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한의 체제선전시설)] ||<-2> {{{-2 '''[[북한|[[파일:북한 국기.svg|height=15]]]] [[평양시|{{{#white 평양시}}}]]의 [[영묘|{{{#white 영묘}}}]]'''}}}[br]{{{#!wiki style="margin: -10px -10px" || [[북한|[[파일:북한 국장_White.svg|height=60]]]]||'''{{{+1 금수산태양궁전[br]錦繡山太陽宮殿}}}[br]{{{-2 Kŭmsusan Palace of the Sun}}}''' ||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lace2.jpg|width=100%]]}}} || ||<-2> {{{-1 '''▲ 금수산태양궁전의 모습'''}}} || || '''다른 이름''' ||주석궁[br](主席宮) || || '''설립''' ||[[1977년]] [[4월 15일]] || || '''연혁'''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금수산의사당 {{{-2 (1977~1995)}}}[br]금수산기념궁전 {{{-2 (1995~2012)}}}[br]금수산태양궁전 {{{-2 (2012~ )}}}}}} || || '''규모''' ||{{{-2 부지면적}}} 3.5㎦[br]{{{-2 건축면적}}} 34,910㎡ || || '''목적''' ||[[김일성]], [[김정일]] 시체 보존[br]역대 최고지도자 숭배 || || '''상위 조직'''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금수산의사당경리부 || || '''주소'''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include(틀:지도, 장소=39.06335672910136%2c125.78883307315688&zoom=11, 타입=satellite, 너비=100%, 높이=250)]}}} ---- {{{#!wiki style="padding: 2px 10px; border-radius: 5px; background: #e40001; color: white" '''금수산태양궁전'''}}} {{{-2 ([[평양시]] [[대성구역]] 미암동)}}}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한]]의 [[영묘]]. [[평양시]] [[대성구역]] 미암동에 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체를 보존하고 전시하는 장소. 1973년 처음 착공되었으며 2층에는 1994년에 사망한 김일성의 시체가, 1층에는 2011년에 사망한 김정일의 시체가 있다. 그렇기에 오직 수령만 안장될 수 있는 이곳은 '''북한의 1급 묘역'''이며, 북한 인민들이 안장될 수 있는 최고의 묘역인 [[대성산혁명렬사릉]]조차 북한의 2급 묘역이다. '[[만경대고향집]]',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백두산밀영]]' 등과 함께 북한 내 핵심 시설물에 해당된다. 운영과 예법 등에 대한 부문법은 [[금수산태양궁전법]]이다.[* 이 부문법 안에 설립 근거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별칭은 ''''주석궁(主席宮)''''. 북한에는 [[주석(직위)|주석]]이 오직 [[김일성]]뿐이며, 실제로 김일성 생존 당시에 주석궁으로 불리던 건물은 바로 이곳이다. 북한을 방문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만경대고향집]],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대성산혁명렬사릉]], [[애국렬사릉]],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이유라도 방문해서는 안 될 곳 중 하나에 해당된다.[* 북측이 당신에게 이곳의 방문을 권유한다는 것은 '당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겠다'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대한민국]]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위험성도 있다.] 다만 북한에서는 관광 코스 중 하나로 반강제로 데리고 갈 수 있어서 북한에 발을 들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가게 될 때도 있다. 근처에 [[백화원영빈관]], [[조선중앙동물원]], [[평양 자연박물관|자연박물관]], [[조선중앙식물원]], [[대성산혁명렬사릉]]이 있다. == 특징 == || [[남북의 창|[[파일:남북의 창 로고.png|width=80]] [[파일:남북의 썰 로고.png|width=6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0vPnCUwCUpE, width=100%, start=772)]}}} || || '''북한의 종교[br](2022년 10월 6일 공개분)''' || 김일성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무덤용이 아니라 '''금수산의사당'''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청와대]], [[대통령실]] 청사[* 현재 북한에서 주석궁 역할을 하는 건물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이다. 김정은이 당, 정, 군의 전권을 갖고 있고 당의 권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와 유사한 역할인 국가주석 집무실 용도였다. 