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원주 DB 프로미/선수단)] || '''{{{#ffffff 김주성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한국프로농구 감독)] ---- ||
'''{{{#ffffff 김주성의 수상 및 영예}}}'''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3>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 '''[[2002-03 KBL 챔피언결정전|{{{#ffffff 2003}}}]]''' || '''[[2004-05 KBL 챔피언결정전|{{{#ffffff 2005}}}]]''' || '''[[2007-08 KBL 챔피언결정전|{{{#ffffff 2008}}}]]''' || ---- [include(틀:역대 농구대잔치 MVP)] ---- [include(틀:KBL 역대 신인 1순위)] ------- [include(틀:KBL 역대 국내선수 MVP)] ---- [include(틀:KBL 역대 신인선수상)] ---- [include(틀:KBL 역대 플레이오프 MVP)] ---- [include(틀:KBL 역대 올스타전 MVP)] ---- [include(틀:KBL 역대 최우수 수비상)] ---- [include(틀:KBL 역대 식스맨상)] ---- [include(틀:KBL 월간 MVP/2000~2005)] ---- [include(틀:KBL 월간 MVP/2005~2010)] ---- [include(틀:KBL 라운드 MVP/2015~2020)] ---- [include(틀:KBL 베스트 5/2000~2005)] ---- [include(틀:KBL 베스트 5/2005~2010)] ---- [include(틀:KBL 베스트 5/2010~2015)] ---- [include(틀:KBL 수비 5걸상/2000~2005)] ---- [include(틀:KBL 수비 5걸상/2005~2011)] ---- [include(틀:KBL 수비 5걸상/2014~2020)] ---- [include(틀:KBL 역대 블록상)] ---- [include(틀:KBL 역대 감독상)] ---- ||<-5>
'''2003~2004 [[한국프로농구]] 야투상''' || || [[존 와센버그]][br]([[서울 SK 나이츠|서울 SK]]) || → || '''김주성[br]([[원주 DB 프로미|원주 TG삼보]])''' || → || [[자밀 왓킨스]][br]([[원주 DB 프로미|원주 TG삼보]]) || ||<-5> '''2003~2004 [[한국프로농구]] 블록상''' || || [[마르커스 힉스]][br]([[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 || → || '''김주성[br]([[원주 DB 프로미|원주 TG삼보]])''' || → || 크리스 랭[br]([[서울 SK 나이츠|서울 SK]]) || ||<-5> '''2007~2008 [[한국프로농구]] 블록상''' || || [[자밀 왓킨스]][br]([[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 || → || '''김주성[br]([[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 || → || 브라이언 던스톤[br]([[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울산 모비스]]) || ---- }}} || || '''{{{#ffffff 김주성의 기타 정보}}}'''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파일:DB 김주성.jpg]] || || {{{#ffffff 원주 DB 프로미 영구 결번}}} || || {{{#000000,#e5e5e5 No. 32 김주성}}} || ---- [include(틀:한국프로농구 영구 결번)] ---- [include(틀:KBL 20주년 코트를 빛낸 레전드 12인)] ----- }}} || || '''{{{#ffffff 김주성의 역임 직책}}}'''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원주 DB 프로미/주장)] ---- }}} || || '''{{{#ffffff 김주성의 감독 경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원주 DB 프로미 역대 감독)] ---- }}} || }}} || ||<-3> {{{+1 [[원주 DB 프로미|{{{#ffffff '''원주 DB 프로미 감독'''}}}]]}}} || ||<-3> {{{+1 '''{{{#e1c52d 원주 DB 프로미 No. 32}}}'''}}} || ||<-3> {{{#000000 '''WONJU DB PROMY'''}}}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주성2023-24.png|width=100%]]}}} || ||<-3> '''{{{#000000 {{{+2 김주성}}}[br]金周成 | Kim Jusung}}}''' || ||<|2><-2> {{{#ffffff ''' 출생 ''' }}} ||[[1979년]] [[11월 9일]] ([age(1979-11-09)]세)[* [[음력]] [[1979년]] [[9월 20일]]] ||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 화양리 남평마을[*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135830|기사]]. 그러나 성장은 [[부산광역시|부산]]에서 했다. 기사에서 장수 남평마을이 [[고향]]이라고 했는데 [[본인]]의 고향인지 부모의 고향인지도 확실치 않다. 일례로 [[경기도]] [[안산시]] 태생인 [[김연경]] 선수가 한때 [[전라남도]] [[구례군]] 출신(실제로는 부모의 고향)으로 잘못 소개된 적이 있었다.] || ||<-2> {{{#ffffff ''' 국적 ''' }}}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2> {{{#ffffff ''' 신체 ''' }}} ||[[키(신체)|신장]] 205cm[* [[https://kbl.or.kr/player-staff/player/215053|KBL 공식 프로필]]] [[체중]] 92kg | [[윙 스팬]] 210cm || ||<-2> {{{#ffffff ''' 직업 ''' }}} ||[[농구 선수]] ([[파워 포워드]], [[센터(농구)|센터]] / ^^은퇴^^)[br][[농구 감독]] || ||<-2> {{{#ffffff ''' 학력 ''' }}} ||[[해동초등학교]] {{{-2 (졸업)}}}[br] [[해운대중학교]] {{{-2 (졸업)}}}[br][[동아고등학교]] {{{-2 (졸업)}}}[br][[중앙대학교/학부/체육대학|중앙대학교 체육과학대학]] {{{-2 (사회체육학 / [[학사]])}}} || ||<-2> {{{#ffffff ''' 병역 ''' }}} ||면제 (생계 곤란)[* 부모님의 장애로 인한 생계 곤란] || ||<-2> {{{#ffffff ''' 프로 입단 ''' }}} ||[[2002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2002년 드래프트]] {{{-2 (1라운드 1순위, [[원주 DB 프로미|원주 TG삼보]])}}} || ||<-2> {{{#ffffff ''' 현역 시절 등번호 ''' }}} ||'''32번 - 원주 DB 프로미 / ^^영구 결번^^'''[* 중앙대 시절의 번호로, 2002년 입단 이후 2009-10 시즌을 제외하면 무려 15년 동안 사용한 번호다. 2018년 12월 25일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을 진행했으며 이로써 한국프로농구 소속 구단의 창단 이후 이전에 뛰었던 선수가 같은 번호를 단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이 오직 한 곳에서만 원년 번호를 달고 은퇴한 [[김유택]], [[김병철(농구)|김병철]]에 이어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5번[* 2009-10 시즌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한 ~~[[강동희]]~~의 권유를 받고 달았지만 1시즌만에 32번으로 돌아갔다. 