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음이의어]][[분류:동명이인]] [목차] == 男子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남자)] == 제주도 사투리 == 명사, [[국자]]의 [[제주도 방언]]. == [[논어]]의 등장인물 == 南子. [[논어]]에 나오는 인물로, 위영공의 부인으로 남편이 늙어, 사실상 나라의 실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명한 색녀였으며, [[공자]]와 만나기도 했다. 음란하다는 평가와는 조금 상반되게 공자를 존경한 걸로 보이는데 공자가 위나라를 방문했을 때 억지를 좀 부려 공자와 면담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런 신분의 여자가 외간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들었는데 공자를 존경했는지 아니면 그의 명성에 반했는지 좀 억지를 부려 공자와 면담했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이를 힐난하자 공자는 하늘에 맹세까지 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실은 훌륭한 정치가였다는 설도 있다. --여자가 남자다[* 남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남자가 송나라의 공녀이기 때문이다. 송나라 국성은 자인데 선진시대 여성은 성을 뒤에 붙이고 별칭이나 모국 혹은 시집 간 나라명을 성 앞에 써서 이름 삼는다. 아마 궁궐 남쪽에서 태어나거나 기거하여 남자라 부른 듯.]-- == [[조선]]의 인물 == 南磁. [[1601년]]~[[1683년]] 조선의 인물.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정부(正夫), 호는 무민당(无悶堂). 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고결하여 책읽기를 즐겨하고, 벼슬에는 별로 뜻이 없었다. 그러나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사마시에 합격을 하였으나 여전히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병자와 정묘의 호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적들과 맞서 싸워 많은 공을 세웠다. [[1633년]]에 다시 사마시에 응하여 합격하였으나, 그때 아버지가 죽자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독서와 저술로 여생을 살았다. 저서로는 『중용차의(中庸箚疑)』가 있다. --이쪽은 이름도, 자도, 행적도 그야말로 남자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남성, version=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