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후삼국시대/인물]] '''金忍訓''' 생몰년도 미상 == 개요 == [[후삼국시대]]의 인물. 양주(良州)[* 현 [[경상남도]] [[양산시]]에 해당된다.]의 세력가였다. == 생애 == >[* 이 앞에는 왕건의 금성군 함락기사가 다뤄졌다.]이 해(903년)에 양주수(良州帥) 김인훈(金忍訓)이 위급함을 알려오자, 궁예(弓裔)가 태조에게 명하여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고려사]]》 권1 태조총서 >세상에서 전하기를, “김인훈(金忍訓)이 고려 태조(太祖)를 도와서 벼슬이 문하좌시중에 이르렀는데, 그가 죽어서 사신(祠神)이 되었다.” 한다. >世傳金忍訓佐高麗太祖,位至門下左侍中,死爲祠神。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사 태조총서에 의하면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903년]] 후고구려에 지원을 요청했다. [[궁예]]는 [[왕건]]에게 명해서 김인훈을 구원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 언제 출사했는지는 불명이나 고려 태조를 도와서 벼슬이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다만 문하시중이 설치된 시기는 태조 시기가 아닌 [[성종(고려)]] 시기인 [[982년]]이며 좌시중은 고려 말에 새로 생긴 관직이다. 아마 기록의 오류인듯.]에 이르렀다고 하며, 사후 양주 지역의 성황신으로 추앙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