그것을 김일성 사후에는 김정일이 무덤으로 개조하고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꾸었는데,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무덤이 아니라 김일성 미라 전시장에 가깝다. 나중에 김정일도 죽은 뒤 곁에 합장되었다. 북한을 흔히 [[김씨 왕조]]에 빗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보면 [[종묘]]와 같이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ae40c528c77cac00c758-c228aca8c9c4-c9c4c2e4/co-su-07142021091318.html|역대 국왕을 추모하는 시설이 된 셈이다.]] 이후 김정일의 70회 생일인 2012년 2월 16일에 '금수산태양궁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칭했다. 참고로 김일성 사후 김정일-김정은은 이 건물 대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를 관저 및 집무실로 사용한다. 금수산은 지명이 아니라 '수를 놓은 비단'을 뜻하는 금수('''錦繡''')로, '금수강산'할 때의 그 금수이다. 일반명사에 가까운 지명이므로 발음과 한자가 같은 지명이 몇 군데 더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의 금수산, 사이비 단체인 [[금수원]] 등.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60719c95-61f6-4c93-90c4-cdc285de6d15.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15kimilsung.jpg|width=100%]]}}} || || '''김일성의 석고색 동상만 있던 시절'''[* 김일성 사후 주석궁에서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변경된 후의 모습이다. ] ||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일이 추가된 석고색 시절 동상의 모습'''[* 실제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키 차이는 15cm 정도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im2016.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錦繡山太陽宮殿2020.jpg|width=100%]]}}} || || '''김일성 사망 21년 이후 천연색으로 교체된 동상의 모습'''[* 이 교체 작업으로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이전보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머리 모양과 얼굴 형태, 복장 등을 김 부자의 생전 모습과 최대한 닮게 만들었다. [[북한]]이 이처럼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의 핵심인 동상을 '색상'으로 꾸밈은 젊은 [[김정은]]의 세련된 '감각'을 외부와 주민들에게 선전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 '''금수산태양궁전 입상홀의 전체적인 구조'''[* 광명성절, 태양절, 노동당 창건일 등 중요한 날이면 김정은과 당정군 고위급 간부들이 찾아가 참배한다.] || 위 사진처럼 중앙 홀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생전 유품과 색을 입힌 거대한 동상이 전시되었다. 구글 위성 사진으로 보면 [[능라도 경기장]]을 제외하면 '''[[평양국제비행장]] 건물보다도 큰''', 북한 최대 규모의 건축이다. 비교하자면 아이파크몰을 포함한 [[용산역]] 전체 규모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부에는 [[호위사령부]] 호위총국 제3호위대 소속 병력들이 의장대 겸 경비 임무를 위해 배치되어 있다. 군악대도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은 참배객 방문시 장송곡을 연주한다. == 시설 구조 == 내부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통제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아래 사진 외 내부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찾기는 힘들다. 북 관영매체에서도 보통 입상홀에서의 모습, 시신이 전시된 장소만 비추는 것이 태반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전경.png|width=100%]]}}} || || '''정면에서 바라본 본관 건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정문.png|width=100%]]}}} || || '''본관 정문'''[* 고위급인물이 방문할 때에는 이 문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이 입장할 때에는 외곽에 위치한 기다란 직선 통로를 통해 입장한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입상홀.png|width=100%]]}}} || || '''동상이 전시된 입상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1층홀.png|width=100%]]}}} || || '''1층 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2층홀.png|width=100%]]}}} || || '''2층 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전시된김일성태양호.png|width=100%]]}}} || || '''김일성이 생전에 이용한 전용 열차의 일부가 전시된 모습'''[* 이 외에도 생전에 이용한 [[벤츠]] 자가용도 전시되어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전시된김정일관련물품.png|width=100%]]}}} || || '''김정일이 생전에 받은 물품들이 전시된 모습'''[* 주로 외국에서 수여 받은 학위 문서, 훈장들이다.