비슷한 예시로는 17-18 시즌 LG의 새로운 감독 [[현주엽]]의 등번호 32번을 1년 동안 달고 뛴 김종규. ~~그냥 원래 번호가 더 좋아.~~] || ||<|3> {{{#ffffff ''' 소속 ''' }}} || {{{#ffffff ''' 선수 ''' }}} ||'''[[원주 DB 프로미|원주 TG-TG삼보-동부-DB]] (2002~2018)''' || || {{{#ffffff '''코치''' }}} ||[[원주 DB 프로미]] (2019~2023) [br] [[원주 DB 프로미]] (2020~2021/ ^^D리그^^) || || {{{#ffffff '''감독''' }}} ||[[원주 DB 프로미]] (2023 / ^^대행^^) [br] '''[[원주 DB 프로미]] (2023~)''' || ||<-3><^|1>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가족 관계 보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ffffff ''' 배우자 '''}}} ||박지선^^(1980년생, 2008년 5월 10일 결혼)^^[* [[중앙대학교|중앙대]] 4학년때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나 7년간의 교제 끝에 2008년 5월 1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주성의 아내는 1994년 부모님을 따라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떠난 [[재미 교포]] 출신이다. [[https://n.news.naver.com/sports/general/article/076/0001949645| ]]] || || {{{#ffffff ''' 자녀 ''' }}} ||장녀 김서윤^^(2010년생)^^[* 김주성의 아내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친정에서 첫 딸을 출산했다, 현재 미국에 위치한 중학교에 재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https://mnews.joins.com/article/3976424|#]]][br]차녀^^(2012년생)^^ || || {{{#ffffff ''' 가족 ''' }}} ||아버지 김덕환^^(1950년생)^^[br]어머니 이영순^^(1958년생)^^[br]여동생 [[김향란]]^^(1981년생)^^[* 전직 [[배구 선수]]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에서 [[미들 블로커]]로 활약했다.] || }}}}}}}}} || [목차] [clearfix] == 개요 == >항상 기록에 욕심 없다. 팀이 우선이라고 말해 왔는데 이렇게 기록이 쌓인 것을 보면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득점과 리바운드, 블록 슛이 쌓인 것은 내가 열심히 한 보상이다. 특히 블록 슛은 한국 첫 번째 기록이라 큰 자부심과 함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꼭 깨지기를 바란다. [br] >---- >2015년 12월 30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전에서 전인미답의 1000 블록을 기록한 후 인터뷰 [[대한민국]]의 [[농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 - [[센터(농구)|센터]]. 현직 [[원주 DB 프로미]]의 [[감독]]. [[원주 DB 프로미]]를 대표했던 선수로 [[영구 결번/스포츠|영구 결번]]도 보유하고 있다. 2m를 거뜬히 넘는 신장에 비해 굉장히 마른 체격이기 때문에 디시 농갤 등에서는 [[멸치]]라고도 불린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ket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105|본인 말로는]] [[살이 찌지 않는 체질|아무리 먹어도 체중이 안 불어난다고 한다]]. [[김주성(축구)|동명의 축구인]] 못지 않은 화려한 커리어와 실력을 보유하였다. == 경력 == === 아마추어 시절 === 3급 지체 장애인인 부모 밑에서 힘든 성장 과정을 겪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높이뛰기 선수를 하기도 하였으나, 집안 사정으로 운동을 곧 그만두었다. 해운대중학교 3학년 시절 이미 키가 2m를 넘었고, 동아고 채윤동 감독과 이상국 코치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되었다. 상당히 늦게 농구를 시작한 편이지만, 농구를 시작한지 반 년 만에 주전 자리를 꿰찼고, 2학년 때는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잠재력은 있지만 외려 동시대 센터인 [[김태완(농구)|김태완]]보다 낮은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지금도 말랐지만 그 때는 제대로 못 먹어서 더 마른 몸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대학교|중앙대]] 농구부의 대부 정봉섭이 김주성을 스카웃하고 적극 지원을 했고, 고등학교 및 대학교 선배인 [[조우현]]이 도움을 주고 하면서 차츰 실력을 키워갔다. 김주성을 스카웃하기 위해 고려대, 연세대측에서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김주성은 그간의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중앙대학교로 진학했다. [[중앙대학교]] 입학 후 잠재력이 폭발. [[임재현(농구)|임재현]], [[조우현]], [[송영진(농구)|송영진]], [[황진원]]과 함께 중앙대 무적 시대를 다시금 열었다. 한때 경쟁자로 꼽히던 김태완을 압도하며, 명실방부한 대학 최고 센터로 자리잡았다. 2m 5cm라는 키가 믿겨지지 않는 스피드와 점프력으로 가볍게 덩크를 꽂고 날아다니며 블록을 하면서 상대 팀들의 인사이드를 송영진과 함께 초토화시켜 버렸다. 프로 진출 이후로는 많이 득점 욕심을 내보이지 않는 편이지만, 대학생 시절 김주성은 전형적인 스코어러였다. 김주성에게 일단 볼만 투입되면 어떻게든 득점으로 이어지곤 했다. 임재현, [[박지현(1979)|박지현]] 두 포인트 가드는 안정적인 리딩으로 볼을 배급해주었다. 김주성이라는 든든한 기둥 덕분에 황진원, 신동한, 조우현 등 슈터들은 마음놓고 외곽에서 지원사격을 했고, 송영진은 내외곽을 오가며 상대 수비를 휘저었다. 공수에서 완벽한 전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김주성의 중앙대 4년은 [[허재]] 이후 가장 빛난 시절이었다. * 1학년이던 [[1998년]]에는 2관왕 ([[1998 대학농구연맹전|대학농구연맹전]][* 1998년에는 한 번만 열렸다.] 공동우승[* [[한양대학교]],[[고려대학교]]와 공동우승] 및 '''[[1998 농구대잔치|농구대잔치]] 우승''') * 2학년이던 [[1999년]]에는 4관왕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MBC배]], [[1999 대학농구연맹전|대학농구연맹전]] 1차 대회 공동우승[* [[연세대학교]],[[고려대학교]]와 공동우승], 2차 대회 우승, '''[[1999-2000 농구대잔치|농구대잔치]] 우승''') + 농구대잔치 MVP * 3학년이던 [[2000년]]에는 3관왕 (MBC배, [[2000 대학농구연맹전|대학농구연맹전]] 우승, '''[[2000 농구대잔치|농구대잔치]] 우승''') + 농구대잔치 MVP * 4학년이던 [[2001년]]에는 트윈타워의 파트너 [[송영진(농구)|송영진]]의 졸업에도 불구하고 [[2001 대학농구연맹전|대학농구연맹전]] 1, 2차 대회를 석권하며 2관왕에 오르는 등[* [[2001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제17회 MBC배]]와 제82회 전국체전, [[2001-02 농구대잔치]]에서는 준우승.] 4년간 김주성이 대학농구계에서 거둔 성적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붙일 게 없을 정도였다. 