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성주군 출신 인물]][[분류:1904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총기에 죽은 인물]]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김득경}}}'''[br]''' 金得敬'''}}}}}} || ||<|2> '''출생''' ||생년 미상 || ||출생지 미상 || ||<|2> '''사망''' ||[[1904년]] [[4월]] || ||[[경상남도]] [[함안군]] || || '''직업''' ||독립운동가|| ||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일제강점기]] 당시 경남 의령, 함안 등지에서 일본수비대와 교전하는 등 의병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Popup.do?goTocode=0&mngNo=950052&kwd=%EA%B9%80%EB%93%9D%EA%B2%BD|김득경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생애 == 김득경의 출생년도와 출생지는 기록의 부족으로 인해서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나아가 1907년 [[정미 7조약]]이 체결되고 전국 각지에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의병이 봉기하게 된다. 이와 같은 시기에 김득경도 국권회복을 위해서 1909년 4월 경남 의령군에서 동료들과 함께 의병을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동하였다. 이후 의령, 함안 등지에서 일본군 수비대 등과 교전을 벌이며 활동하던 중 결국 체포되었다. 이후 호송되던 그는 틈을 보아서 탈출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2|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