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金貽永 (? ~ ?) == 개요 == 고려의 [[척신]]으로 [[인종(고려)|인종]]의 제4비 [[선평왕후]]의 동생이다. == 생애 == 김이영이 [[과거 시험]]에 응시한 것은 인종 10년(1132) 4월의 일이다. 과거의 지공거는 [[최자성]]이었는데 최자성이 출제한 시제(試題)에 오류가 발견돼 시험은 취소되고 김이영의 합격은 없던 일이 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김이영의 [[장인어른|장인]]인 [[정항]]이 [[환관]]들에게 청탁하고 누나 선평왕후가 매형 인종을 설득한 끝에 김이영을 포함한 25명이 과거에 급제하게 된다. 외조카 [[의종(고려)|의종]]이 즉위한 뒤 의종 6년(1152) 지도성사의 관직에 오른다. 지도성사는 재상직은 아니지만 종2품이 임명되는 고위 관직이다. 의종 10년(1156) 우승선을 지낼 때 왕의 배려로 다른 여러 신하들과 목청전에 들어 선구보와 양성정, 어원의 화초를 관람하고 충허각의 연회에 참석한다. 그런데 김이영의 처남 [[정서(고려)|정서]]와 임씨 외척[* 인종의 제3비 [[공예태후]]의 형제.]들이 [[대령후]]와 역모를 꾀했다는 무고를 당하게 되면서 또 위기가 찾아온다. 정서의 좌천, 유배에 따라 그 인척들도 연좌되는데, 김이영은 의종 11년(1157) 좌부승선을 지내다 지승평군사로 좌천된다. 이듬해인 의종 12년(1158) 남경유수로 다시 임명되지만 [[개경]]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1170년 [[무신정변]]이 일어나 의종이 폐위되고 [[명종(고려)|명종]]이 즉위한다. 무신들은 대사면을 선포하고 의종이 쫓아낸 이들을 모두 불러들였는데 김이영도 함께 돌아와 직전(職田)을 돌려받는다. 관직은 상서에 이른다. == 가족관계 == * 부: 김선(金璿) * 누이: 김씨 * 매형: [[김지우(고려)|김지우]][* [[경주 김씨]] [[김인규(고려)|김인규]]의 아들] * 누이: [[선평왕후]] * 매형: [[고려 인종]] * '''본인: 김이영''' * 부인: [[동래 정씨]][* [[정항]]의 삼녀] * 딸: 김씨 * 사위: [[정균]][* [[해주 정씨]] 정중부의 아들] - 본처를 버리고 김이영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분류:고려의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몰년 미상]][[분류:고려의 외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