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언론 매체의 기자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기자)] 記者. Reporter. 사회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찌라시]] 혹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기자들은 [[기레기]] 라고도 한다. == [[이집트]]의 지명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기제)] == [[상나라]]의 현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기자(상))] 상나라의 왕족. [[주왕]]이 폭정을 저지르자, 그에게 간언하였는데, 되레 옥에 갇히고 말았다. [[주무왕|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무너뜨린 이후 풀려났으며, 기 땅의 자작(기자)으로 책봉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 [[기자조선]]은 실존했던 국가로 인식되었지만, 현대 사학계에서는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존했음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나 유적이 나온 것이 없는데다, 기자동래의 기록 또한 당대로부터 8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부터야 등장하기 때문. [[기자동래설]]은 중국에서는 [[한민족]]을 복속하기 위한 이념적 토대[* '이(夷)는 어질다.(仁) 그러나 성인의 교화가 있어야만 그 천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성인은 중화에서만 나올 수 있으며, 이적의 사회에는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중화를 따라야 한다.' 같은 논리이다.[[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30_0030_0010|참조 : 중국 정사에 보이는 우리 민족의 이미지-우리역사넷]]]로 활용되었다. 실제로 중국은 이런 식의 전과가 많은데, [[흉노]]가 하나라 [[걸왕]]의 후손이라거나 [[왜나라|왜]]는 진나라의 신하 [[서복]]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는 등 타민족의 기원을 자신들의 역사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조선 등 한민족의 국가에서 기자동래설은, '우리 땅에서 유학의 역사는 중국에서의 그것(공자)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특히 ''''성인(기자)이 찬탈자(주무왕)를 피해 이곳 동방으로 왔다.''''는 서사는 ''''폭력과 야만의 중화 vs 덕과 예의 한민족''''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최적이었다. 그래서 한민족에게 기자조선이란, '우리 또한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내지는 '우리가 중국보다 문화적으로 더 우월하다.' 같은 자부심을 증명하는 존재였다. == [[제5인격]]의 생존자 [[기자(제5인격)|기자]]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기자(제5인격))] [[분류:동음이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