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들은 대부분 [[국제친선전람관|묘향산]]에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전시된김정일전용선박.png|width=100%]]}}} || || '''김정일이 생전에 이용한 전용 선박이 전시된 모습'''[* 이 외에도 생전에 이용한 전용 열차, 자가용, [[골프]] 카트 등이 전시되어 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애탄홀.png|width=100%]]}}} || || '''애탄(lamentation)홀'''[* 김일성과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애탄하는 장소라고 한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금태궁-방문자방문기념홀.png|width=100%]]}}} || || '''방문객들 전용 방문기념홀'''[* 북에서는 소감 발표장이라고도 한다.] || == 역사 == === 주석궁 시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1010600854_1.jpg|width=100%]]}}} || || '''김일성 사망 이전 집무실로 쓰이던 시절의 주석궁''' || 북한 [[평양시]] [[대성구역]] 미암동에 있는 말 그대로 궁전. 예전 이름은 '금수산 의사당'으로 김일성이 거주하며 업무를 보던 곳이었다. 즉, 남한으로 치면 [[청와대]]에 해당하는 건물이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북한 관련 용어 가운데 '주석궁'이 바로 이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외교관 등 외국인 인사가 방북하면 여기로 데려가기 때문에 내부를 관람한 사람도 꽤 많고 방송에서도 종종 보여주는데, 내부는 이름처럼 궁전 구조로 되어 있고 인테리어는 아름답다고 한다. 한국 고위 인사들 중 1990년에 [[강영훈]] 당시 총리가 면담차 [[https://imnews.imbc.com/replay/1990/nwdesk/article/1839963_30435.html|이곳에 들렀다]]. [[루마니아]]의 대통령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1971년 방북 당시 금수산 의사당에 큰 감명을 받고 루마니아에 돌아가 이를 모티브로 한 [[인민궁전]]을 세우기도 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516754|상세 정보①]], [[http://media.daum.net/politics/north/view.html?cateid=1019&newsid=20111228152508972&p=yonhap|상세 정보②]]. === 김일성 시체 전시 (금수산기념궁전 시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htm_2011041614072730003010-001.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일성 시체.jpg|width=100%]]}}} || ||<-2> 미라화되기 전에 임시 보관된 김일성의 시체.[* [[과학동아]]에 따르면 유지비 절감을 위해 처음 [[부검]]을 할 때도 내장, 안구 등 썩기 쉬운 부위는 다 제거했다고 한다.] || 1994년 [[엠버밍]] 처리한 김일성의 시체를 영구히 보존하려는 목적으로 김일성이 생전에 생활하던 주석궁을 개조했고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변경되었다.[* 이 개조 과정에서 주석궁의 창문들을 전부 막는 공사를 했다. 그래서 주석궁 시절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보면 다른걸 알수가 있다.] 미라의 관리는 기술력이 있는 [[러시아]]에 큰 돈을 내면서 전담하게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입장자는 한 자리에 서서 관람할 수 없다. 지나가면서 보고 퇴실해야 한다. 이는 [[모스크바]]의 [[레닌 영묘]]에 안치되어 있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시신, [[베이징시|베이징]]의 [[모주석기념당]]에 안치되어 있는 [[마오쩌둥]]의 시신,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 안치되어 있는 [[호찌민]]의 시신도 마찬가지인데, 북한이 이들을 따라한 것이다. 단, 일부 특권층은 서 있어도 상관 없는 듯하다. 궁전 내부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이나 열차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주석궁 개조 비용은 [[핵심계층]]이 '충성심 입증' 차원에서 바친 재산으로 충당되었다. 