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미국의 역사]][[분류:선거전략]][[분류:인종차별]][[분류:미국 공화당]][[분류:1960년대]] [목차] [Clearfix]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gnew_Golf_SouthernStrategy_Feb10_1970.jpg|width=100%]]}}} || || '''공화당의 남부전략을 비판하는 만평[* "남부전략" 골프공을 날리는 인물은 닉슨의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이고 골프공에 맞은 인물은 [[에이브러햄 링컨]]]''' || {{{+1 '''Southern strategy'''}}} == 개요 == 1960년대 [[미국]]에서 [[공화당(미국)|공화당]]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 정서를 이용해 표심을 얻기 위한 선거전략이다.[* Branch, Taylor (1998). "New worlds passing". ''Pillar of fire''. Nueva York: Simon & Schuster. p. 242.] 특히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 전략은 두드러졌다. 이로 인해 [[중위 투표자 정리]]에 따라 점점 [[민주당(미국)|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체성과 당론이 중도로 수렴하던 정치판에서 완전한 텃밭 교체가 일어나, 과거 공화당의 지지층인 북부가 민주당으로 이동하고, 과거 민주당의 지지층인 남부가 공화당으로 이동하는 대격변이 완성되었다. == 역사 == 본래 남부는 [[남북전쟁]]으로 흑인 [[노예제]]를 폐지하고, 전쟁 이후 1877년까지 거의 20년 가량 남부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했고, 이러한 북부와, 북부정당으로 인식된 공화당에 대한 반감으로 민주당의 의석을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 당시 흑인들의 참정권을 박탈하는 식의 인종차별정책도 남부지역의 민주당 조직에 의해 자행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 당시에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속에서 북부와 중부의 대도시들은 큰 성장을 보인데 반해 농촌이 주산업이었던 남부는 북부에 비해 현저히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했으며, [[윌리엄 J. 브라이언]]과 인민당과의 연합으로 민주당도 개혁주의적인 의제를 받아들이면서 개혁주의 세력들이 민주당 내에서 나름대로의 지분을 차지하였지만, 불편한 동거는 이어졌다. 그때까지 민주당의 모토는 각 주의 자유를 보장하며, 연방은 주의 권한을 넘는 정치행위를 하는 것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기 집권하게 되는 19세기 말에 미국이 북아메리카의 영토 대부분을 손에 넣고, 본격적으로 [[태평양]]에 진출하는 시점부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미국이 오직 자국의 사정만 신경쓸 수 없고, 주 정부는 연방과 별개로 타국과 외교할 권한이 없기에 미국 연방의 팽창주의와 해외 진출은 자연스럽게 주의 권리 침해와 연결되었다. 사실 이 때는 공화당에서 계속 대통령을 배출했고 공화당의 이념은 연방 팽창주의었기에, 민주당이 별다른 힘을 쓸 수 없었다. 남북전쟁에서 패한 후유증으로 정치적으로 발이 묶여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공화당의 장기집권 중 발생한 [[1907년 은행 패닉]] 이후 더이상 주 정부의 자유로운 경제활동만으로는 미국 경제의 쌓여있는 모순과 이 때문에 생기는 공황을 막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끝내는 이 공황의 책임으로 공화당이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에 패해 대통령 자리를 잃고, 우드로 윌슨은 국민적 압력으로 미국의 진정한 중앙은행이라 할 수 있는 [[연방준비제도]]를 창설한다. 이는 민주당의 원래 이념과는 배치되는 경제의 중앙집중화와 국가통제의 강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당한 논쟁거리였다. 우드로 윌슨이 마무리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민주당은 다시 대통령 자리를 공화당에 내준다. 하지만 공화당의 재집권은 처참한 [[대공황]]으로 돌아왔고, 당시 미국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굶을 걸 걱정하던 시대를 남긴 공화당에 대한 분노로 다시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집권한다. 그가 밀어붙인 [[뉴딜정책]]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의 미국 참전은, 더이상 민주당이 주의 권한에 얽매이지 않고 미국 연방의 이익을 위해 [[미군|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제 민주당의 이념은 더이상 미국 건국과 창당과 함께 이어져 왔던 각 주의 권한 보호가 아니게 되었다. 원래 공화주의를 지향하던 공화당은 완전히 자기들의 이념을 민주당에 뺏긴 꼴이다. 20년간의 민주당 장기집권에 지친 미국 시민이 공화당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선택하지만, 공화당은 이전까지의 방식으로는 선거에 승리할 수 없어 전쟁영웅이자 중도성향의 아이젠하워를 모셔와 대통령으로 만들었기에 공화당과 민주당의 스펙트럼이 상당부분 겹치게 된다. [[냉전]] 상황에서 공화당이 [[고립주의]]를 시도하기엔 이미 늦었다. 또한 2차 대전으로 인해 전시체제가 된 미국 경제에서 전 국민이 나와서 일하게 되어 이전까지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 흑인|흑인]], [[여성]]들이 사회에 나와 전쟁물자를 만들기 위해 노동하였고, 그 영향으로 [[1950년대]]~[[1960년대]]에 여성 인권 운동과 함께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해졌다. 그런 여성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존 F. 케네디]]와, 케네디의 암살 후 후임이 된 [[린든 B. 존슨]]이 [[1964년]]에 [[민권법]]을 통과시키자 이제는 완전히 과거 노예제에서 시작된 흑백 분리 정책까지 뒤집히며 그동안 전통적인 지지자였던 남부 지역 백인들이 완전히 민주당에 배신당했다는 반감이 생겨났다.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같은 해에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의 자치권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나온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는 남부 백인들에게 호응을 어느 정도 얻었다. 당시에 존슨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존슨이 이기긴 했지만..[* 다만 남부전략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닉슨이나 그 주변 인물들과 달리, 골드워터의 경우 인종차별보다 순수한 [[자유지상주의]]적 관점에서 [[민권법]]을 반대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이런 구도를 역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굳히면서 당의 체질을 180도 바꾸는 결단을 한 인물은 바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 그의 정치 전략가인 [[케빈 필립스(미국)|케빈 필립스]](Kevin Price Phillips)이다. 닉슨은 권력에 대한 집착은 있어도 실용주의자였다. 1964년 선거의 패배와 이어지는 린든 존슨 행정부의 행보를 보고, 과감하게 텃밭 교체를 시도한 것. 닉슨과 필립스는 과거 [[에이브러햄 링컨|링컨]]이 만들어놓은 공화당의 이미지를 180도 바꾸어, 흑인에 대해 교묘하게 차별적이고 보수적인 수사를 구사하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흑인 권리 향상 정책에 반대를 표하여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당시 공화당이 대놓고 흑인차별이 옳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아니었고 공화당 주요 정치인들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수사를 사용한 것을 부인했으나, 2005년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인종 양극화를 이용했으며, 흑인 투표를 무시했다는 점을 [[NAACP]]에 공식 사과하였다. [[http://www.boston.com/news/nation/articles/2005/07/15/gop_ignored_black_vote_chairman_says/|#]] == 용어에 대한 비판 == === 반론 === == 같이 보기 == * [[미국/인종차별]] * [[뉴딜동맹]] - 본래 뉴딜동맹은 흑인계층과 남부 백인 딕시들의 불편한 동거에 가까웠는데, 민권법으로 흑인계층의 지지는 더욱 강화되었으나, 공화당의 남부전략으로 후자가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