연세대 1학년 때 [[1993-94 농구대잔치]] 우승 및 MVP를 차지하며 데뷔한 [[서장훈|어느 방송인]] 정도만이 김주성과 비교할 만한 대학 시절 커리어를 가진 선수라 할 수 있다. [[임재현(농구)|임재현]]-[[황진원]]-[[조우현]]-[[송영진(농구)|송영진]]-김주성의 라인업이 외국인 선수를 뺀 프로팀과 맞붙더라도 농구대잔치 우승을 노릴 만한 전력이었으리라는 게 대부분의 평이다. === [[원주 DB 프로미|원주 TG-TG삼보-동부-DB]] === [[파일:external/www.kbl.or.kr/150617_001k.jpg]] 전설의 드래프트 사진으로, 1번 지명권이 삼보에게 가는 순간 [[전창진]]과 [[허재]]가 붙들고 눈물 감격 생 난리가 났었다. 이에 전창진이 감격한 나머지 휘청거리며 나와서 마이크에 대고 반쯤 잠긴 목소리로 “김주성 선수를 지명합니다” 라고 말하는 전설의 장면을 남겼는데, 이미 국가대표로 수많은 경험을 가진 김주성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수많은 1순위 픽들의 변죽 울림을 겪은 팬들이었기에 호들갑이라고 볼만한 상황이었지만, 김주성은 이 첫해부터 그 이유를 몸소 시전해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드래프트 1번 지명으로 [[원주 DB 프로미|원주 삼보 엑써스]]에 입단했는데, 99년 [[정인교(농구)|정인교]]와 트레이드되어 삼보에서 마지막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던 [[허재]]는 김주성의 입단이 결정되는 순간 만세를 부르고 다음 날 새벽까지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basketkorea.com/319.jpg]] KBL에서 '외국인 선수들과 부딪치면 과연 얼마만큼 해줄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시선도 있었으나, 코트 내외를 넘는 허재의 전폭적인 지원과 갈굼(?) 속에 [[파워 포워드]] 자리를 소화하면서 어느 정도의 득점 능력과 존재감 있는 블록슛을 앞세워 가볍게 신인왕을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데뷔 첫 해에 팀을 정규시즌 3위,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끄는 위엄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한국 농구팀이 금메달을 따는데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그 후로도 [[한국프로농구]]의 간판선수로 계속해서 활약하였다. 포워드 자리에서 [[마르커스 힉스]]나 [[단테 존스]] 같은 외국인 선수와 매치업되며 굴욕 아닌 굴욕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했으며, 그 때문에 시즌 MVP 2회, 베스트 5 6회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보통 외국인이 독차지하는 블록슛 타이틀도 두 번이나 차지한 적이 있다. 김주성이 있는 한 동부는 만년 우승후보란 말을 들을 만큼 [[KBL]]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2009-10 시즌 기록은 16.3 득점, 6.6 리바운드, 3.9 어시스트, 1.1 스틸, 1.5 블록슛. 2012-13 시즌, 1월 28일 연습 도중 발목부상로 전치 4주의 진단이 나왔다. 이 부상으로 말미암아 동부는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 테크를 탔다. 2013-14 시즌에는 여러 부상으로 인해 결장하는 경기가 많아졌고, 부상 여파와 나이 등의 영향으로 인해 예전만 못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쑥대밭이 되어버린 동부에서는 김주성 만한 선수도 없었다(...). 김주성에게 걸리는 견제를 나눠줄 거라던 [[허버트 힐|용병]]은 태업 논란에 부상으로 아웃되고 나머지 용병들은 막말로 김주성만도 못한 영향력을 보여주며 동부의 용병농사 흉작을 한탄하게 만들었다. 결국 팀은 13승 41패로 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쓰고 말았다. 어쨌건 나이가 있어도 농구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에 차출되며 김주성만한 빅맨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 동시에 김주성 이후 그동안 쓸만한 국내파 빅맨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4-15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신인드래프트에서 허재의 아들인 [[허웅(농구선수)|허웅]]이 5순위로 동부행이 결정되며 '''KBL 최초로 부자 농구선수[* 허재, 허웅 부자.]와 함께 뛴 선수가 되었다.''' 2015-16 시즌에는 지난 시즌부터 조금씩 던지기 시작한 3점슛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어째 이 형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슛거리가 길어진다~~ 한편 12월 2일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울산 모비스]]와의 경기에서 10득점을 기록하여 [[문경은]] 감독의 9,347득점을 넘어서 '''통산 득점 3위에 올라섰다.''' 12월 30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과의 원정 경기에서 4쿼터 막판 [[조 잭슨(농구선수)|조 잭슨]]의 골밑슛을 블록하여 전인미답의 '''정규시즌 통산 1,000블록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이 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하진 못했지만, 고양 오리온의 막판 맹추격에 찬물을 끼얹는 3점슛을 성공시키는 등 팀 승리에 공헌하였다. ~~사실 조 잭슨이 3쿼터의 인유어페이스에 대한 보답으로 대기록을 내어줬다 카더라~~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매 경기 20분 이상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허웅(농구선수)|클러치 상황의 외곽슛을]] [[두경민|허망하게 날려버리고]] [[로드 벤슨|외국인]] [[웬델 맥키네스|선수들이]] 상대 수비수에 막혀 멘탈이 승천하는 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제 몫을 해줬던 유일한 선수였다. 결국 홈인 [[원주시|원주]]에서 0:3 스윕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팀은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6-17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역대 3번째로 통산 10,000득점을 기록하였다. 