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 개요 == '''나제통문'''(羅濟通門)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산85에 위치한 터널이다. 콘크리트로 만든 터널이 아닌 자연 암반을 굴착한 석굴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장소로 오해받기도 하나, 엄연히 근대에 만들어진 터널이다.[* 애초에 천 수백년 전의 삼국시대 기술로 흙산도 아닌 바위산을 뚫을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다만 신라 전성기 백제와의 국경지대가 한때 진안-무주 일대를 지난 적은 있었다. == 역사 == 백제와 신라의 국호가 들어가는 '나제통문'이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김천군과 [[거창군]]을 잇는 신작로를 내면서 만들어진 터널이다. 나제통문을 중심으로 위쪽 마을은 '기니미 마을', 아래쪽 마을은 '이미리 마을'이라고 하였기에 주민들에게 '기니미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광복 및 정부 수립 이후인 [[1963년]]에 관광 목적의 무주구천동 33경이 지정되면서 '나제통문'으로 이름을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4/2018012400003.html|붙였다]]. 본래는 옛 신라 땅과 백제 땅의 가운데에 있는 통문이라는 의미로 나제통문이라 작명한 것으로 추정되나,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원래부터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잇던 문이었던 것처럼 왜곡'''되었다. 이에 나제통문은 무주 지역의 오랜 역사 유적인 것인 양 홍보되기도 했다. 이러한 왜곡된 정보는 관공서에도 채택되어, 무주군청의 관광안내도에서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던 곳이다. 석모산의 기암절벽을 뚫고 동서를 통하는 길을 내었는데 지금도 양쪽지역의 언어와 풍습이 다르다"라고 기술하기까지 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한때 별다른 검증 없이 교과서에도 등재되었고, 중·고등학교에서 이 지역으로 견학이나 수학여행을 오면 단골로 들리는 곳이 되었다. 이후 당시 무주구천동 33경 지정 작업에 참여했었던 향토사학자 오재성 선생[* 숭실대학교 전 법대 교수인 이을형 교수가 오재성 선생에게서 역사를 배웠다.]이 이러한 오류를 적극 제보하여 교과서에서는 해당 내용이 삭제되었다.[[http://www.thegolf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95|#1]], [[https://newscj.com/143574|#2]] == 기타 == * 지형적 상징 때문에 무주군의 경계일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나, 나제통문을 동쪽으로 나와도 무주군이다. [[분류:전라북도의 터널]][[분류:무주군의 건축물]][[분류:1925년 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