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출생''' ||[[1979년]] || ||[[서울특별시]] || ||<|2> '''사망''' ||[[2004년]] [[2월 18일]] (향년 25세) || ||[[전라북도]] [[전주시]] [[송천동 ]] || || '''학력''' ||[[동국대학교]] [[경영학과]]{{{-2 ([[졸업]] / 1997년 입학)}}}|| ||<-2> '''군사 경력''' || ||<|2> '''복무''' ||[[대한민국 육군]] || ||[[2002년]] ~ [[2004년]] || || '''임관''' ||[[학군사관]] {{{-2 (40기)}}} || || '''최종 계급''' ||[[대위]] {{{-2 (중위로 순직 후 추서)}}} || || '''최종 보직''' ||[[제35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소대장 교관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군인]]. 생전 최종 계급은 [[중위]]이며, 사망 후에 대위 계급에 [[계급 특진|추서]]되었다. [[대한민국 국군]]에서 [[수류탄]] 사고 사례로 유명한 [[강재구]] 소령과 비슷하게 수류탄 투척 교육 중 교육생의 목숨을 살리고 산화한 참군인이다. == 생애 == 1979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997년 동국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ROTC과정에 지원하여 [* [[https://www.jjan.kr/article/20040219113054|#]]] 2002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고 35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소대장 교관으로 근무했다. 2004년 2월 18월 전역을 4개월여 남겨둔 시점에 수류탄 투척 교육중 훈련병이 사건당일 안전핀을 한번에 제거하지 못한 채 머뭇거린 훈련병을 보고 위험을 직감, 주위에 엎드릴 것을 외친 뒤 수류탄 응급조치를 실시하려 하던 중 수류탄이 폭발하여 순직했다. 군당국에 따르면 사체 검안결과 김범수 대위의 양손이 절단된 것을 비롯 가슴부위에 파편이 집중된 점으로 보아, 김범수 대위가 훈련병 등 동료 장병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류탄을 감싸안고 산화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사고로 백제예술대 방송연예과 1학년을 휴학하고 입대한 이재훈 훈련병이 같이 사망하였다. == 사후 추모 == 분향소는 [[국군대전병원]]에 차려졌고 2004년 2월 20일 사단장으로 영결식이 엄수 된 후 [[대전현충원]] 2-212-5258묘역에 안장되었다.[* [[https://www.rotc.or.kr/menu/?pid=snmb_view&bur_idx=421|ROTC중앙회 홈페이지]] ] 추모비가 사고 당시의 수류탄 교장이었던 전주시 송정동에 건립되었다가 훈련장 부지를 이전하면서 [[임실|임실군]]로 이전했고, 35사단에는 신병교육대대 강당을 김범수관으로 명명하고 모범 초급간부들에게는 매년 추도식을 전후하여 '''김범수 대위상'''을 수여한다.[* [[https://j.breaknews.com/8719|#]] ]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1979년 출생]][[분류:2004년 사망]][[분류:동국대학교 출신]][[분류:폭발물에 죽은 인물]][[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분류:2004년 재난]][[분류:폭발물 폭발 사고]][[분류:대한민국 육군/사건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