2017년 5월 16일 연봉 2억에 1년짜리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잔류를 결정했는데, 2017년 12월 18일에 2017-18 시즌을 마친 후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http://sports.news.naver.com/basketball/news/read.nhn?oid=117&aid=0002991435|관련기사]] 박수칠 때 떠나라의 좋은 예시가 될지도 모르는 명예로운 은퇴의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이며, 2012-13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서장훈]]에 이어 KBL 선수 두 번째로 '''은퇴 투어'''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시작은 2018년 1월 5일 SK 원정경기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SK 측은 김주성과 국가대표팀에서 동고동락한 [[문경은]] 감독, [[전희철]] 코치, [[김선형]] 선수가 같이 있는 피규어를 제작해서 선물했다. [[http://sports.news.naver.com/basketball/news/read.nhn?oid=382&aid=0000617887|관련 기사]] 두번째 은퇴 투어는 2018년 1월 24일 kt 원정경기에서 실시되었다. kt 측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을 기념하여 결승전 경기가 치뤄졌던 코트의 나무를 일부 활용, 당시 멤버들과 함께한 사진이 담긴 기념액자를 선물하였다. 2018년 4월 18일 [[2017-18 KBL 챔피언결정전|챔피언결정전]] 6차전 경기를 끝으로 결국 은퇴. 향후 지도자 연수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2018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얼바인으로 연수를 떠났다고 한다. 2018년 12월 25일, 미국에서 부인, 두 딸과 함께 일시 귀국하여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을 진행했다.[[https://sports.news.naver.com/basketball/news/read.nhn?oid=109&aid=0003926442|관련기사]] === 시즌별 성적 === ||<-11> {{{#ffffff 역대 성적}}} || || {{{#ffffff 시즌}}} || {{{#ffffff 소속 구단}}} || {{{#ffffff 경기 수}}} || {{{#ffffff 2점슛}}} || {{{#ffffff 3점슛}}} || {{{#ffffff 자유투}}} || {{{#ffffff 득점}}} || {{{#ffffff 리바운드}}} || {{{#ffffff 어시스트}}} || {{{#ffffff 스틸}}} || {{{#ffffff 블록 슛}}} || || 2002-03 ||<|3> [[원주 DB 프로미|TG삼보]] || 54 || 367/638 [br] (57.52%) || 0/1 [br] (00.00%) || 186/260 [br] (71.48%) || 920 || 471 || 121 || 59 || 112 || || 2003-04 || 54 || 402/648 [br] (42.34%) || 0/3 [br] (0.00%) || 187/270 [br](69.26%) || 991 || 478 || 129 || 62 || 131 || || 2004-05 || 53 || 328/565 [br] (58.05%) || 1/2 [br] (50.00%) || 179/240 [br] (74.58%)|| 838 || 310 || 123 || 52 || 112 || || {{{#ffffff 시즌}}}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2점슛}}} || {{{#ffffff 3점슛}}} || {{{#ffffff 자유투}}} || {{{#ffffff 득점}}} || {{{#ffffff 리바운드}}} || {{{#ffffff 어시스트}}} || {{{#ffffff 스틸}}} || {{{#ffffff 블록슛}}} || || 2005-06 ||<|12> [[원주 DB 프로미|동부]] || 53 || 354/631 [br] (47.01%) || 0/3 [br] (0.00%) || 207/264 [br] (78.41%) || 915 || 335 || 144 || 54 || 95 || || 2006-07 || 29 || 177/317 [br] (42.34%) || 0/3 [br] (0.00%) || 148/178 [br] (83.15%) || 502 || 183 || 48 || 36 || 52 || || 2007-08 || 54 || 280/519 [br] (39.14%) || 2/10 [br] (50.00%) || 205/238 [br] (86.13%) || 771 || 319 || 139 || 41 || 121 || || 2008-09 || 47 || 243/432 [br] (42.34%) || 7/20 [br] (35.00%) || 146/177 [br] (82.49%) || 653 || 243 || 119 || 44 || 53 || || 2009-10 || 50 || 329/520 [br] (63.27%) || 0/8 [br] (0.00%) || 156/196 [br] (79.59%) || 814 || 331 || 193 || 57 || 75 || || 2010-11 || 38 || 190/348 [br] (54.60%) || 5/13 [br] (38.46%) || 136/189 [br] (71.96%) || 531 || 202 || 127 || 25 || 44 || || 2011-12 || 53 || 295/520 [br] (56.73%) || 2/13 [br] (15.38%) || 139/197 [br] (70.56%) || 735 || 308 || 189 || 47 || 63 || || 2012-13 || 33 || 165/292 [br] (56.51%) || 2/8 [br] (25.00%) || 70/92 [br] (69.00%) || 406 || 183 || 104 || 36 || 40 || || 2013-14 || 37 || 193/376 [br] (51.33%) || 2/14 [br] (14.29%) || 86/109 [br] (71.96%) || 478 || 244 || 122 || 30 || 33 || || 2014-15 || 54 || 242/454 [br] (53.30%) || 12/35 [br] (34.29%) || 120/171 [br] (70.56%) || 640 || 352 || 181 || 46 || 59 || || 2015-16 || 26 || 81/149 [br] (54.36%) || 32/66 [br] (48.48%) || 45/70 [br] (64.29%) || 303 || 134 || 84 || 16 || 10 || || 2016-17 || 53 || 89/181 [br] (49.18%) || 82/223 [br] (36.77%) || 83/121 [br] (82.56%) || 507 || 220 || 112 || 32 || 19 || || {{{#ffffff 시즌}}}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2점슛}}} || {{{#ffffff 3점슛}}} || {{{#ffffff 자유투}}} || {{{#ffffff 득점}}} || {{{#ffffff 리바운드}}} || {{{#ffffff 어시스트}}} || {{{#ffffff 스틸}}} || {{{#ffffff 블록슛}}} || || 2017-18 || [[원주 DB 프로미|DB]] || 54 || 58/113 [br] (51.33%) || 44/122 [br] (36.07%) || 36/51 [br] (70.59%) || 284 || 112 || 42 || 17 || 18 || ||<-2> '''[[한국프로농구|KBL]] 통산''' [br] (16시즌) || 742 || 3793/6713 [br] (56.20%) || 191/544 [br] (35.11%) || 2129/2823 [br] (75.42%) || '''{{{#blue 10,288}}} [br] {{{#blue (4위) }}}''' || '''{{{#blue 4,425}}} [br] {{{#blue (3위) }}}''' || 1,973 || 654 || '''{{{#red 1,037}}}[br]{{{#red (1위) }}}''' || === [[김주성(농구)/지도자 경력|지도자 경력]]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주성 감독 지도자 경력.jpg|width=100%]]}}} || || '''{{{#000,#e5e5e5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주성(농구)/지도자 경력)]}}}''' || == 플레이 스타일 == [[파일:attachment/kimju.jpg]] '''[[크리스 다니엘스]]의 슬램덩크를 블락하는 모습.''' '''KBL 올타임 수비형 파워포워드'''[* 국내 리그 특성 상 센터 포지션은 빅맨 외국인 선수가 맡으므로 국가대표 경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4번 포지션으로 뛰었다. KBL 공식 선수란에도 센터가 아닌 포워드라고 명시되어 있다.] 