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구당서)] [목차] == 개요 == 丘神勣 (? ~ 691) 당나라의 인물로 구행공의 아들이다. [[측천무후]] 시기의 혹리. == 생애 == 구신적은 682년에 좌금오위장군(左金吾衛將軍)으로 임명된다. 683년 [[고종(당)|고종]]이 죽고, 이듬해에 [[당중종]]이 즉위한 뒤 [[측천무후]]가 수렴청정을 맡았다. 측천무후는 뒤에 당중종을 폐위시켰고 [[당예종]]을 즉위시켰다. 측천무후는 고종의 아들인 [[장회태자]]가 모반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구신적에게 파주(巴州)로 가서 장회태자를 감시하도록 한다. 그리고 3월에 들어서 구신적은 측천무후의 명으로 장회태자를 살해하였다. 측천무후는 구신적에게 죄를 떠넘겨 그를 첩주(疊州) 자사로 좌천시켰다. 구신적은 뒤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좌금오위대장군이 되었고, 무삼사, [[무승사]], 내준신, 주흥 등과 함께 권력을 장악했고 뇌물을 받고 법을 어기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모함해 함부로 죽였다. 688년에는 낭야왕 이충(李沖)이 반란을 일으켰다. 측천무후는 구신적을 청평도 대총관으로 임명하였는데, 이충의 반란이 평정되자, 구신적은 박주에 당도하여 관리들을 모두 죽였고, 좌금오위대장군(左金吾衛大將軍)이 되었다. 이후 691년에 어떤 사람이 구신적, 내자순, 왕홍의 등이 모반을 했다고 무고당하면서 주살되었다. 이후 705년에는 구신적의 자손들을 모두 구금하였다. [[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69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