지구, 오아시스, 성음, 서라벌, 히트레코드 등을 위협하며 업계 랭킹 6위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 폐업 == 하지만 대성음반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고, 1995년까지 활발하게 신보를 제작하며 한서경의 랩 <소양강처녀> 등을 히트시켰지만 더 이상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하고 결국 소리소문없이 폐업하게 된다. [[분류:대한민국의 음반사]][[분류:1981년 기업]][[분류:1995년 해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