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하시중]][[분류:고려의 인물]] [include(틀:고려의 문하시중)] ||<-2> '''[[문하시중|{{{#670000,#fedc89 고려 도첨의시중}}}]][br]{{{+1 김보}}}[br]金普''' || || '''출생''' ||? || || '''사망''' ||? || || '''본관''' ||[[김해 김씨]] || || '''재임기간''' ||[[1365년]] || == 개요 == 고려 말기에 [[문하시중|도첨의시중]], [[찬성사|도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 상세 == 1351년(공민왕 즉위년) [[원나라]]에서 왕을 호종하여 입국하였고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임명되었다. 1352년(공민왕 1) 6월 호종공신 1등 상(上)공신에 녹훈되었고, 동년 10월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임명되었다. 이후 금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 1354년(공민왕 3) [[찬성사]](贊成事)로 있으면서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전보문(全普門)과 함께 하정사(賀正使)로서 원나라에 파견되었다. [[신돈]](辛旽)이 정권을 잡자 천거되어 1365년(공민왕 14) 5월 이춘부(李春富)와 함께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임명되었고, 동년 6월 수시중(守侍中)에 올랐으며 충근양절동덕보리공신(忠勤亮節同德輔理功臣)의 칭호를 하사받았다. 그러나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임군보(任君輔)가 신돈을 비난한 것에 동조하여 이를 여러 차례 왕에게 말하였으므로 신돈에게 참소당하여 동년 9월 [[문하시중|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에서 파직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