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品釋 (? ~ 642) [목차] == 개요 == [[신라]]의 [[진골]] 귀족. [[태종 무열왕|김춘추]]의 사위였다. == 생애 == [[백제]]와 신라를 잇는 요충지에 있는 [[대야성]][*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의 도독으로 부임했는데, 그놈의 [[색욕]] 때문에 부하 [[검일]]의 부인을 빼앗아 원한을 샀다.[* 물론 당시 시대상 부인 이외의 여자들을 첩으로 들이거나 한다고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다. 그렇지만 그 여자들이 엄연히 유부녀, 그것도 자기 부하들의 부인들이라는 게 문제지. 게다가 그렇기 때문에 유혹이 아니라 강간을 했을 가능성이 크며 스케일이 큰 문제인 강간이기에 반발이 커진 것.] 부하의 마누라를 건드리다가 털린 것이 마치 [[삼국지]]의 인물인 [[여포]]의 행적과 비슷하다. 642년에 [[백제]]의 장군 [[윤충]]이 대야성에 쳐들어와서 김품석은 수성을 준비했는데 검일이 창고에 불을 지르고 백제군에 항복해버리면서 신라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결국 [[대야성 전투(642년)|대야성은 함락당하고]] 김품석은 아내 [[고타소]]를 죽이고 [[자살]]했다. 이 때문에 김춘추와 김법민([[문무왕]])은 고타소의 죽음에 대해 백제에 깊은 원한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무열왕은 이 소식을 듣고 마치 하루종일 정신나간 사람처럼 기둥에 선 채로 있었으며, 앞에 뭔가 지나가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시신은 나중에 [[김유신]]이 붙잡은 8명의 백제 장수와 교환해서 수습했다. [[백제]]에 투항한 [[모척]]과 [[검일]]은 백제에서 머물다가 훗날 백제가 멸망하고 [[사비성]]이 함락될 때 붙잡혀 처형당했고, 문무왕은 붙잡은 백제 왕자 [[부여융]]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대야성의 원수를 갚았음을 천명했다.[* “예전에 너의 아비가 억울하게 나의 누이를 죽여 옥중에 파묻었던 일이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고통스럽고 머리가 아프도록 하였더니, 오늘에야 너의 목숨이 내 손 안에 있게 되었구나."] == 평가 == 가히 한국사 최악의 [[낙하산 인사]]라고 부를 만한 인물.[* [[조선]]의 [[원균]]도 최악의 인사지만, 그래도 경상우수사 전부터 부사, 수사를 역임했을 정도로 경력 정도는 있었고, 적어도 기록할 만큼의 눈에 띄는 공적은 없지만, 본인과 함께 임명된 [[이순신]], [[권율]] 등을 보면 그들처럼 뭔가 공적 정도는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이순신과 함께 싸울 때는 혼자서 공적에 열을 올려 죄없는 백성들을 죽일지언정 도망치거나 항복하거나 하는 치사한 짓거리들은 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과거에 급제한 건 어느 정도 낙하산인데, 그의 부친 원준량(덜 알려진 인물이라서 그렇지 이 자도 아들 뺨치는 막장 인간이다.)에 의해 부정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급제하고 나서 바로 경상우수사가 된 건 아니니 김품석에 비하면 그래도 새 발의 피다.] [[자업자득|요충지인 대야성을 담당해야 하는 장수의 중요한 임무를 망각하고 색욕에 미쳐 부하들 부인들을 욕보이는 행위로 본인 목숨과 부인 고타소를 죽음에 이르게하고 요충지 대야성을 잃어버려 자국을 위기에 몰아넣었으니]] [[삼국사기]]나 여러 역사서들에서도 하나같이 악평 일색이며, 당연히 오늘날에도 평이 상당히 나쁘다. 예나 지금이나 오히려 부인을 빼앗긴 복수심에 나라를 배신한 모척과 검일 둘을 두둔하는 의견이 대세다. [[매국노]]들을 두둔해줄 정도로 그 원인제공을 한 김품석이 피도 눈물도 없는 희대의 쓰레기라는 것.[* 애초에 매국노든 배신자든 개인적 사익을 위해 배신한 경우에는 어느 시대건 욕먹기 십상이지만 [[오자서]], [[틀락스칼텍]] 등 그래도 명백히 어쩔 수 없이 배신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다면 평가가 엇갈리거나 옹호받을 수 있다. 현대인들의 눈이라면 모를까 당시에 그 당사자들은 그런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백제군이 쳐들어오자 천혜의 요새 대야성과 정예 부대를 거느리고 있었음에도 [[윤충]]의 회유에 넘어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바로 항복하여 목숨이나 구걸하는 그의 쩨쩨한 최후가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한 [[죽죽]]과 비교된다. 그야말로 실제 역사에 일어난 현실판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격 되는 인물. 김품석 사후 [[태종 무열왕|김춘추]]가 직접 [[고구려]], [[왜국]], [[당나라]]를 왔다갔다하며 감옥에 갇히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몸을 사리지 않는 활동을 한 것도 김품석의 수치스러운 전사에 정치적 타격을 입고 이를 직접 수습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있다. 김품석은 당연히 장인 김춘추와 본인 가문의 어른인 [[김유신]] 계파의 직계 핵심 인물이었을 테니 신라 정계에서 김춘추에게도 상당한 책임을 입혔다고 유추할 수 있다. 