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국악인]][[분류:대한민국의 무형문화재]][[분류:1918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이왕직 아악부 출신]] ||<-2> '''{{{#ffc700 {{{+1 김종희}}}[br]金鍾熙}}}'''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김종희 악사.jpg|width=100%]]}}} || || '''{{{#ffc700 성명}}}''' ||김종희(金鍾熙) || || '''{{{#ffc700 국적}}}'''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 || '''{{{#ffc700 직업}}}''' ||[[이왕직 아악부]] [[아악수]](1936년~1952년) [[국립국악원]] [[국악사]](1953년~1971년) 전라북도 국악원 교수 국악교습소 소장 전라북도 국악원 명예교수 [[무형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보유자 || || '''{{{#ffc700 출생}}}''' ||[[1918년]] [[7월 20일]] || || '''{{{#ffc700 사망}}}''' ||[[2009년]] [[5월 20일]](향년 90세) || || '''{{{#ffc700 자식}}}''' ||슬하 3녀 || [clearfix] [목차] >"당시에는 국악이라는 말이 없었어요. 문묘제례악, 종묘제례악 등 정악이 있고 산조, 판소리 등으로 구분해서 불렀어요. 사람들이 모여도 정악을 하는 사람이 대청에 앉으면 그 외의 사람들은 그 아래에 앉고는 했어요. 폐습입니다만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 >생전에 김종희가 생각하는 국악이라는 이름과 의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85189|#]] == 개요 == [[일제강점기]]인 1918년 7월 20일에 태어나 2009년 5월 20일에 사망한 종묘재례악 명예 보유자이자 '''이왕직 아악부 출신의 마지막 국악인.''' == 일생 == || [[파일:일제강점기 이왕직 아악부원 4기생 졸업사진 - 왼쪽 동그라미로 표시된 학생이 김종희 선생, 오른쪽은 이창규 선생..jpg]] || || 일제강점기 이왕직 아악부원 4기생 졸업사진. || || 왼쪽 동그라미로 표시된 학생이 당시 김종희이고 오른쪽은 동창이자 친구였던 이창규이다.|| 1918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1936년 4월, 당시 [[일본제국]]에서 [[국악|조선 음악]]을 보존하기 위해 운영하던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를 졸업한 뒤에 18세의 젊은 나이에 이왕직 아악부에 들어가 아악수가 되었다. 이후 [[방향(악기)|방향]]과 자신의 전공인 [[해금]]을 비롯한 여러 [[국악기]]들을 다루고 연주하며 젊은 시절을 보내고,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광복]]을 맞이하였다. 전쟁 중 피난을 갔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1월부터 [[1971년]] 4월까지 [[국립국악원]] 국악사로서 활동하며 중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활동할 당시인 [[1964년]] [[12월]]에 마침내 [[무형문화재|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보유자로 최초(다른 국악인들과 함께) 지정되었다. 이후 1964년 3월에는 당시 [[일본]] 마이니찌 신문사에서 일본에서 공연을 하면 좋겠다고 하며 초청을 받아, 일본에서 내외(방일) 공연을 하였다. 그 후로는 일본에서의 [[재일동포]] 위문공연 및 [[대만]]에서의 국악 공연을 맡기도 하였다. 말년인 1986년 10월부터 1991년 5월까지는 [[전라북도]] [[국악원]] [[교수]]를 역임하였고, 1991년 6월에는 전라북도 국악원 [[명예교수]]로 임명되었다. 세월이 흘러 [[2008년]] [[12월]], 노년의 나이 때문에 더이상 연주를 하지는 못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종묘재례악 명예보유자로 지정된지 5개월이 흐른 2009년 5월 2일 새벽, 노년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 다음날 수많은 [[국악인]]들의 애도와 함께 장례식이 이루어졌다. 이로서 그를 마지막으로 이왕직 아악부 출신의 국악인들은 모두 사망하게 되마지막으로계 후 김종희 악사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