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ff '''김경욱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올림픽 양궁 여자 챔피언)] ---- [include(틀:세계양궁선수권 리커브 여자 은메달리스트)] ---- [include(틀:아시아양궁선수권 리커브 여자 챔피언)] ---- [include(틀:양궁 종합선수권 리커브 여자 챔피언)] ---- }}} || ---- [include(틀:대한양궁협회/리커브 여자 국가대표팀)] ---- ||<-3>
'''{{{+1 김경욱}}}[br]金京郁 | Kim Kyungwook'''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하계올림픽김경욱4.png|width=100%]]}}} || ||<-2><|2> '''출생''' ||[[1970년]] [[4월 18일]] ([age(1970-04-18)]세) || ||[[경기도]] [[여주시]] || ||<-2>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2> '''학력''' ||여흥초등학교 {{{-2 (졸업)}}}[br][[세종고등학교(경기)|여주여자종합고등학교]] {{{-2 (졸업)}}}[br][[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2 (학사)}}}|| ||<-2> '''종목''' ||[[양궁]] || ||<|2> '''소속''' || '''선수''' ||[[현대모비스 여자양궁단|현대모비스]](1989~1997,2000~2005)[br]수원시청 (2006~2007) || || '''해설''' ||[[SBS]] (2004~2014) || ||<-2> '''신체''' ||164cm, 58kg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양궁]] 선수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관왕이다. == 선수 경력 == 초등학교 4학년 때 양궁에 입문해서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7년에 처음 대표로 발탁되었다. 1989 세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 및 개인전 은메달, 아시아선수권이나 각종 오픈 대회에서 괜찮은 성적을 냈는데, 이상하게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던 선수였다. 한 살 아래인 [[김수녕]]이 [[1988 서울 올림픽]]과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모두 국가대표가 된 것과 달리 올림픽과 전혀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 이유는 [[1988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대표 선발전에서 순항하던 그녀는 마지막 3발을 모두 10점에 명중하고 대표로 확정짓는가 싶었는데,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양궁 규정상 과녁에 꽂힌 화살은 검사관이 검사하기 전까지는 절대 뽑으면 안 되는데, 그만 검사 전에 화살을 뽑아버린 것이다. 결국 이 세 발이 무효로 처리되는 바람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4위로 미역국을 먹었다. 훗날 김경욱 자신은 이 사건을 두고, 긴장하지 말자고 연습처럼 생각하고 활을 쏴서 성적이 좋았는데, 그만 연습처럼 무심코 화살을 뽑아서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 그 뒤로는 부상으로 인해 슬럼프에 빠졌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조기에 떨어지면서 대표로서의 인연은 맺지 못할 것처럼 보였지만,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극적으로 대표 선발전을 통과하면서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 선수들이 가장 고전한 대회인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신기의 활 솜씨를 뽐내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의 주관 방송사인 NBC가 과녁 정중앙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화살이 날아오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이 때 정중앙에 화살을 두 번이나 꽂으면서 카메라를 2대나 깨뜨렸다. 이 때 붙여진 별명이 그래서 '''[[https://www.youtube.com/watch?v=lSnxU1dl4oE&t=14s|퍼펙트 골드]], 카메라 브레이커'''였다. 이때 카메라를 2번이나 깨뜨리는 모습이 양궁계에 크게 각인되어 후배 [[신궁#s-2.2|선수]]들이 올림픽 본선에서 김경욱을 따라하려고 정중앙 맞히기를 꾸준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워낙 한국 여자 양궁선수들이 잘하다 보니, 1996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시작된 '올림픽 양궁 중계에서 과녁 정중앙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과녁의 시점으로 화살을 보여주는 관례'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양궁 선수들이 카메라를 깨뜨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개인전에서만 사용한다.[* 개최 시기에 악재가 겹치다보니 이전의 올림픽과 다르게 예산을 줄인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하다.] 실제로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단체전 준결승 벨라루스와의 경기에서 [[장민희]]가 정중앙을 정확히 맞혔다. 그래서 과녁에 카메라가 있었다면 깨뜨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개인전에서는 한국 선수 중에 홀로 살아남아 4강까지 올랐고, 4강과 결승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단체전에서도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2관왕에 올랐다.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독일 선수가 1점을 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면서 극적으로 역전승했다.[* 당시 이 실수 한 방에 경기가 그대로 터졌다. 당시에는 2010년 이후의 룰인 세트제가 아닌, 누적제 방식의 엔드제였던 터라 실수 한 방에 경기 전체가 터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그녀는 [[김진호(양궁)|김진호]]로부터 시작된 신궁의 계보에 그 이름을 올렸다. == 이후 == 2001년에 세계선수권 대표가 되었지만, 개인전 은메달과 단체전 동메달로 만족했고 이후로는 국가대표팀과 인연을 더 이상 맺지 못했다. 실업 팀 선수로는 상당히 오래 활동해서, 2007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가 현역에서 은퇴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는 [[SBS]]에서 만삭의 몸으로 양궁 해설을 해서 유명했다. [[1997년]]에 결혼해서 슬하에 세 아이를 둔 엄마다. [[일밤]] [[한판승부]]에도 [[https://youtu.be/3-zNGO0HoN0|출연했다.]] == 수상 기록 == ||<-3>
{{{#fff 올림픽}}} || || 금메달 || [[1996 애틀랜타 올림픽|1996 애틀랜타]] || 단체전 || || 금메달 || [[1996 애틀랜타 올림픽|1996 애틀랜타]] || 개인전 || ||<-3> {{{#fff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89 로잔 || 단체전 || || 은메달 || 1989 로잔 || 개인전 || || 은메달 || 2001 베이징 || 개인전 || || 동메달 || 2001 베이징 || 단체전 || ||<-3> {{{#fff 아시아선수권}}} || || 금메달 || 1989 베이징 || 단체전 || || 금메달 || 1993 자카르타 || 단체전 || || 금메달 || 1993 자카르타 || 개인전 || || 금메달 || 1993 자카르타 || 50M || || 금메달 || 1993 자카르타 || 60M || || 금메달 || 1993 자카르타 || 70M || || 은메달 || 1993 자카르타 || 30M ||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양궁 선수]][[분류:여주시 출신 인물]][[분류:1970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양궁 메달리스트]][[분류:1996 애틀랜타 올림픽 양궁 메달리스트]][[분류:양궁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