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우디아라비아 관련 문서)] [[파일:사우디 네즈드.png]] [목차] == 개요 == [[아랍어]] {{{+1 نَجْدٌ }}} [[영어]] Najd [[사우디아라비아]] 내륙 지역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지명. 표준 아랍어 발음은 나즈드이고 그외에 네즈드, 나즈드, 나지드 등으로도 표기된다. 서부인 [[히자즈]]와 함께 사우디의 양대 지역 중 하나다. 현재의 행정 구역으로는 [[리야드주]]와 알카심, [[하일주]]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 상으로는 그저 황무지로 보일 수 있으나 중동 지역답게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아랍어로 네지드는 고지대란 의미로, 해발 700 ~ 1500m의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권인 [[리야드]]-디리야-[[카르지]]를 포함하여 [[부라이다]]-[[우나이자]], [[하일]], 와디 앗 다와시르 등의 오아시스 지대에 주요 도시들이 자리한다. == 역사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조각.jpg|width=322]]||[[파일:사우디 아랍어.jpg|width=260]]||[[파일:사우디 파우 1.jpg|width=168]]|| |||||| 네지드 남부 카리야트 알 파우 유적의 유물들. 헬레니즘 영향이 보인다. 중간의 석판은 사우디 최고(最古)의 아랍어 유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부 아랍어 계열인 미네아어가 적혀 있는 기원전후 무렵 석판이다. 현대 아랍 문자의 직접 조상인 북부 아랍어 계열의 나바테아어가 적힌 유물로는 시리아에서 발견된 4세기 무렵의 나마라 석판이 유명하다.] |||||| === 고대 : [[킨다 왕국]] === 네지드 지역의 문명은 아랍인의 확산을 따라 예멘에서 전해졌다. 남부에 해당하는 현재의 [[나즈란]] 동북쪽 200km 지점의 와디 앗 다와시르 일대가 중심지였다. 상고 시대에는 알 마가르를 중심으로 신석기 농경 문화가 발달했고, 고대에는 인근 카리야트 알 파우를 중심으로 한 킨다 왕국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키네다콜피타이라 불렀다. 5세기 들어 아라비아 반도 통일에 나선 킨다 군주 알 하리트 빈 아므르는 [[라흠 왕국]]의 수도 알 히라를 점령했으나 529년경 알 문디르 3세에게 패하고 붙잡혀 처형당하였다. 비슷한 시기 킨다 왕국의 종주죽이던 예멘의 [[힘야르 왕국]]이 무너지자 왕권이 약했던 킨다 왕국은 아사드, 타글리브, 카이스, 키나나 부족 등으로 분열되었고 그마저도 540년경 라흠 왕국의 보복 원정으로 뿔뿔히 흩어졌다. === 중세 이슬람 시대 === 이러한 자힐리야 시대에 네지드는 사막 횡단 교역이 있었고, 그러한 대상 중 하나였던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게 된다. [[히즈라]]와 함께 개시된 이슬람 시대에 네지드는 [[릿다 전쟁]]에서 툴라이하와 무사일라마 등이 저항하기도 했으나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에 의해 진압된 후 확고한 이슬람 지역이 되었다. 네즈드 부족들 중에서도 바누 타밈은 이어진 [[이슬람 정복]]의 주축 중 하나로 이라크와 이란 전역에서 활약하였다. 7-9세기 네지드의 중심은 현 리야드 동남쪽 외곽에 해당하는 하즈르이었는데 866년 [[하산 빈 알리]]의 후손인 바누 우카이디르[* 시아파였다. 따라서 10세기 초엽 사우디 대부분 지역이 쉬아였던 것..]가 보다 더 남쪽인 카르지 오아시스로 옮겼다. 10세기 들어 동쪽 알 하사에 [[이스마일파]] 근본주의 세력인 [[카르마트]]가 부상하자 바누 우카이디르는 그와 연합했으나, 928년 관계가 틀어져 에미르 이스마일 빈 유수프가 살해당하고 결국 카르마트에 복속되었다. 11세기 후반 카르마트가 쇠퇴하자 네지드는 바누 킬라브가 주도권을 쥐었다. === 근대 : 사우드 왕가의 본거지 === 7세기 중반 [[이슬람 제국]]의 주도권이 이집트-시리아-이라크 일대로 옮겨간 후 기존 [[아라비아 반도]]는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되었다. 특히 사막이 대부분인 네지드는 그 정도가 더 심했고, [[셀주크 제국]]부터 [[오스만 제국]]까지 일대의 부족들은 별 간섭을 받지 않고 유목 생활을 하며 자치를 유지하였다. 간혹 이라크와 히자즈를 잇는 성지 순례 (핫즈) 길을 따라 세워진 성채가 보수될 뿐이었다. 그러던 18세기 네지드의 사막화가 심해지며 여러 부족들이 [[걸프]] 해안으로 이주하였는데, 그중 바니 우투브는 쿠웨이트 (알 사바흐) / 바레인 (알 칼리파) / 카타르 (알 타니) 왕가의 기원이 되었고 바니 야스는 아부다비 (알 나흐얀) / 두바이 (알 막툼) 왕가의 기원이 되었다. 남은 네즈드 부족들은 1744년 디리야를 기반으로 세워진 무함마드 빈 사우드와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의 1차 사우디 국가 하에 통합되어 일시적으로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장악하는 정복 전쟁을 벌이게 된다. 비록 1818년 오스만 제국 휘하 이집트 총독 [[메흐메트 알리]] 파샤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6년 후 디리야 부근 리야드를 중심으로 [[네지드 토후국]]이 세워져 다시 네지드 ~ 걸프 해안을 통합한다. 비록 1891년 친오스만 세력인 라시드 가문의 자발 샴마르가 네지드 왕국을 멸하고 네지드를 일시 정복하지만 10년 후 사우드 왕가가 돌아와 3차 사우디 국가, 즉 리야드 토후국이 세워진다. 그 군주인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이크완 부대를 앞세워 1913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동쪽의 알 하사를 정복하고, [[1차 대전]]기 영국의 아랍 대봉기 참여 제안을 거부한 채 힘을 키워 1921년 숙적인 자발 샴마르를 멸하였다. 이로써 네지드를 통일한 압둘 아지즈는 술탄을 칭하였고, 1925년에는 서쪽의 [[헤자즈 왕국]]을 정복하며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강역을 확보하였다. 1926년 히자즈, 1927년 네지드의 왕을 칭한 압둘아지즈는 마침내 1932년 두 왕위를 통합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세운다. [[분류:사우디아라비아]][[분류:중동]][[분류:아시아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