인력은 뭐, [[원납전|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그 재산과 노동력이 다 누굴 쥐어짜서 나온 것이냐'는 소리가 나오겠지만 여기에 더해 인민들을 상대로 외화 헌납 운동이란 것을 벌였다고 한다. [[풍경궁|그러니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인민들에게 건설 노동까지 시키면서]] "수령님 궁전 좀 크고 반짝이게 짓게 돈 좀."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일성 시체를 보존 작업하던 시기가 하필 북한이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으로 고생하던 시기라서 상당수의 인민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시기에 이 건물을 지었다. 사실 김일성 본인은 이렇게까지 대대적인 우상화를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생전의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사실상의 권력을 이양한 후에는 주석궁의 자기 집무실에서 망원경으로 [[대성산혁명렬사릉]][* 북한판 [[국립현충원]]으로 항일 [[빨치산]]과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6.25 전쟁]] 유공자(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상대진영인 적군)들이 묻혀 있다.]을 바라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게 주요 일과였다고 한다. 당시 김정일에게 '내가 죽으면 과거 함께 싸웠던 동지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고, 즉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누누이 말했다지만 김정일은 '''권력 이양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아버지의 유언은 깔끔하게 무시해버리고 있는 예산 없는 예산 싸그리 다 끌어다 박제 후 궁전을 지었다. [[우상숭배|매년 1월 1일 자정이 되면 김정은과 수뇌부 핵심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참배한다.]] [[http://www.ytn.co.kr/_ln/0101_201010101137149844|#]] 이 외에도 북한 내부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참배를 한다. 예외적으로 비정기적 참배도 간간히 있는데, 주로 북한과 사이가 좋은 국가의 대표급 인물이 방문했을 때[*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와 뭔가 큰 일이 있을 때[* 김일성 5년 주기 기념, [[조선로동당]] 대표자 회의 개막전 등.]에도 참배 행사가 자주 개최된다고 한다. 2000년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당시 하마터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길 가야 할 뻔했다고 한다. 회담 참석 조건으로 북한 측이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를 끈질기게 요구했다는데, 다행히도 결국 이 조건 자체가 폐기되고 참배 일정은 뺀 상태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엔 [[북한]]이 이러한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았다가 회담 4년 뒤인 2004년에야 공개했다. 간단한 이유를 말하자면 이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바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려던 시기였는데, 이를 공개할 경우 위에 서술했듯이 사회 분위기도 그렇고 당시 어렵게 조성해 놓은 남북 화해 무드를 깨뜨릴까 봐 우려했던 것이기 때문에 회담 4년 뒤에 이 사실을 밝혔다. 이후로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이곳은 참배하지 않도록 하는데, 이곳을 참배하는 것은 [[한일관계]] 개선하겠답시고 [[야스쿠니 신사]]나 [[순국7사묘]]에 참배하는 것과 같은 행위여서 북한 측의 요구와 상관 없이 참배하지 않는 쪽을 견지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유럽]]이나 [[북미]] 쪽 인사가 방북하면 이쪽으로 끌고 가려고 시도한다고 한다. 또한, 북한 주재 외국 대사는 부임할 때마다 이쪽으로 최소 한 번씩은 끌려가서 참배하게 된다. 대사 본인은 가고 싶지 않아도 다른 일정 소화 중 갑자기 차를 꺾어서 이쪽으로 끌고 가므로 대사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러시아]] 대사, [[영국]] 대사, [[스웨덴]] 대사는 꽤 자주 끌려가고 그 참배 광경이 북한의 지상파를 타는데, 이런 강대국 대사들도 우리의 위대한 수령에게 참배를 한다는 선전용으로 삼기 위함이다. === 김정일 시체 전시 (금수산태양궁전) === 2011년 12월 17일 공식적으로는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김정일도 이 곳으로 간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김정일을 김일성과 동급으로 보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2011년 12월 20일 사실이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429017|관련 기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정일 시체.pn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정일 시신.jpg|width=100%]]}}} || ||<-2> 김정일의 시체. 