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일제강점기에 실시된 행정구역 개편, rd1=부군면 통폐합)] [include(틀:김일성)] [목차] [clearfix] == 개요 == [[북한]]이 [[6.25 전쟁]] 도중 전선(戰線)이 고착되고 고지쟁탈이 이어진 때인 1952년 12월에 단행한 [[행정구역 개편]]이다. 이 개편으로 98개 군이 168개로 늘었고, 1만 120개 리가 3658개(168개 읍을 제외)로 병합·개편되었다. == 의도 ==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행정구역 면적을 줄여 통제를 용이하게 하려고 추측할 뿐이다. == 방향 == 기존 [[특별시]]/[[도(행정구역)|도]] - [[시(행정구역)|시]]/[[군(행정구역)|군]]/[[구(행정구역)|구]] - ([[읍(행정구역)|읍]]/)[[면(행정구역)|면]] - [[리(행정구역)|리]](/[[동(행정구역)|동]]) '4단계 행정구역 체계'에서 [[면(행정구역)|면]]을 '폐지'하고, 리 가운데 인구 및 면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리를 여러개를 한 리로 붙여(통합해) [[특별시]]·[[직할시]]/[[도(행정구역)|도]] - [[시(행정구역)|시]]/[[군(행정구역)|군]]/[[구역]]/지구 - [[읍(행정구역)|읍]]/[[로동자구]](/[[동(행정구역)|동]])/[[리(행정구역)|리]] '''3단계 행정구역 체계'''로 '개편함이 핵심'이지만, 겉보기에는 현 '대한민국에서 리를 폐지하고 면을 좀 더 잘게 쪼갠 모양새'처럼 보인다. [[군사분계선]]으로 분단된 행정구역을 인근 행정구역에 편입했다. [[1946년]]에 '면으로 일괄 개칭된 [[읍(행정구역)|읍]]'이 ''행정중심지''에만 다시 생겼고, [[1955년]]에 '도시적 리를 모두 동'으로 바꿨다. === 긍정적 요소 === 그 악명 높은 [[부군면 통폐합]]의 흔적을 '상당히' 걷어냈다. 그런데 남한은 이를 안 공인하고 [[이북 5도]]만 인정한다. === 부정적 요소 === 대체 무슨 기준으로 개편했는지 알 수 없다. 이북의 생활권 변동을 반영하지 않았을까 싶어도 '''고작 2년 뒤인 1954년부터''' 자잘하게 조정하였으므로 설득력은 그다지 없다. 그 이후로도 도대체 왜 개편했는지 의문을 품게 하는 차후 조정도 많았다. 더군다나 [[부군면 통폐합]]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것도 아니다. 실제로 [[황해도]] 문화군, 풍천군(1967년에 [[과일군]]으로 복설), [[평안북도]] 가산군을 복구하지 않았으며 [[평양시|평양(특별)시]] - [[평안남도]] [[대동군]], [[평안북도]] [[의주군]] - [[신의주시]], [[황해도]](현 [[황해북도]]) [[황주군]] - [[송림시]], [[함경남도]] [[함흥시]] - [[함주군]], [[황해도]](현 [[황해남도]]) [[해주시]] - [[벽성군]], (현 [[황해북도]]) [[봉산군]] - [[사리원시]], 1949년에 분할한 [[자강도]] [[강계시]] - [[장강군]]과 2년 후인 1954년에 분할한 [[량강도]] [[혜산시]] - [[운흥군]] 등 아직도 부군면 통폐합(도농분리)의 흔적이 남은 경우가 많다. 남측은 부군면 통폐합 과정에서 통합된 행정구역을 재분할한 사례가 매우 적은 반면, 도농분리 일환으로 분리된 행정구역은 시가지 확장이나 도농복합시 제도 도입으로 상당수가 재통합되었다. 북측은 반대로 통합된 행정구역을 많이 재분할했지만, 도농분리로 신설된 행정구역은 별로 재통합하지 않았다. == 개편현황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군면리 대폐합/개편현황)] [[분류:1952년/사건사고]][[분류:김일성 시대]][[분류:북한의 행정구역]][[분류:실현된 행정구역 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