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고려사)] ---- [목차] 金富佾 (1071 ~ 1132) == 개요 == 고려의 문신. 자는 천여(天與),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 생애 == [[경주시|경주]] 출신으로 선계는 [[경주 김씨|신라의 종성]](宗姓)이다. [[신라]]가 멸망할 때 [[경순왕]]을 따라 개경으로 가지 않고 경주 현지에 남아 주장(州長)이 된 [[김위영]]의 후손이다. 국자좨주 좌간의대부를 지낸 [[김근(고려)|김근]]의 차남으로, [[김부필]]의 동생이고 [[김부식]]과 김부철의 형이다. [[선종(고려)|선종]] 재위 즈음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직한림원이 된다. 숙종 5년(1100) 상서[* 고려사 김부일 열전에는 추밀원사라고 하는데 왕하가 추밀원사에 오른 것은 예종 즉위 후의 일이다.] [[왕하(고려)|왕하]](王嘏), 시랑 [[오연총]]을 따라 [[북송]]에 사신으로 가서 [[송휘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표문을 대신 짓는다. 이 [[http://db.history.go.kr/id/muds_002r_0010_0170|표문]]에 따르면 김부일 등은 송의 수도에 이르지 못하고 명주(明州, [[닝보시]])에서 돌아가야 했는데, 휘종은 김부일의 글이 아름답다고 칭찬하기 위해 내신을 따로 보낸다. 고려로 돌아온 뒤에는 습유 지제고의 벼슬을 받고 [[원주시|원주]], [[상주시|상주]] 두 주의 수령을 역임한다. [[예종(고려)|예종]]이 즉위한 뒤에는 예부낭중에 임명된다. [[여진족]] 추장 [[완안아골타]]가 요나라에 반기를 들자 예종 10년(1115) 요나라는 고려에 지원군을 요청한다. 예종은 신하들을 모아 의논하게 했는데, 대부분이 거란에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부일과 그 동생 김부식, 호부원외랑 한충, 우정언 한충, 위위소경 [[척준경]] 등은 >우리나라는 정해년(1107), 무자년(1108)의 병란([[고려의 여진 정벌]]) 이후 군민이 가까스로 쉴 틈을 얻었습니다. 지금 다른 나라를 위해 군대를 보내면 스스로 불화를 만드는 것이니 그 이해를 헤아리기 어려워 조심스럽습니다.[* 國家自丁亥·戊子兵亂之後, 軍民僅得息肩. 今爲他國出師, 是自生釁端, 其利害恐難測也.] 라고 말하며 파병 지원에 반대한다. 요나라 측에서는 이 해 5월에 사신을 보냈다가 11월에 재차 사신을 보내 출병을 독촉했는데,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가야 했다. 이후 김부일은 국자사업 기거주로 보문각대제를 맡으며 또 직학사에 오른다. 학문을 좋아하는 예종 앞에서『[[주역]]』, 『[[시경]]』 등을 강론하는데 문인 중 대적할 만한 자가 없어 명망이 두터웠다고 전한다. [[인종(고려)|인종]]은 김부일을 중용해 동지추밀원사 정당문학 한림학사승지로 승진시켰고 김부일은 인종 5년(1127) 호부상서 판예부사를 거쳐 [[평장사|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에 오른다. 풍허(風虛)로 인종 8년(1130) 세번 주청한 끝에 은퇴해 수태위 개부의동삼사 판비서성사 주국에 임명됐으며 인종 10년(1132) 4월 10일(음력) 62세의 나이로 죽는다. 사후에 검교태보 수태위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판상서예부사 상주국으로 추증되며 시호를 받는다. [[분류:고려의 인물]][[분류:경주 김씨 호장공파]][[분류:경주시 출신 인물]][[분류:1071년 출생]][[분류:113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