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石出 [[1922년]] [[2월 28일]] ~ [[2005년]] [[7월 26일]] [목차] == 개요 == [[중요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제82-가호 동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 본관은 [[김해 김씨|김해]](金海)[*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01740|#]]], 이명은 김경남(金京南). 동해안 별신굿의 대표적인 악사로 장구뿐만이 아닌 호적(胡笛, 태평소)에도 능해 호적 시나위를 짜기도 하였다. == 생애 == 1922년 2월 28일 [[경상북도]] [[영일군]] 형산면 환호동(현 [[포항시]] [[북구(포항)|북구]] 환호동)의 대대로 [[무당]]을 계승해오던 세습무 집안에서 아버지 김성수(金成守, 1886년생)와 어머니 이선옥(李先玉, 1887년생)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김천득(金千得)은 [[포항시|흥해군]] 서부면 옥성동(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옥성리)에서 [[한지]] 장사를 경영하던 집안의 4대 독자로 소문난 한량이었는데, 어느날 굿청에서 반한 무녀 이옥분(李玉粉 또는 李玉芬)을 소실로 들였고, 평소 풍류를 좋아했기에 무녀와 굿에 다니면서 세습무가를 이루게 되었다. 그는 5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형 김호출(金好出)의 집에서 자라나면서 굿판을 따라다녔으며, 12세부터는 굿판에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3세 때 큰아버지 김범수(金範守)에게서 무업(巫業) 및 호적의 기예를 전수 받았다. [[8.15 광복]] 이후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부]]로 이주하여 당시 호적의 명인인 방태준(方泰珍, 1901 ~ ?)의 문하에서 호적을 배웠다. 1985년 2월 6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2-가호 풍어제(豊漁祭), 즉 동해안 별신굿의 악사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5020600329202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2-06&officeId=00032&pageNo=2&printNo=12111&publishType=00020|인정받았다]]. 2005년 4월 20일에는 이 부문 명예보유자로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0203|인정받았으며]], 그해 7월 25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청강리 기장병원에서 [[노환]]으로 [[https://www.hani.co.kr/arti/society/obituary/52897.html|별세했다]]. == 활동사항 == * 1982년 일본 도쿄국립극장 공연 * 1994년 일본 쿄토 오사카 공연 * 1995년 일본 요코하마 페스티벌 * 1996년 유라시안 에코즈 공연 * 1997년 영국 로얄홀 공연 [[분류:대한민국의 무형문화재]][[분류:국악인]][[분류:김해 김씨]][[분류:북구(포항) 출신 인물]][[분류:1922년 출생]][[분류:200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