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廷賢 [[1933년]] [[12월 13일]] ~ [[2020년]] [[12월 21일]]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소설가. 본관은 [[의령 남씨|의령]](宜寧)[* 22세 정(廷) 항렬.]. == 생애 == 1933년 12월 13일 [[충청남도]] [[서산시|서산군]] 서산면 동문리(현 [[서산시]] [[동문동]])[* [[당진시|당진군]](현 [[당진시]]) [[정미면]] 매방리에서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221059|태어났다고]] 소개하는 자료들도 다수 있으나, [[https://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View.do?code_value=H&vvm_seq=8796&ccm_code=H041&ccm_subcode=H641|직접 작성한 작가 연보]]에 서산 출생으로 되어 있으니 당진군 정미면 매방리는 아마도 원적지로 보인다.]에서 아버지 남세원(南世元)[*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부터 1926년까지 당진보통학교,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정미보통학교,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인주보통학교-인주심상소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근무했으며, 1952년에는 서산 음암국민학교 교장을 [[http://db.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sort=&dir=&limit=20&page=1&pre_page=1&setId=16&totalCount=16&kristalProtocol=&itemId=jw&synonym=off&chinessChar=on&searchTermImages=%EB%82%A8%EC%84%B8%EC%9B%90&brokerPagingInfo=SnUpYrZZuHIxMzHLMdPQRSi0k0mUUpCDsHuCGHyKLMNd0f0h&selectedTypes=&selectedSujectClass=&searchKeywordType=BI&searchKeywordMethod=EQ&searchKeyword=%EB%82%A8%EC%84%B8%EC%9B%90&searchKeywordConjunction=AND|역임했다]]. 1956년 2월에는 서산교육감에 [[http://db.history.go.kr/id/npda_1956_02_21_x0003_0420|선출되었다]].]과 어머니 이낙년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19970523.00000016.000080|태어났다]]. 1940년 [[아산시|아산군]](현 [[아산시]]) 소재 도고공립심상소학교(현 도고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3학년 때 아버지의 전근으로 [[서산초등학교|서산영공립국민학교]](현 [[서산초등학교]])로 전학했다. [[8.15 광복]] 후 팔봉국민학교와 지곡국민학교로 전학했다가 정미국민학교를 졸업했다. 1947년 [[서산중앙고등학교|서산농림중학교]](현 [[서산중앙고등학교]])에 수석입학했으나, 2학년 때 [[결핵]]에 걸려 1년간 휴학했다가 곧 중퇴했다. 그 뒤 1948년 [[당진중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가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말 [[결핵|장결핵]]에 걸려 장기간 입원하게 되었고, 또 다시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1953년에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아버지의 권유를 받고 [[대전사범학교]](현 [[공주교육대학교]]) 연수과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졸업했다. 졸업 후 학교장 추천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을 허가받았으나 강의를 듣고 실망해 곧 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 뒤 교사 생활을 조금 하다가 그마저도 1954년 임파결핵이 발병하여 그만두었고, [[고려대학교의료원|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하여 3차 수술을 받으며 장기 요양 시간을 가졌다. 이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기도 했으나 1년만에 중퇴했다. 1958년 작품 「경고구역」이 첫 추천을 받았고, 1959년 『자유문학』에 작품 「굴뚝 밑의 유산」으로 등단했다. 1961년에는 「너는 뭐냐」로 제6회 [[동인문학상]] 후보상을 수상하면서 승승장구하는가 싶었으나, 1965년에 『현대문학』에 발표한 단편 「분지」가 북한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조국통일』에 소개되면서 이른바 [[분지 필화사건]]을 겪었다. 그래서 작품도 작품인데 문화 탄압의 사례로 더 유명한 작가다. 이후에도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및 문인 간첩단 사건 등에 연루되어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또 한 번 감옥에 갔다가 그해 8월 석방되고, 1980년에도 예비 검속으로 구속되기도 하는 등 수난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저런 문학계 활동을 하다가 말년에는 건강이 나빠져 칩거하였다. 2020년 12월 21일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한일병원에서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716|별세했다]]. 아내인 신순남(辛順南, 1934 ~ 1996)은 1963년부터 외화 번역가로 일하면서 <달라스>, <형사 콜롬보>, <디즈니랜드>, <호호 아줌마> 등 수천여 편 가량의 미국 외화 및 일본 애니메이션 번역을 많이 맡은 바 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1081600239110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1-08-16&officeId=00023&pageNo=10&printNo=18572&publishType=00010|조선일보 기사]]) == 작품 목록 == * [[https://web.archive.org/web/20181202160724/https://www.changbi.com/archives/33733?cat=2637|분지]] * 허허 선생 * 편지한통 * 엄마, 아 우리 엄마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서산시 출신 인물]][[분류:의령 남씨]][[분류:1933년 출생]][[분류:2020년 사망]][[분류:공주교육대학교 출신]][[분류:보관문화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