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국립유리제조소(國立琉璃製造所)는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본격적인 [[유리]](琉璃,glass) 제조가 가능한 유리공업의 시작점이다. 1902년 이용익(李容翊)이 건립한것으로 알려진 국립유리제조소는 러시아 기술자의 협력으로 건설된 병유리 생산시설을 갖춘 공장으로 알려져있다. 1904년 러일전쟁으로 폐쇄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리(琉璃)[[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1384]]] 이후에도 [[일제강점기]] 가동된 초자제조소들 , 1948년의 동양유리공업주식회사 그리고 6.25동란이후 국제기구 UNKRA(유엔한국재건기구) 원조에 의해 1956년 가동에 들어간 인천유리공장 등이 현재로서는 면면히 이어지는 한국 유리산업과 유리공업의 흐름에서 국립유리제조소(國立琉璃製造所)가 이들의 시발점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볼수있겠다.[* \[매일일보\] 한국 최초 판유리 공장의 출발지 인천, 국가기간산업의 근원지[[http://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331397]]][* (국립부여박물관 대표유물)유리 대롱옥(琉璃製管玉) [[https://buyeo.museum.go.kr/relic/relicView.do?menu_nix=GPSO029A&rel_idx=RLIDX00006]]][* \[백제군사박물관\]고고학으로 보는 백제사-부여 합송리 유적 [[https://www.nonsan.go.kr/museum/html/sub02/02080101.html?mode=V&no=486f70f473a4e8c5f70e7662180574cc]]][* \[인천일보\]신라시대 고분서 유리잔·주발 등 출토[[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69767]]] 이와는 별개로 한반도에는 기원전후에 이미 백제, 신라시대에도 유리제조기술로 가마터에 생산이 이루어졌었다고 알려져있다. == 유리 세공술 == 유리 세공술은 근대 문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계식 시계]]의 제작기술 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기술적으로는 유리를 제조하는 기술이 기원전부터 확립된것으로 알려져있고 16C를 전후해 중세시대에 이미 결과적으로는 유리세공술로 인해서 [[망원경]], 안경, 돋보기 같은 확대경 그리고 [[거울]], (볼록)[[렌즈]], [[초자 기구]] 등을 통해 보다 1673년경의 [[레벤후크]](Leeuwenhoek)의 [[현미경]]과 같은 정밀한 기계나 [[화학물질]], 광학적 현상, [[온도계]] 등을 다룰수있는 길을 제공했다고 인정받고 있다. == 관련 문서 == * [[황남대총 북분 유리구슬 거푸집]] * [[실험 기구]] * [[프리즘]] [[분류: 화학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