뭐니뭐니해도 탁월한 BQ+운동능력을 이용한 수비가 김주성의 최고 무기. 인사이드 플레이어지만 사이즈 대비 발이 상당히 빨라 속공 가담에도 매우 뛰어나고, KBL 데뷔 초기엔 중거리슛을 쏠 수는 있어도 뛰어나다 할 수는 없었지만 가면 갈수록 중거리슛에도 능한 면을 보여주게 되었다.[* 15년 이후에는 3점슛을 장착해 거의 슈터만큼 쏘고 있다] 인사이더치고는 마른 몸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보다 힘이 좋은 선수를 상대로는 스피드를 앞세운 페이스업 공격을 하고, 자신보다 작은 국내 선수와 매치업되면 높이를 앞세운 포스트업을 써먹으며 상대를 공략한다. 무엇보다 김주성의 최대 장점은 운동능력으로 역대 빅맨 중 한손가락에 꼽을만큼 뛰어나다. [* 김주성보다 운동능력이 뛰어난 순수 토종 빅맨은 역대로 봐도 김종규, 하윤기, 여준석 정도밖에 없을만큼 매우 뛰어나다 할 수 있다.] 빅맨의 신장으로 190cm대 포워드와 비교해도 스피드 싸움에서 우위를 점쳤으며 좋은 탄력과 신체조건을 활용하여 속공 트레일러 및 수비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했다. 프로 저연차 시절엔 덩크슛도 자주 나왔고 외국인 상대로도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시도했고, 은퇴시즌에도 나이 40살에 올스타전에서 [[김태술]]의 패스를 받아 엘리웁 덩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거기다 패스 플레이로 팀내 볼 흐름을 도우며, 보면 같은 팀 [[포인트 가드]]보다도 인사이드에 공 배급은 더 잘해주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직접 잡는 리바운드는 많지 않지만 성실한 박스 아웃으로 팀 동료가 리바운드를 잡게 하고, 스크린 플레이도 열심히 가담한다. 리바운드 후 패스도 일품. 사실상 KBL판 [[케빈 가넷]]이라고 보면 된다. 수비 포메이션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와 긴 리치를 이용한 블록슛, 동 포지션 타 선수들 대비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가로수비 그리고 무엇보다 인사이드에서의 기민한 헬프디펜스로는 팀 전체의 수비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킨다는 점에서 케빈 가넷의 그것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공격에서의 사기더웨이도. 다만 나이가 들고 국가대표와 [[원주 DB 프로미|소속 팀]]에서 거의 전 경기를 뛰는 혹사를 겪으면서 체력과 스피드가 줄어 급격히 노쇠화를 겪으며 장점보다는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데뷔 10년차 시즌인 2012년 11월 14일,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한 경기 리바운드 '''0개'''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 감독이었던 ~~[[강동희]]~~에게 [[강을준|니가 갱기를 망치고 이써]]급의 개갈굼을 당했고, ~~[[2013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너는 안 망치고 있냐]]~~ 이게 방송으로 전파되면서 많은 농구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김주성이 농구를 못 한다고 갈굼을 먹은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했다. 그도 역시 노쇠화에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basketball&no=1569439|프로농구 최초 주성타 갈굼영상]] ~~너야 너! 너라고! 니가 지금 다 놓치고 있는 거야 임마!~~[[https://youtu.be/YR8C9gXMP5E|심지어 전 감독님이 아무것도 못하는 X이라고 하는건 덤]] 이처럼 나이로 인한 노쇠화를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 [[김영만(농구)|김영만]] 감독 부임 후 출장시간을 25분 내외로 관리를 해주자 다시금 탑급 빅맨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2015-16 시즌 초반 김주성이 부상으로 결장시에 9위까지 내려간 동부는 김주성의 복귀와 [[웬델 맥키네스]]의 합류로 인해 파죽지세로 순위를 끌어올리는 상황이다.[* [[원주 DB 프로미|동부]] 선수들에게 있어서 김주성의 존재는 절대적이어서, 김주성이 없는 날에는 다들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한 플레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나이가 들며 골밑 싸움에 힘이 부치는지 2014-15 시즌 부터 간간히 늘려가던 [[3점 슛|3점슛]] 시도를 2015-16 시즌부터는 작정하고 슈터로 변신이나 한 듯 던져대는 바람에 상대 입장에서는 더 까다로운 선수로 변해버렸다.[* 단순히 시도를 늘리는게 아니라 성공률마저 50%에 육박하니 매치업 상대들은 환장할 노릇.] 참고로 2016-17 시즌에는 다른 슈터들보다 월등한 성공률[* 김주성이 57%대로 3위인 부산 kt [[이재도]]가 45%임을 대비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이다.]을 보이며 3점슛 성공률 1위를 달리고 있다. (16년 11월 20일 기준) 이후 은퇴시즌이었던 2017-2018까지 주로 식스맨으로 출전하면서 준수한 3점슛 능력을 보여주었다. KBL 통산 1만 득점과 1000 블록을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선수이다. 통산 득점은 서장훈, 라건아, 애런 헤인즈에 이은 4위이고 블록 부문에서는 서장훈보다도 2배 이상 많은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살이 찌지 않는 체질|매우 마른 체형]]으로 유명하다. 김주성 본인도 몸무게를 늘이고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으나 많이 먹고 운동을 많이 해도 웨이트가 늘지 않거나 조금 늘었다 해도 곧 원래대로 돌아가 버린다고 한다. 어쨌든 KBL 최고 수준의 가치를 가진 선수. 현행 샐러리캡 제도에서는 엄청난 연봉(2010년 기준 6억 9천만원)을 받지만 연봉만큼의 가치를 하고 있다. ~~심지어 모기업 CF를 찍어도 그러려니 한다~~ [youtube(OAATpx7y5oA,start=12,end=23)] [[KBL 올스타전/2023-24 시즌|2023-24 시즌 KBL 올스타전]]에서 성사된 [[김종규(농구)|김종규]]와의 매치업에서 파울 없이 돌파하던 김종규의 공을 뒤에서 깔끔하게 긁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팬들과 선수들도 아직 죽지 않은 김주성의 수비 센스에 감탄하였고 우스갯소리로 현역으로 복귀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 이모저모 == === 과도한 리액션과 비매너 플레이 ===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20323201519593.jpg]] 이런 류의 [[짤방]]도 경기당 [[1000|자기 블록슛 수치]]만큼 만든다. ~~[[황정민]](...)?~~ ~~[[야오밍|야거장]]?