사체 주변에 장식되어 있는 꽃은 [[일본]]의 식물학자 카모 모토테루가 1988년 김정일의 생일 선물로 보낸 [[베고니아#s-1]]의 인공 개량종인 '''[[김정일화]](花)'''[* 정식 명칭은 김정일리아(Kimjongilia). 동명의 영화가 있는데, 내용은 꽃과는 전혀 상관 없는 [[탈북자]]의 이야기를 다뤘다.]라고 한다. || 위의 사진은 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임시 상태지만, 궁전 자체가 결국 김씨 일가를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장소인 만큼 단순한 무덤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차후 김정일 신격화 작업의 밑거름이라고 봐야 한다. 결국 김정일 장례식과 뒤이은 [[조선인민군]] 장병 결의대회 등의 공식 일정 뒤 대규모 개축 공사가 진행되었고, 김정일 사후 1주기였던 2012년 12월 17일에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치권과 군부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재개관했다. 김정일 사체의 [[엠버밍]] 작업도 완료되었다고 하며, 김일성 조각상만 있던 중앙홀에 김정일 조각상이 추가되고 김정일의 '유품'이 전시된 전시실도 새로 개관하는 등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공식적인 묘소가 되었다. 이름도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변경되었다. 김정은도 개인숭배 체계를 만드는 것을 보면 김정은 역시 사후 여기에 안치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세습이 계속되어 역대 수령들이 계속 입주하면 김일성 우상화 장소를 벗어나서 [[판테온]]이나 [[파르테논 신전]], [[종묘]]와 같은 북한 사상의 상징적인 건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 現 북한 정권 붕괴 이후 == * [[남북통일/행정 문제]]도 참조. === 재활용할 것인가? === [[대한민국]] 주도의 [[북진통일|자유통일]]이 된 후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게 된다면 대한민국 체제 경쟁의 승리와 정복 기념의 의미가 부여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 고로 [[전쟁기념관]] 같은 국가안보박물관, 국립인권박물관이나 역사박물관 등으로 바뀔 수 있다.[* 실제로 승전국이나 한 나라를 정복한 국가들의 경우 정복지나 적국의 랜드마크나 성소 등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략적으로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쓰레기장이나 화장실 등으로 써서 모욕을 주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는 그 건물을 보존하되 경쟁의 승리를 위한 의미를 부여하여 개조하거나 자국의 우위를 표시할 수 있는 건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고대에 많이 쓴 방식이고 후자는 근대에 많이 쓴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강명도]]는 철거하지 않고 남겨둬서 독재자의 패악을 알리는 국립민주주의교육관으로 쓰는 것을 제안했다. 남북으로 나뉘었다 [[북베트남]] 주도로 통일한 [[베트남]]의 경우도 [[남베트남]]의 옛 대통령 집무실 통일궁을 분단 시대 관련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진 자료나 처음 통일궁에 진입한 북베트남 탱크 실물 등 북베트남의 우위를 선전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또 통일 한국의 정부청사로 쓸 수 있다. 평안남도청·평양시청과 도의회·시의회 청사, 가칭 '정부평양지방합동청사' 내지 '정부평양청사' 등이 입주하는 것이다.[* 이 둘이 무슨 차이가 있냐면, '정부평양지방합동청사'는 '평안남도(또는 평양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평양지방국세청', '평양지방고용노동청' 등이 입주하는 곳이고, '정부평양청사'는 중앙 정부의 부처청 본관이 여기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능은 [[만수대의사당]]과 겹치다 보니 같이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다. 단순히 다른 세력의 상징을 넘어 나쁜 의도로 사용되었거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건축되었을지라도 보존할 가치는 있다. 