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2px-First_Anniv_of_PRC_800_Yuan_stamp.jpg]] [[중국]] 건국 1주년을 기념하는 우표 ([[중국우정]] 발행) ~~이때만 해도 [[간체자|속이 비어 공허감을 느끼게 하는 한자]]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일본어]]: [ruby(長崎国旗事件, ruby=ながさきこっきじけん)] [[중국어]]: 长崎国旗事件 [목차] == 개요 == [[1958년]] [[일본]]의 [[우익]] 단체에서 [[오성홍기]]를 훼손한 사건. == 상세 == [[나가사키]]에 있는 하마야 백화점(浜屋百貨店)에서 [[일중우호협회]]가 주최한 중국 우표 전시회에 우익이 난입하여 오성홍기를 끌어내리고 훼손하였다. 문제는 당시에 [[일본]]과 [[중국]]은 국교가 전혀 없었으며 일본은 [[대만]]과 수교 중이었고 중국은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당시 [[대만]] 주 나가사키 영사관에서는 일중우호협회의 이런 전람회에 강력히 항의했으며 심지어 오성홍기를 두고 "국제법상 불법국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청천백일기가 불법국기...--[* 참고로 일러두자면 비록 미수교 상태였지만 중국 국기의 게양이 국제법상 불법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일본-대만 단교 후에도 [[청천백일만지홍기]]의 게양이 불법인 것은 아니다. --단지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 뿐이지--] 결국 일본은 대만의 이런 반응을 고려하여 당시 일본 형법 상의 '외국 국장 파괴죄'가 아니라 단순 [[경범죄]]로서 [[약식기소]]에 그쳤다. 이 사건으로 중국 측은 격렬히 반발해 [[기시 노부스케]] 내각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했으나 기시 노부스케 내각은 일본 정부는 중국을 정식 정부로 승인하고 있지 않으며 오성홍기는 일본법에 따라 보호받을 자격이 없다고 반응했다. 이에 중국 측이 격노해 중일 간 무역이 일시중지되면서 당시 [[중국 대륙]]과 교류하던 많은 이들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반대로 일본과 교류하던 많은 [[중국인]]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일본은 중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국교 정상화를 추진했고 [[만주]]에 수감된 포로들도 다 송환받았으며 중일 항공협정으로 [[몽골]] 및 [[만주]] 통과 권리도 얻으려던 참이었다. 이 사건으로 당혹스러웠던 건 당연히 일본 외무성. 중일 국교정상화는 추진 후 20년 뒤인 1972년에 이루어졌다.] == 외부 링크 == * [[http://ja.wikipedia.org/wiki/%E9%95%B7%E5%B4%8E%E5%9B%BD%E6%97%97%E4%BA%8B%E4%BB%B6|일본어 위키백과 문서]] [[분류:1958년/사건사고]][[분류:쇼와 시대/사건사고]][[분류:마오쩌둥 시대]][[분류:나가사키시의 사건사고]][[분류:중일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