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의 대학]][[분류:일본의 대학군]][[분류:일본의 구제교육기관]][[분류:상과대학]] [include(틀:구 3상대)] [목차] == 개요 == || [[파일:375px-Tokyo_College_of_Commerce,1921.jpg|width=100%]] || [[파일:330px-Kobe_University_of_Commerce_(Antecedent_of_Kobe_University).jpg|width=100%]] || [[파일:330px-Osaka_University_of_Commerce,1928.jpg|width=100%]] || || '''도쿄상과대학 정문''' || '''고베상업대학 정문''' || '''오사카상과대학 정문''' || '''구 3상대([ruby(旧三商大, ruby=きゅうさんしょうだい)])'''는 [[고등상업학교]]에서 [[대학령]]에 의한 승격된 [[구제대학|구제]](旧制) [[상과대학]][* 또는 상업대학] 세 곳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 '''도쿄상과대학'''([ruby(東京商科大学, ruby=とうきょうしょうかだいがく)]) 약칭은 도쿄상대(東京商大), 현 [[히토츠바시대학]] * '''고베상업대학'''([ruby(神戸商業大学, ruby=こうべしょうぎょうだいがく)]) 약칭은 고베상대(神戸商大), 현 [[고베대학]] * '''오사카상과대학'''([ruby(大阪商科大学, ruby=おおさかしょうかだいがく)]) 약칭은 오사카상대(大阪商大), 현 [[오사카공립대학]] 일본의 구 학제에서 상대(商大)[* 상과대학 및 상업대학]은 위 3곳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3상대라 부른다. == 상호 관계 == || [[파일:1610534244.jpg|width=50%]][[파일:20190818_2213206.jpg|width=50%]] || || {{{#f5f5f5 '''세 대학 체육대회'''}}} || || 세 대학 체육대회(三大学体育大会) - 일명 ''''3상전''''(三商戰). [br]체육계 서클간 대항 경기는 1907년부터 시작했으나 1961년부터 공식적으로 대회로 규정됨에 따라 해마다 체육대회를 열고 있다. 2018년 기준 제 58회 3상전이 고베대학에서 개최되었다. || || [[파일:캡처 3상대.jpg|width=50%]][[파일:구3상대 합동 친목회.jpg|width=50%]] || || {{{#f5f5f5 '''세 대학 학생 연구 토론회'''}}} || || 세 대학 학생 연구 토론회(三大学学生研究討論会) - 일명 ''''3상 세미나''''(三商ゼミ). [br]각 대학 경영학부(상학부)·경제학부·법학부의 학술 연구 토론회를 말한다. 1951년 12월 처음 열렸고 2018년에 고베대학에서 68회를 맞이했다. || || [[파일:1 구3상대 합동 친목회.png|width=50%]][[파일:1_20171013_192520.jpg|width=50%]] || || {{{#f5f5f5 '''구 3상대 합동 친목회'''}}} || || 구 3상대 합동 친목회(旧三商大合同懇親会) [br]동창회 레벨에서도 세 학교간 교류회가 열리고 있다. || * '세 대학간 교류 협력에 관한 협정' - 2010년, 단순한 학생들 간의 교류 차원을 넘어 대학 간 교육 및 학술 상의 연계를 목적으로 체결됐다. == 역사 == || [[파일:qhm_logo.png|width=100%]] || || {{{#f5f5f5 '''히토츠바시대학'''}}} || || * 1875년 일본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인 상법강습소 설립[* 창립자 [[모리 아리노리]]][br] * 1884년 도쿄상업학교로 개칭[br] * 1902년 도쿄고등상업학교로 승격[br] * 1920년 구제 '''도쿄상과대학'''(東京商科大學)으로 승격[br] * 1949년 신제 '''히토츠바시대학''' 개교 || ||[[파일:고베대학 본관.jpg|width=100%]] || || {{{#f5f5f5 '''고베대학'''}}} || || * 1902년 고베고등상업학교 설립[* 상법, 상업강습소가 전신인 두 학교와 다르게 처음부터 고등상업학교로 설립되었다.] * 1929년 구제 '''고베상업대학'''(神戶商業大學)으로 승격 * 1949년 신제 '''고베대학''' 개교 || ||[[파일:오사카시립대학 1호관.jpg|width=100%]] || || {{{#f5f5f5 '''오사카공립대학'''}}} || || * 1880년 오사카상업강습소 설립[* 창립자 대표 [[고다이 도모아쓰]]] * 1889년 시립오사카상업학교로 개칭 * 1901년 시립오사카고등상업학교 설립[* '승격'이 아닌 '설립'인 이유는 문부성이 지정한 위 두 학교와 다르게 관립 고등상업학교 유치에 실패한 오사카시가 독자적으로 설립했기 때문이다.] * 1928년 구제 '''오사카상과대학'''(大阪商科大學)으로 승격 * 1949년 신제 '''오사카시립대학''' 개교 * 2022년 '''오사카공립대학''' 개교[* [[오사카부립대학]]과 통합] || 상과대학 승격 이전인 [[고등상업학교]] 시절부터 위 세 고등상업학교는 3년제였던 다른 모든 고등상업학교들과 차별화된 4년의 수학연한을 갖추고 있었다.