신라 정계는 김춘추가 즉위하기 전까지는 [[비담]], [[김알천]]으로 대표되는 귀족 견제 세력이 존재했고 이들 계파와 경쟁하는 구도였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사실 고타소는 문무왕의 여동생이라서 참변을 당했을 당시 10대[* 문무왕은 626년 생이고, 삼국사기에서 문무왕이 부여융에게 침을 뱉으며 모욕을 줄 때 고타소를 분명히 '나의 여동생(我妹)'이라고 칭하고 있다. 즉, 고타소는 아무리 나이를 많이 잡아도 16세를 넘기지 못한 셈인데, 아예 시집간 직후 이런 끔찍한 참변을 당했을 수도 있다.]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황상 김품석 역시 젊은 나이에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 보면 인맥빨로 대야성 같은 요충지에 들어온 철부지 젊은이가 개념없이 행동하다가 나라를 멸망 위기에 빠트리는 초대형 사고를 친 셈. ~~이렇게나 젊고 능력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야성 같은 요충지를 담당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비슷하면서 스케일이 더 거대했던 인물로 낙하산도 아니고 아예 황제였다가 나라 자체를 말아먹은 [[후연]]의 말제 [[모용희]]가 있다.[* 허나 모용희도 능력이 아예 없는건 아니다. 황제가 되기 전, 하간공 시절에 당시 후연 황제인 모용성의 명령으로 고구려의 남소성과 신성을 쳐 함락시켰는데 이 때 당시 나이가 '''15세'''였고 이 일로 모용성은 웅장하고 영리하여 모용수(후연의 건국자)의 풍모가 있었다고 평했다. 당시 고구려 왕이 '''광개토대왕'''이며 광개토대왕 시기 고구려는 단 1번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패배가 없었는데 그 1번이 바로 모용희의 남소성과 신성의 함락이다.] == 대중매체에서 == 하나의 일화만 기록에 남긴 인물이지만 임팩트 있어[* 내정자의 사위라서 요직에 앉은 낙하산 인사, 아내를 빼앗긴 것에 대한 복수라는 막장 스토리. 신라의 폐쇄적인 신분제인 골품제의 폐단, 부족한 리더십의 결과,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애국심에 대한 회의를 전부 다룰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이다. 대중매체에서 부정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적은 [[김춘추]]과 [[김유신]]의 핵폭탄급 실책이기에 기존의 인물상을 비틀어 버리는 소재이기도 하며 태종 무열왕과 [[문무왕]]의 인생에서도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크게 다루어진다.] [[삼국통일전쟁]]기 드라마에는 곧잘 등장한다. * 1992년 [[KBS]] 드라마 <[[삼국기]]>에서는 배우 [[권혁호]]가 연기했다. * 2006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드라마)|연개소문]]>에서는 [[악역]] 포지션으로 등장하며 부인 [[김고타소]]는 당당한 여걸로 등장하는데 원래 [[역사]]대로면 김품석은 악역이 되는게 맞다. 김춘추는 [[사위]]인 김품석을 출세시키기 위해 [[합천군|대야성]]의 성주로 보냈으나 김품석은 성주로서의 [[권력]]을 남용하다가 결국 [[장군]]들과 부장들의 아내들을 술자리에 불러 희롱하거나 잠자리까지 한다. 결국 자신의 수하인 [[검일]]의 아내를 희롱하며 술자리까지 불러냈는데 검일은 이를 참지 못하고 백제군 [[윤충]] 부대에 협력해 대야성의 식량 창고와 무기고에 불을 지르고 [[백제]]군에게 성문을 열어 주었다. 극 중에서는 김품석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의 중재로 김춘추의 딸 김고타소와 [[혼인]]하였기에 아무리 못난 사위라도 앞길을 열어주기 위해 억지로 대야성이라는 중요한 관문의 성주로 보낸 것이 김춘추의 오판이었다. 결국 김고타소와 함께 윤충에게 목이 잘리고 목이 잘린 [[몸]]만 신라로 보내져서 김춘추가 딸과 사위의 복수에 이를 갈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 2011년 [[MBC]] 드라마 <[[계백(드라마)|계백]]>에서는 배우 [[지일주]]가 연기했다. 윤충이 조기 퇴장하고 [[의자왕]]이 친정해 김품석과 김고타소를 직접 참한 뒤에 그들의 [[시신]]을 [[감옥]] 아래 묻어 죄인들이 밟고 지나가게 하는 것으로 나온다. [[성왕(백제)|성왕]]의 목을 계단 밑에 묻었다는 기록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그랬을 가능성은 없다. * 2012년 [[KBS]]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배우 [[김홍표]]가 연기했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왜곡되어 미화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김품석은 김춘추의 사위에 김유신 [[가문]]의 인물이였던만큼 김춘추-김유신 계열의 인재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 사람을 역사대로 표현하면 양대 [[주인공]]인 김춘추와 김유신의 [[역대급]] 실책이 되어버린다. [[분류:642년 사망]][[분류:신라의 부마]][[분류:진골]][[분류:삼국통일전쟁/사망자]][[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