현재는 철거된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청사]])의 경우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선포된 장소이기도 하다는 점을 비롯하여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 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학문적 연구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에 이용될 우려가 높고 [[경복궁]] 복원에 지대한 방해물이었다는 점에서 국민 감정에 반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 철거의 가치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과거에 지어진 큰 물건들 가운데에는 [[독일]]의 [[베를린 장벽]], [[폴란드]]의 [[바르샤바#s-5.2|문화과학궁전]], [[루마니아]]의 [[인민궁전]]처럼 백성들을 강제로 혹사시켜 지은 것들이 제법 많지만 랜드마크로 활용하거나 일부 남겨놔서 교육 용도로 쓰는 경우도 많다. 인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만으로 철거하진 않는다. 승리 등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과거 민족이 분단되어 [[조선로동당|조선노동당]]이라는 독재 정부가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교육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이 건물을 철거해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면 철거되겠지만 김씨 왕조를 우상화했던 건물이라는 까닭으로 반드시 철거해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우선 그 전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시체도 처분하고 우상화 기념물을 전부 제거해야 한다. 특히 김일성 부자 시신은 [[아돌프 히틀러]]나 [[도조 히데키]], [[사담 후세인]], [[오사마 빈 라덴]]의 사례에서 보듯 통일 후에도 어엿한 무덤을 만들면 [[통일 한국]]에 잔존하는 극소수의 [[종북주의자]]들의 '성지'로 계속 역할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화장 처리 발표 후 화장한 과정까지는 보여준 다음 그 후에 비밀 납골당을 만들어 안착하거나 바다에 뿌리거나 해야 할 것이다.[* 뼛가루를 폐기 또는 뿌린 장소가 드러날 경우 히틀러의 무덤을 찾으려 하는 [[네오 나치]]나 일본 극우들의 성지가 된 [[순국7사묘]]의 사례처럼 김일성 일가의 추종 세력들의 성지가 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막기 위해 공식적으로만 화장 처리함을 발표하고, 처리 자체는 당연히 비공개로 집행할 것이다.] 설령 [[순국7사묘]]의 경우처럼 이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화장된 유골이 몰래 빼돌려져 겨우겨우 무덤이 만들어진다 할지라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무덤은 김일성 일가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어온 한반도 전역의 사람들의 빗발치는 훼손 시도로 인해 [[이완용]][* 해방 후 민중들에 의해 무덤이 수시로 훼손되자 결국 이를 보다못한 이완용의 증손자가 시신을 불태웠다.], [[프랑수아 뒤발리에]][* 대리석 영묘에 안장되었으나 아들 [[장클로드 뒤발리에]]가 축출되기 직전에 무덤이 훼손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시신이 빼돌려져 비밀리에 안장되었고 빈 무덤은 분노한 민중들의 손에 파괴되고 '뒤발리에는 [[에이즈]] 환자'라는 말이 순해 보일 정도의 온갖 증오에 빗발친 욕설이 담긴 낙서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폴 포트]][* 부하들에 의해 '''폐타이어, 쓰레기와 함께''' 화장된 후 무덤에 안장되었지만 [[캄보디아]] 국민들은 그의 무덤을 찾아 오줌을 싸거나 침을 뱉고 있다고 한다.]의 무덤 이상으로 참혹한 꼴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김일성 부자의 유해는 어느 쪽이든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부정부패, [[북한/인권|인권 탄압]]을 증명하기 위해 시체를 보관까지는 않더라도[* 이쪽은 당연히 비용문제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순국선열들에게도 들이지 못할 예우를 교정시설의 무기징역수를 비롯한 장기복역자들의 의식주 비용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세금으로 치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대신 [[김일성]] 일가의 점거 기간 동안 있었던 사진이나 사치 행각을 했다는 증거 등을 갖고 전시할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시체는 없어도 그가 가진 소지품을 전시하고 그가 어떻게 [[독일인|국민]]을 착취하고 [[제2차 세계 대전|전쟁]]을 일으켰는지 보여주는 것과 같다. 기념궁전 건물 자체는 [[루마니아]]의 [[인민궁전]]처럼 안보박물관, 인권박물관이나 통일기념관 등의 박물관/기념관 건물로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말로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쓰이게 된다면 개장 전에 우상화를 위한 장식물을 모두 제거하고 내부 구조를 변경하는 리모델링을 당연 필수적으로 거치게 된다. 