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신라의 인물 == === 김정(晸) === [[신라]]의 제49대 국왕. [[헌강왕]] 문서 참조. === 김정(正) === [include(틀:역대 신라 상대등)] ||<-5><:> [[천마도|[[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width=60]]]] [br] '''[[상대등|{{{+1 {{{#ffffff 신라의 상대등(上大等)}}}}}}]]''' || || [[김안]] || {{{+1 ←}}} || '''{{{#ffffff 김정}}}''' || {{{+1 →}}} || [[위진]] || ? ~ 874 [[신라]] [[경문왕]] 시기의 [[상대등]]. 862년부터 874년에 사망할 때까지 12년간 재임하였다. 한글 표기가 같아서 헷갈릴 수 있지만 이 김정(正)이 상대등이 되었을 때 헌강왕 김정(晸)의 나이는 2살이었다. == 조선의 문신 == 金淨 1486년 ~ 1521년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고봉(孤峯)이다. 경주 김씨 판도판서공파 충암공파의 시조이다. [[충청도]] [[보은군|보은현]]에서 태어났다. 1507년, 증광 문과에 장원 급제 하였다. 1514년, 순창군수직중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다가 [[중종]] 의 미움을 사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1516년, 형조판서에 임명된다.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를 가서 뒤에 희생되었다. 1545년, 복관된다. 1646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조카사위로는 대곡 성운이 있으며 성운의 성은 성씨지만 그의 자식들은 경주김씨가 된다. 성격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직언하는 성격이고, 이미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단경왕후의 복위를 주장할정도로 약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미신을 싫어하고 시와 그림에 능했으며 그것은 충암문집에 잘 나와있다. (대전시립박물관 보관) 제주도 귀양지에서 제주풍토록을 썻는데 그 당시 제주도의 상황을 알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사림 교육의 중심지가 된 보은 한국의 유학은 신라가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신라의 지역이던 경상도에 유학자가 많았다. 보은은 신라의 최전방이던 삼년삼성이 있던 곳으로 경상도에서 개경이나 한양을 가기위한 중요 지역이었고 경주김씨 계열과 파의 고분이 많이 나온 대표적 지역이었다. 보은 지역은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있다. 보은은 조선시대 경상도에서 관직에 오르기위해 공부하며 살던 온천~보은~청주~천안 루트중 하나의 지역이기도 하고, 충암 김정, 대곡 성운 두 명망높은 학자가 같은 집안에서 사림 교육의 중심지가 되게 서원을 짓고 제자들을 양성하고 이들이 훗날 훈구파를 몰아내고 사림의 성공을 돕는다. 때문에 사림이 정권을 장악한뒤, 사림의 거두 우암 송시열등이 제를 올리는게 된다. 고려말 유학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빠졌고 조선을 세우는데 찬성한 사람들은 훈구파가 되어 정권을 장악했고, 반대하거나 주저한 사람들은 고향으로 내려가 사림이 되었다. 정권은 훈구파가 주요관직을 장악했기 때문에 지방의 사림등이 관직에 오르려면, 김정처럼 장원급제후 능력을 보여주어야 승진을 하고 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할수 있는 위치에 올라설수 있었는데 김정은 조광조를 적극지원해준다. 김정과 조광조의 사림은 실패했지만. 사림들은 100년후 우암 송시열로 정권을 장악한다. 김정의 조상은 김장유이고 보은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의 시조이다. (판도판서공파의 족보 목판은 보은 법주사 보관) == 대한민국의 정치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정(정치인))] == 대한민국의 배우 출신 목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김정(배우))] [[분류:동명이인]][[분류:조선의 문관]][[분류:경주 김씨 판도판서공파]][[분류:신라의 상대등]][[분류:874년 사망]][[분류:보은군 출신 인물]][[분류:1486년 출생]][[분류:152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