~~ [[파일:주성타_목장훈.gif]] 일반인들에게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한 성실함과 부지런함, 팀에 대한 헌신 등등 좋은 프로 선수의 덕목을 고루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 김주성이지만 농구 매니아들은 '''경기 매너가 나쁜 선수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등 절로 언짢아지는 사고를 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일은 경기 도중 [[서장훈]]의 목덜미를 배구 스파이크하듯 내려쳤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5&aid=0000041333|사건]]. 이 사건으로 인해 김주성은 두고두고 농구 팬들에게 '''[[을용타|주성타]]'''불리며 욕을 먹었다. 이 사건으로 이미지가 좋은 김주성을 나쁜 의미로 다시 봤다는 사람도 많다.[* 이미 공이 훨씬 전에 떠나서 다 끝난 상황인데 두 손으로 뒤통수를 전력으로 내려친 것이다. 짤방 화질이 많이 나빠서 그렇지 좋은 화질로 보면 김주성의 표정이 그야말로 원수를 때리는 것처럼 흉악하다. 짤방에 소리가 안 나오지만 김주성이 양손으로 서장훈의 뒤통수를 내려찍은 순간 카메라에 잡힐 정도로 쩍하는 소리가 났다. 이미 서장훈은 목을 다쳐서 마비가 왔던 것도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권투를 비롯해 각종 격투기에서도 뒤통수 가격은 엄격히 금지하는 반칙이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부상전력이 있는 사람의 뒤통수를 양손으로 내리찍었다는 것은 김주성의 인성이 어떤 수준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서장훈도 공중에 잇는 김주성에게 먼저 반칙성 플레이를 했고 공중에 있는 선수에게 가한 반칙성 플레이였기 때문에 결코 안전한 플레이가 아니었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농구선수의 두 손으로 급소를 내리찍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파일:김주성 조성민 정권지르기.gif]] 외곽에서의 신경전과 몸싸움이 가장 치열한 골밑에서 활동하는 선수인 것을 미루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는데 이게 말이 안되는 것이 골밑이 아닌 곳에서도 악의적인 가격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주성타 당시에도 서장훈을 제대로 보면서 가격을 하고 있다. 가끔 '서장훈도 하승진한테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며 물타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서장훈은 본인보다 14cm 이상 큰 하승진과 몸싸움을 하다 밀리던 중 팔이 엉킨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채 신경질적으로 뿌리치려다 맞은 것이고 이걸로 하승진이 전혀 다치지도 않았다. 물론 비매너 플레이는 확실하지만 고의로 다치게 하려고 가격한 것이라고 보긴 힘들다. 반면 김주성은 페이크에 낚여 점프한 상황에서 비슷한 키의 서장훈을 정확히 보고 두 팔로 가격했다.][* 실제로 NBA의 전설 [[래리 버드]]가 비슷한 시기에 더 거칠고 과격했던 릭 마혼과는 화해를 했다고 하면서도 [[빌 레임비어]]는 용서 못한다고 한 이유도, "릭(마혼)한테 맞을 건 알고 있었지만 레임비어는 '''고의로 다치게 하려고 했다'''는 것 때문이다."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즉 경기 내에서 득점을 막으려다가 지나치게 거칠게 신체접촉이 있는 것은 비매너플레이지만, 고의성을 갖고 악의적으로 가격하는 것은 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죄질이 나쁜 짓이다. 실제 형법에서도 범죄의 고의성이 형량을 판단하는데 주요한 기준이 된다.] 09-10시즌 김주성은 3점슛을 날리던 조성민의 뒤통수를 후려갈겼고 곧이어 상대 진영에 공을 몰고오는 조성민의 명치에 펀치를 날리기도 하였다. 이런게 한두번이 아니다. 또 [[https://m.dcinside.com/board/basketball/4498163|은퇴직전에 까마득한 후배에게 크로스라인을 시전해 주셨다.]] 가면 갈수록 늘어가는 [[할리우드 액션]]도 문제.[* 2016년에는 KBL 센터에 있는 심판 교육장 칠판에 ''''김주성이 넘어졌을 때 무조건 휘슬을 불지 마라''''는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37501&code=12130000&cp=nv|*]]] 파울 유도는 잘 하면 좋은 것이지만 눈에 띄게 과도한 액션이 많으며 이로 인한 비판도 많이 받는다. [[2011년]] [[3월 25일]] 벌어진 [[원주 DB 프로미|동부]]와 [[창원 LG 세이커스|LG]]간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제대로 [[http://gall.dcinside.com/list.php?id=basketball&no=1259518|할리우드 액션]]을 자행하면서 비판이 더욱 늘었다. [[파일:김주성 플랍.gif]] 2014-15 시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전자랜드]]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리카르도 포웰]]에게 [[https://youtu.be/mX_fucgjEEw|강력한 몸통박치기를 시전했다.]] 문제는 그러고도 더블 파울로 포웰도 파울을 함께 받았고, 포웰을 파울 트러블로 몰아넣었다. 농구 관련 사이트에선 황순팔과 함께 쌍으로 까였다.[* 황현우(황순팔에서 개명함) 심판은 주심으로 있었고, 오심으로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으레 황순팔이 그랬겠거니 생각하고 깠다. ~~농구계의 [[김풍기]]~~] === 흑역사 === [[2004년]] [[3월 7일]],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전자랜드]]와 [[원주 DB 프로미|TG삼보]]의 경기가 펼쳐졌다. 시즌 순위는 결정된 상태에서 [[우지원]]과 [[문경은]]이 시즌 3점슛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고 김주성 역시 블록 순위에서 1위를 다투고 있는 상황. 순위와는 관계 없지만 과연 문경은이나 김주성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농구팬들은 관심을 가지고 경기를 보았다. 그리고 농구팬들은 경기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희대의 상부상조 개그를 보고 만다. 전자랜드 선수들은 김주성이 블록 하기 좋게 슛을 갖다 바치고, TG 선수들은 문경은이 슛 쏘기 좋게 알아서 노마크로 자리를 비워주는 상황이 경기 내내 이어지는 어이없는 꼴이 펼쳐진 것이다. 형님 좋고 아우 좋고인지 뭔지 하여간 이들이 벌인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인해 김주성은 그 경기에서 11블록을 달성하고 트리블 더블도 덤으로 하며 시즌 블록 1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당연히 어이가 가출하는 상황을 본 농구팬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KBL은 결국 그 시즌의 3점슛 1위와 블록 1위를 해당자 없음으로 수상 처리하며 어물쩡 넘어갔다. 하지만 2023년 KBL 홈페이지의 주요 기록 항목을 보면, 문경은의 3점슛 조공 기록과 김주성의 한 경기 최다 블록 기록으로 저 2004년 3월 7일 짜고친 고스톱 같은 날의 기록이 버젓이 올라가 있다. === 김주성의 NBA 진출 가능성 === 2023년 농구 해설자이며 NBA 전문가인 조현일이 유튜브에서 역대 한국 선수 중 NBA 진출 혹은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선수로 허재, 서장훈을 제치고 김주성을 거론해 논란이 벌어졌다.