그 외에도 통일 이후 [[김일성종합대학]]이 국립평양대학교로 전환되고 나면 이 건물을 추가 캠퍼스나 부속 건물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바로 옆은 아니고 1.2km 정도 떨어져 있긴 한데, 어차피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소수의 노후 주택과 건물들뿐이라 딱히 땅값 들어갈 것도 아니다. 애초에 [[사회주의]] 국가라 국유지일 확률이 높기도 하다. 사실 지금 김대는 주로 인문학 쪽에 치중되어 있는지라 시설이나 면적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립종합대의 위상에 걸맞지도 않아 이 정도 확장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강의실 등으로는 이용하기 힘들다고 해도 원래 집무실 건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박물관이나 컨벤션센터, 도서관 등으로 재개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평양대학교 도서관이나 국립평양도서관으로 재활용된다면 [[국회도서관]]에 맞먹는 상당량의 장서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도서관 기능을 하자니 [[인민대학습당]]과 기능이 겹친다. 대학 교재나 [[논문]]을 관리하는 대학도서관과 시민들에게 자료를 대여하고 중요 문서를 보관하는 공공도서관의 역할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서울교육대학교]]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이 가깝다고 둘 중 하나만 존치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민대학습당 쪽이 기능으로나 취지로나 건전성으로나 도서관 기능이 더 우수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기는 어려울 듯하다. 게다가 둘 다 도서관으로 쓰이기에는 너무 가깝다. 고작 7.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 철거할 것인가? === 반대로 금수산태양궁전의 폐기물은 처음에는 정부 청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현재는 결국 순수하게 '[[주체사상]]의 홍보'와 '김일성, 김정일 박제 보관용' 인지라 위에서 우려하던 '주체사상의 성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차우셰스쿠]]의 [[인민궁전]]은 정부 청사로 사용되던 것이기 때문에, 이후 [[루마니아]] 정부가 그대로 쓸 수도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해방 직후에도 조선신궁과는 다르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대문형무소]]나 [[조선총독부]]가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대한민국 정부에서 비슷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는 1995년 해체되기 전까진 중앙청, [[국립중앙박물관]]의 용도로 쓰인 적이 있었다. 즉, [[조선총독부 청사]][* 실제로 조선총독부 청사가 헐린 이유는 상징성도 있겠지만 [[경복궁]] 훼손도 큰 원인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중심지 중 하나인 세종대로 지역에 [[일제강점기]]의 상징인 데다가 주변 경관과도 잘 안 어울리는 건물이 한국 건축과 부조화스럽게 세워져 있다는 점도 있다. 반면 금수산태양궁전은 딱히 주변 경관에 비해 어색하지 않고 논밭을 제외한 평양의 가장자리에 있고 후술할 '터'를 제외하고는 부숴 날려먹은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처럼 [[흑역사]]의 상징이기도 하므로 폭파 및 해체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대가 옛 [[고구려]]의 유적지로써 일대가 청암리토성과 청암리사지[* 고구려 시절 금강사로 추정되는 지역이다.]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헐릴 가능성도 높다. 고고학적 조사 이후 유적지가 확실하다면 파괴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이런 문화재 발굴 및 복원 위한 취지를 근거로, 기념궁전 건물을 철거한다면 철거하면서 부지의 정원과 부속 토지 일대를 싹 갈아엎으면서 발굴을 할 가능성이 크다. 아예 유적지 복원을 명분으로 헐어도 될 듯하다. 그러나 이미 건설 전후부터 유구까지 파손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와 권역은 모른다. 그러나 북한답지 않게 날림이 아닌 튼튼하고 신중하게 만든 건물이기 때문에 안정성은 어느 정도 보장될 수도 있다. 그래도 만약 대한민국의 안전 기준에 따라 검사해봤을 때 붕괴 가능성이 높다면 굳이 돈을 들여 보강하느니 철거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고, 비교적 안전하다면 약간의 보수만 해서 재사용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정말 미지의 영역이다. 