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대구 달성 55호분 금귀걸이1.jpg]] [[http://news.imaeil.com/SocietyAll/2018061217314345476|사진 출처 : 매일신문 - 비산동·내당동 산재한 달성고분군 본격 조사, 보호자료 만든다]] [목차] == 개요 ==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달성 고분군]] 내의 제55호분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황금]] [[귀걸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대구 달성 55호분 금귀걸이2.jpg]] [[http://news.imaeil.com/SocietyAll/2014041907331414048|사진 출처 : 매일신문 - [밑줄 쫙∼ 대구 역사유물] (16)대구의 모태 달성]] [[일제강점기]]이던 1923년,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 소천현부) 등이 대구 [[달성 고분군]]을 발굴 조사할 당시 제55호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귀걸이로, 각종 [[신라토기]] 및 부장유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지금은 달성 고분군의 상태가 [[막장]]이라 자세한 연구가 불가능하지만, 당시 일제가 만들어 놓은 『다이쇼 12년 고적조사보고-경상북도 달성군 달서면 고분조사보고(大正十二年古蹟調査報告-慶尙北道達城郡達西面古墳調査報告)』(小泉顯夫‧野守健, 朝鮮總督府, 1936)가 남아있어 유물 확인에 도움이 되고 있다. 금귀걸이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달성 고분군 전체가 4세기부터 5세기 중후반까지 대구 [[호족(한국사)|호족]]세력들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금귀걸이 또한 이 시기에 제작한 유물로 예상할 뿐이다. 당시 이 고분의 주인은 [[신라]] [[경주시|경주]] 중앙정부의 위임을 받아 대구 일대를 통치했으며, 다른 고분에서는 금동관까지 출토된 점에 미뤄보아 사실상 대구 내에서는 [[왕]]의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파일:대구 달성 55호분 금귀걸이3.jpg]] [[http://sldict.korean.go.kr/front/museum/museumView.do?origin_no=25252&top_category=MUE&category=&searchKeyword=%EA%B8%88%EA%B7%80%EA%B1%B8%EC%9D%B4&searchCondition=&search_gubun=¤t_pos_index=0&pageIndex=1|사진 출처 :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 대구 금귀걸이]] 오직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로, 당시 대구 지역의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대구박물관 소장품]] [[분류:대구광역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