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아프리카의 수도)] [include(틀:이슬람 도시 기구의 도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Nouakchott_air_01.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Central_mosque_in_Nouakchott.jpg]] [[아랍어]]: نواكشوط(Nawākšūṭ, 나왁슈트) [[프랑스어]]: Nouakchott || '''{{{+1 {{{#ffffff 누악쇼트}}}}}}''' || || [include(틀:지도, 장소=누악쇼트)] || [목차] == 개요 == [[모리타니]]의 수도이자 모리타니 제 1의 도시이다. [[베르베르어]]로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이란 뜻이다. 인구는 2019년 센서스 기준 약 1,195,600명. [[누악쇼트 국제공항]]이 위치해 있으나 2016년 누악쇼트-옴툰시 신공항이 건설되며 폐쇄되었다. == 역사 == 1600년대 중반 [[베르베르인]]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고, 1950년대까지만 해도 200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모리타니가 [[프랑스]]에서 독립하는 것이 정해지면서 프랑스 식민정부에 의해 1958년 수도로 지정되었다.[* 그 전에는 모리타니 전체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였다.] 이 곳이 선정된 이유는 [[사하라]] 끄트머리 해안지대에 접해 있어 최난월 평균기온이 29℃이며 40℃ 이상으로 올라가는 날이 많지 않은 온화한 기후를 띄고 있다는 점, 국토 중앙부에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이후 15,00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 계획이 시행되어 1960년 모리타니가 독립할 시점에 어느정도 시가지를 갖추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사헬 지대]]에 가뭄이 지속되며 흉작으로 일거리를 잃은 농민과 정착지를 상실한 [[유목민]]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들어 인구가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1969년 채 2만명도 되지 않던 인구가 1980년경에는 20만명 가까이로 급증하였다. 1976년 [[서사하라]]의 [[폴리사리오 전선]]이 이곳을 습격하기도 하였고 1988-89년에는 무슬림 [[흑인]]과 [[아랍인]] 사이의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등 혼란을 종종 겪었다. == 산업 == 모리타니에서 가장 큰 시장인 케피탈 시장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 전자 산업 === 케피탈 시장 근처에는 전자상가도 있다. 구형 [[노트북]]이 한국 돈 30~50만원으로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굉장히 비싼 편. 아직 3G망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2G 기기와 3G 기기 두 대를 가지고 다닌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스마트기기 수리점이 가끔 있다. 부품은 좋지 않지만 기술은 꽤 좋은 편이므로 안 좋은 기기를 사는 것보다 2~3일 동안 맡겨 놓고 수리받는 게 더 좋다. 다만 수도 누악쇼트를 제외한 지역의 전자 산업은 거의 발달되지 않았다. == 여담 == 이곳 사람들은 항공편으로 휴가철마다 도시 자체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안전한 [[누아디브]]에서 논다.[* 여기 역시 반도 끝자락이라 본토쪽으로 가면 [[배의 무덤]]을 만든 유명한 갱단이 도적질을 하여 대단히 위험하다.] 모리타니 각지에서 인구가 몰려들다보니 슬럼이 매우 넓게 만들어져 있다. 2014년 누악쇼트 주가 북누악슈트, 서누악슈트, 남누악슈트 3개의 주로 분할되었다. 이곳에 여행을 갈 생각이라면 신중히 생각하자.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대단히 위험한 도시가 되었고 총기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실제로 여행자제령이 내려져 있다. 한국 대사관도 없는 나라라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른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주 모로코 한국 대사관에서 모리타니를 겸임한다.] [[파일:1631694638354.jpg]] 누악쇼트에서 운행하는 [[택시]]다. 구형 [[벤츠]] 세단을 택시로 사용하는데, 그냥 굴러가기만 하는 폐차 직전의 차량이 대부분이다. 모리타니에서 유일하게 아동복지부와 복지시설이 있는 곳이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모리타니 관련 문서)] [[분류:아프리카의 수도]][[분류:모리타니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