[[https://mlbpark.donga.com/mp/b.php?m=search&p=1&b=bullpen&id=202301130077643126&select=sct&query=%EC%A1%B0%ED%98%84%EC%9D%BC+NBA&user=&site=donga.com&reply=&source=&pos=&sig=h6jjGf2gj3HRKfX2h3a9Gg-gjhlq|#]] 사실 한국에서 역대 최고 선수로 허재, 서장훈 쌍벽을 이루는 가운데 의외로 김주성이 거론되었지만 사실 이런것이 아주 의외의 결과는 아니다. 허재, 서장훈은 그 팀의 1옵션으로 큰 역할을 했지만, 김주성은 용병에 이은 2옵션 혹은 수비와 허슬로 일종의 롤플레이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선수다. 일본인으로 NBA에 진출해 6년간 활약한 [[와타나베 유타]]의 사례를 보면 2018년 NBA에 진출한후 G리그 팀들에서 뛰기도 했지만 멤피스 그리즐리스, 토론토 랩터스, 브루클린 네츠, 피닉스 선스를 거쳐 2024시즌 다시 멤피스 그리즐리에서 6년이 넘는 커리어를 이어갈 정도[* 동양인 중에선 최고의 축복받은 피지컬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이젠롄]]도 5년 밖에 NBA에서 머물지 못했다]로 각 팀들에서 필요로 하는 3&D 롤 플레이어로 활약하였다. 일본이나 한국이었으면 빅맨으로 성장했어야하는 선수가 NBA에서 벤치 윙으로 수비와 3점 슛터가 되었다. 사실 와타나베의 경우 한국리그에서의 경쟁력으로는 서장훈이나 김주성에 미치지 못할수도 있지만, 6년의 커리어를 보내고 일본으로 복귀하였다. 사실 과거 한국 농구에선 외곽 공격은 영양가가 없다는 식의 시각이 강했고, 특히 장신 선수의 3점슛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대표적으로 서장훈이 그 비판의 대상이다. [[2015년]] [[스테판 커리]]의 MVP 이후 세계 농구 트렌드가 꽤 크게 바뀐 시점에서 되돌아본다면 [[서장훈]]은 한국 농구의 또 하나의 편견에 시달린 선수다. 용병 이전 전통적 한국 농구는 양궁농구라는 양날의 검을 가진 농구스타일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외국에 비해서 장신센터가 골밑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오랜 컴플랙스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중국과의 국제 경기에서 한국이 외곽이 밀려서 지는 경우는 적었고 높이의 차이, 골밑파워 차이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전성기 이후 장신인 [[서장훈]]이 골밑을 버리고 미드레인지 점퍼를 던진다는 이유로 겉멋이 들었다며 욕을 엄청 먹었다. 그런 이유로 장신 센터인 김주성, [[하승진]]의 경우 중거리 슛 센스가 생각보다 좋았는데도 감독들이 의도적으로 중거리슛을 자제하도록 지도했고 그 결과로 김주성은 충분히 성공한 선수가 되긴 했지만 수비와 팀 플레이 중심의 선수로의 한계를 가지게 된다. 김주성이 초창기 골밑 플레이가 막히면 공격에서 막힐 수밖에 없지만, 어차피 공격은 2명이나 되는 용병에게 맡기면 되니까 한계로 여겨지지 않았다. 김주성은 공격에서 조금 막혀도 수비와 팀플레이에서의 기여도로 충분하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당연히 김주성 스스로도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김주성이 이미지와는 달리 중장거리 슈팅 능력이 없는 선수가 아닌 것이, 선수 생활 후반에 [[3점 슛]]을 개발한 이후로 선수 생활 연장이 가능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김주성이 더 일찍 미들슛과 3점을 장착한 선수였다면 더욱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다. 김주성이 한국 역대 최고의 선수 중의 하나지만 역대 No.1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고, 또 중국 등 국제경기에서 훌륭하게 활약했지만 그렇다고 압도한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 골밑에서의 활동 제한을 두고 잠재력을 선긋지 않았더라면 더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NBA는 신발 신은 키를 재지만(물론 언젠가부터 맨발 신장을 기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 농구는 신발 벗은 키를 재는 경우가 많다. [[케빈 듀란트|듀란트]]처럼 빅맨이 하기 싫어서 키 속이는 경우나 그렇지 상당수가 프로필 키보다 작다. 그래서 김주성이 미국을 갔다면 205가 아닌 '''210을 넘는 사이즈'''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 정도 신장에 이 정도 스피드면 NBA에서도 나쁘지 않다. 단지 이 정도 피지컬로는 도저히 빅맨으로서 벤치 멤버도 불가능하다. 즉, [[2010년대]] 이후 김주성 스타일의 선수가 외곽슛도 괜찮았으면 신장 대비 나쁘지 않은 스피드와 열심히 하는 수비를 무기로 NBA 벤치라도 도전해볼 만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김주성의 경우, 신장 대비 스피드와 팔 길이 등 여러모로 와타나베에 비해서 조건이 나쁘지 않다. 그 외에 수비센스도 훌륭하고 3점 슛도 잘 개발했다면 충분히 개발가능한 재능이 있었다. 빅맨으로 써 NBA 진출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면 와타나베 스타일의 3&D가 2023년에 많은 각광 받지만 실제로 김주성의 전성기에도 그런 스타일의 벤치멤버는 충분히 필요했다는걸 감안한다면, 김주성이 한국농구 스타일의 빅맨이 아닌 와타나베처럼 오직 NBA라는 목표로 달렸다면 적어도 NBA 주요 벤치 멤버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다. == 여담 == * 김주성의 [[여동생]] [[김향란]]은 여자[[배구]]팀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에서 선수로 활동하였다. 오빠처럼 186cm 의 장신으로 포지션도 센터(미들블로커)로 활약했다. 오빠보다 일찍 성인 무대에 뛰어들었지만 배구선수의 특성 상 롱런하지 못하고 일찍 은퇴했다. 그래도 엄청난 족적은 남기고 은퇴를 했는데 배구 프로화 이전 슈퍼리그 시절에 '''한 경기 최다 블로킹인 8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집안 특성이 블로킹~~ 김주성이 김향란의 플레이를 보고 ~~쿠사리 먹인~~ 많이 조언을 했다는 과거 신문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 유달리 장신인 김주성과 김향란 남매와 달리 척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 신장은 160cm 정도이고[*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실제 키는 척추가 휘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180cm이 넘는다. 김주성의 외할아버지는 키가 207cm이나 되는 거구였는데, 그 큰 키를 외가쪽 혈통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170cm 정도로 알려져 있다. * [[한국프로농구]]의 빡빡한 [[샐러리캡|샐러리캡(연봉총액제한)]] 때문에 한 선수가 한 팀에서 오래 뛰다 명예롭게 은퇴하기가 참 까다로운 게 현실인데, 김주성은 그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입단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단 한 팀에서 뛰었다.''' 