일단 [[북한인]]들이 [[백두혈통|김일성 일가]]에 대한 인식이 나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게 확실하다고 보기는 힘들고, 설령 반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고학적, 역사학적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매우 많다. 그래서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 이후 이 장소를 철거할 지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 사전조사는 물론이고 철거 시 이익이 되는 부분과 손해가 되는 부분 등을 면밀이 조사해야만 한다. [[남북통일|통일]]을 한국이 주도한다고 해서 북한의 잔재를 닥치는 대로 없앤다는 것은 매우 힘든 것이다.[* 참고로 헌법상 북한 주민들은 피지배민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이 이뤄질 경우 사전 조사할 시간이 충분한데도 남한 지역의 여론에만 의지해 성급하게, 멋대로 철거한다면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대한민국 정부|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 우려가 있다. 합당한 명분과 이유가 있을 때 철거해도 절대로 늦지 않다. 다만 대한민국과 북한의 [[한국군 vs 북한군|전면전]]이 벌어지고 [[대한민국 국군|한국군]]이 이곳까지 점령하는 형태로 통일될 경우 현장 지휘관의 독단이나 교전 중 유탄에 의해 파괴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북한 정권의 상징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탄이 아니라 심리전 목적으로 조준폭격할 가능성도 높다.] 당장 [[베를린 전투]] 당시 [[독일 국회의사당]]이 최후까지도 전투가 벌어져 철저히 파손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적의 선전물은 파괴하기 좋은 목표물이다. 군에서는 북한의 핵심적인 우상화 건물이기에 수립한 [[대량응징보복]] 계획안에서도 해당 건물을 원거리 타격 무기의 목표물로 설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체 역시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 == 기타 == 금수산태양궁전 때문에 [[평양 지하철도 혁신선]]의 [[광명역(혁신선)|광명역]]이 폐역되었다. 대신 [[삼흥역]]에서 이곳까지 금성거리 궤도전차 혹은 [[평양 궤도전차 금수산선|금수산선]]이라는 이름의 1,000mm 궤도를 사용하는 전용 노면전차[* 평양 노면전차는 1,435mm 표준궤를 사용하는데 이곳만 1,000mm 협궤를 사용한다. 이 궤도를 운영하는 차량은 1,000mm 궤도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인 [[스위스]]에서 구매했다고 한다.]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 김씨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곳까지 무려 2시간이나 걸린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있는데, 실제 위성 사진으로 보면 [[광명역(혁신선)|광명역]]에서 금수산태양궁전 입구까지 4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넓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입장 전 수속과 안내, 이전의 내부 전시물 관람 등으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것까지 합한 시간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부에서는 [[평양시]]를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강제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하게 시키고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강제로 참배하도록 시킨다. 하지만 아프다고 하거나 체력이 떨어졌다고 하거나 시차적응이 안됐다고 하거나 하는 단순한 핑계 정도 대면 괜히 억지로 데려갔다가 사고칠 것을 우려한 북한 가이드들이 그냥 숙소에서 쉬게 해준다. 가이드들이나 북한 정권 입장에서 가장 악몽스러운 상황은 특유의 힙스터 기질을 북한에서도 한번 발휘해보고 싶어서 간질간질한 사고뭉치들인데, [[자살|한번은 서양인 관광객 한명이 금수산태양궁전에 가서 물구나무를 서고 까불다가]](...) 여행단이 통째로 다 추방당했고 가이드들은 모조리 해고되었다.[[https://blog.naver.com/minjune98/222940762360|#]] 김정일·김정은 시대 북한 최고지도자의 집무실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청사(1호 청사)이다. [[오산 공군기지]]에 주둔하는 [[F-22]]가 출격하면 단 7분 만에 폭격이 가능하다. 그리고 전투기를 출격시킬 것도 없이 한국군의 최신 [[탄도미사일]]인 [[현무 IV 탄도 미사일|현무IV]]를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04/03/4BY5K5ERIBCEJARYJRZVZ5ADNA/|발사하면 한 방에(!) 무너뜨리는 것이 가능하다.]] [[분류:대성구역]][[분류:관저]][[분류:영묘]][[분류:북한의 무덤]][[분류:1977년 설립]][[분류:주체사상]][[분류:김일성]][[분류:김정일]][[분류:화폐의 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