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cc00 {{{+3 노르셰핑 (스웨덴)}}}}}}|| ||<-3><:> [include(틀:지도, 장소= Norrköping)] || * [[스웨덴어]]: Norrköping [목차] [clearfix] == 개요 == [[스웨덴]] [[외스테르예틀란드]](Östergötland) 주의 도시. [[수력 발전]]과 [[방직]] 산업이 발달하여 스웨덴의 [[맨체스터]]라는 별칭이 있다. 스웨덴어로 노르셰핑은 북쪽(Norr)의 시장(Köping)이라는 의미.[* 외스테르예틀란드 주에는 [[쇠데르셰핑]](Söderköping)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은 남쪽의 시장이라는 뜻.] == 역사 == [[중세]] 시기부터 모탈라 강 하류에 위치한 현재의 노르셰핑 일대에 정착민들이 모여 살았으며 12세기에 [[노르웨이]]의 성왕 [[올라프 2세]]에게 헌정되었다는 교회에 대한 기록이 전해진다. 1283년, [[스웨덴 국왕]] 발데마르의 왕비인 덴마크의 소피가 근처 수도원에 연어 낚시에 대한 권한을 주었다는 기록에서 처음 언급되며 14세기 무렵 [[알브렉트]] 왕으로부터 도시의 지위를 받았다. 다만 중세 시대의 흔적은 [[에리크 14세]] 시대에 벌어진 [[북방전쟁|북방 7년 전쟁]]으로 인해 현재 남아있지 않다. 현재의 노르셰핑은 [[요한 3세(스웨덴)|요한 3세]]때 재건되었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에 의해 스웨덴 무기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17세기에는 수도 [[스톡홀름]]의 뒤를 이어 [[리보니아]]의 [[리가]]와 스웨덴의 [[제2의 도시]] 지위를 두고 경쟁했다. 그러나 이후 [[덴마크]]와의 연달은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대북방전쟁]] 당시 [[러시아 제국군|루스 차르국 군대]]에 의해 약탈을 당하기도 했다. 대북방전쟁이 끝난 후 재건되었고 1762년에는 스웨덴 최초의 극장이 지어졌다. 1800년 [[구스타브 4세 아돌프]]는 노르셰핑의 성 올로프 교회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 선박 사업이 발달했으며 이후 면화, 제지 공업이 발달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섬유 공업도 발전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인건비에서 [[이탈리아]], [[일본]] 등에 밀리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 기타 == * [[IFK 노르셰핑]]의 연고지다. * 한국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촬영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분류:스웨덴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