일단 구단 내에서는 성골이라 할수 있는 [[중앙대학교 농구부|중앙대]] 출신이기도하고 은퇴하자마자 팀의 코치로 합류한것을 보면 차기 DB 감독 유력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 결국 23-24시즌부터는 감독으로 부임했다. * [[로드 벤슨]]과 함께 [[개그 콘서트]]에 출연한 적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5jOoiglDtw|3분 43초부터]]... ~~깨알 같은 [[로드 벤슨]]의 "신발 벗어!"~~ * 남자프로농구 유일의 [[합법적 병역 브로커]]인데, [[이승엽|야구 최대 합법적 병역브로커]]처럼 정작 [[본인]]도 군 면제[* [[부모]]의 장애로 인한 생계 곤란으로 병역면제.]를 받았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6명의 선수를 병역 혜택을 제공했지만 국가대표 은퇴로 병역 브로커 활동도 끝났다. * 어렸을 적에 바라는 것이 딱 한 가지밖에 없었는데 그게 밥이었다고 한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 밥주세요" 외엔 달리 말을 잘 안했다고... 집안 형편이 어렸을 때 어려웠던 것도 있었겠지만 투정 한 번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 [[중앙대학교 농구부|중앙대]]-[[원주 DB 프로미|원주 TG]] 직속 선배인 [[허재]]를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있다. 김주성이 프로 신인 시절 허재가 숙소 방졸인 김주성에게 아내가 [[허재|남편]] 먹으라고 보내온 [[보약]]을 전부 먹이는 등 선배로서 여러모로 배려해줬기 때문이다. 의외로 [[꼰대]] 기질 없이 후배들을 살갑게 대해주는 허재 특유의 성격도 있었겠지만 장래 팀의 기둥이 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실제로 그렇게 되었지만]]~~ 김주성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더욱 신경써서 챙겨준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물심양면의 좋은 예도 있지만 [[김민구|나쁜 예도 있다]].~~ * 위에 언급된 [[서장훈]]과의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했던 선배를 서장훈을 꼽았다. 그 인터뷰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그때 그렇게 쳐놓고서. 사실 그 사건 이후 김주성과 [[서장훈]]이 사이가 나빠졌다는 루머가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인 듯.[* [[서장훈]]이 인터뷰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특정 선수를 비난하면서 웃는 얼굴의 쓰레기가 있다는 말을 했다. 그 쓰레기가 김주성을 가리키는 말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전형적인 추측에 헛소리로 판명.][* 사실 서장훈은 그 사건을 저지른 박상관이나 이창수한테도 별다른 원망의 말을 남긴 적은 없다. 오히려 은퇴 후 방송에서 이창수의 아들 이원석이나 박상관의 딸 박지수를 만났을때 (아버지들에게) 사적인 감정은 없었다며 웃으며 덕담을 남기기도 했다.] 일례로, 2016년 KBS1 에서 방영한 교양 프로인 우리들의 공교시에서 [[서장훈]]이 서울의 등촌고등학교를 약 7개월간 객원 감독으로서 전국대회 우승을 목표로 지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최종회에서 연예인 농구팀과의 친선 경기에 상대적인 기량 열세에 당시 KBL 현역이던 센터 둘을 초빙하였는데...그 사람이 바로 [[김주성]]과 [[김종규(농구)|김종규]]였다. 더군다나 [[김주성]]은 소속팀의 소재지인 원주에서 [[서장훈]]의 부름에 4시간을 걸려 달려왔고, 연습중 무릎부상으로 좋지 않은 컨디션인데도 불구하고, 한 쿼터 뿐이었지만 프로선수의 클래스를 보여주며 고등학생 선수들의 우상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리라. * 농구계에서 선행으로 유명한 선수인데,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로 매월 30만 원씩 받는 선수 연금을 장애인과 저소득층 등 불우이웃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저도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생각해 왔었고, 이렇게 금메달 2개를 따서 도울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국내 선수가 평생 받을 수 있는 자신의 연금을 기부하는 것은 김주성이 처음이다. 연금 외에도 선수시절 자신의 리바운드와 연계해 연탄과 도서를 저소득층에게 전달해 해왔다. * 2020-21 시즌 KBS1에서 중계한 4강 플레이오프 3차전과 챔피언 결정전 4차전 해설을 맡았다. * [[한국프로농구]] 에서는 상당히 드문, [[추승균]]과 함께 한 팀에서만 선수-코치-감독으로 활동한 유이한 인물이다. 프로야구에서는 [[류중일]], [[김성한]], [[류지현(야구)|류지현]]이 있다. * 대한민국 농구계 최장신 코치 & 감독 타이틀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를 갱신할 만한 후보는 아직까지 거의 없는 상태. 현역 은퇴 후 지도자 대신 방송인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서장훈]]은 지도자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 하며, 만약 프로 팀 코치가 될 경우 대한민국의 영원 불멸 최장신 지도자는 떼놓은 당상인 [[하승진]] 또한 지금 운영중인 [[유튜브]] 채널에 집중하고 있는 유명 [[유튜버]]이자 방송인으로 정착한 상황이라, 굳이 코트로 돌아오는 것도 애매한 입장이다. 그나마 이 기록을 깰 가능성이 있는 현역 선수는 김주성보다 맨발키가 1.4cm 크고 현재 김주성이 이끌고 있는 [[원주 DB 프로미]] 소속 [[김종규(농구)|김종규]] 정도를 꼽을 수 있다. * 국가대표 선배인 [[조상현]]과는 2008-2009 시즌 선수 시절과 2023-2024 시즌 감독 시절 평행이론이 있다. 2023~2024 올스타전 입장식 때 같이 [[소녀시대]]의 [[Gee]]에 맞춰 팬들에게 귀여운 댄스를 선보였다. * [[KBL 올스타전/2023-24 시즌|2024 시즌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페이스업 하는 김종규의 볼을 뒤에서 쳐내고 덩크에 가까운 점프력을 보이는 등 4득점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여담으로 선수시절에는 올스타전 출전 명단에 '''15회 선정되어 14회 출전하였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리그의 간판 선수였으니 충분히 그럴 만하였다는 평이 대다수이다.] == 관련 문서 == * [[농구 관련 인물(한국)]] * [[원주 DB 프로미/선수단]] [[분류:대한민국의 체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코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감독]][[분류:한국프로농구 MVP]][[분류:장수군 출신 인물]][[분류:1979년 출생]][[분류:2002년 데뷔]][[분류:2018년 은퇴]][[분류:파워 포워드]][[분류:센터(농구)]][[분류:원주 DB 프로미/은퇴, 이적]][[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원클럽맨/농구]][[분류:한국프로농구 영구 결번 선수]][[분류:해운대중학교 출신]][[분류:동아고등학교 출신]][[분류:중앙대학교 출신]][[분류:감독 대행/농구]][[분류:대한민국의 동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분류:2001 오사카 동아시안 게임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