[* [[나가사키대학|나가사키고등상업학교]](본과 3년, 해외무역과 1년), [[야마구치대학|야마구치고등상업학교]](본과 3년, 지나무역과 1년)까지 포함한 총 5개교] 이러한 수업 연한의 차이는 이후 세 학교가 구제 상과대학으로 승격하게 되는 최대 근거가 되었다. 특히 도쿄고등상업학교는 4년제 수업 연한 이후 2년제의 전공과를 설치하여 도합 6년의 수업 연한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구제고교 3년 + 제국대학 3년에 필적한다고 간주되어 해당 전공과 졸업생은 학사 칭호를 수여받았던 유일한 고등상업학교였다.[* 다만 도쿄고상•고베고상이 개교시부터 4년제(예과 1년+본과 3년)였던 것과 달리 오사카시립고상을 포함해 이후에 설립된 [[고등상업학교]]들은 모두 3년제로, 도쿄•고베 대비 상대적으로 짧은 수업 연한 때문에 졸업 후 학사에 준하는 학위를 취득할 수 있던 도쿄고등상업학교 전공부(2년제) 진학이 어려웠다. 때문에 수업연한 연장이 숙원이었는데, [[야마구치대학|야마구치고상]]이 1915년 문부성령 제17호에 의거 지나무역강습과(1918년 지나무역과로 개칭)를, [[나가사키대학|나가사키고상]]이 1917년 문부성령 제6호에 의거 해외무역과를, 오사카시립고상이 1920년 에 바로 본과(3년) 수료 후 교육을 담당하는 연구과(1년)를 설치해 4년제로 승격을 먼저 달성한 후 대학승격운동을 개시하였다.[br][[파일:8C0ACA61-049F-4736-935B-AC094104AD9E.png]] [[https://ja.m.wikipedia.org/wiki/%E5%A4%A7%E9%98%AA%E5%95%86%E7%A7%91%E5%A4%A7%E5%AD%A6_(%E6%97%A7%E5%88%B6)|참조.]]] 3상대의 방향성은 각기 달랐는데 히토츠바시대학의 전신인 도쿄상업대학은 [[경제학]]을 기반에 둔 기초 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을, 고베대학의 전신인 고베상업대학은 일본 최초로 [[경영학과]]를 설치하는 등의 실무 교육 중심으로, 오사카시립대학의 전신 오사카상과대학은 [[마르크스경제학]]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출처: 三商大 東京・大阪・神戸――日本のビジネス教育の源流 -橘木 俊詔-(著)] 이하 부분 발췌 번역 * '''도쿄상과대학'''의 전신, 도쿄고등상업학교 시절에는 대학 승격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상업의 학문화의 활로를 상학 근처에 있는 경제학이나 법학, 정치학, 그리고 역사·철학·사상·문학 등을 연구·교육함으로써 찾아내려고 했다.[* 저자는 이를 제국대학과의 격차를 줄이려고 애쓰는 것이라 평했다.] 1920년에 도쿄상과대학으로 승격해 상사, 은행, 보험, 해운 등에서 일하는 고급 비즈니스맨의 육성을 목표로 했다. 도쿄상과대학의 경제학에는 마르크스 학파, 황도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흔히 말하는 근대 경제학이 주류였다. 유럽의 [[고전학파]],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이 학문의 중심이었고 독일 역사학파의 영향을 받아 역사적인 연구도 활발했다. 게다가 경제를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전통도 있었다. 즉, 경제사상과는 구별을 분명히 하는 [[경제학]]이 도쿄상과대학의 특징이었으며 전후 히토츠바시대학에서도 이 특징은 계속되었다. * '''고베상업대학'''의 전신, 고베고등상업학교에서는 법학, 경제학, 혹은 동경고상(東京高商)의 철학, 역사학 같은 학문은 최소화하고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터득해야 할 실천적 과목들을 가르치겠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이후 1929년 대학으로 승격되면서 고베상업대학(神戶商業大學)이 되었다. 이때 먼저 구제대학으로 지정된 두 상과대학과 다르게 '''상업대학'''이라 명명했는데 이는 도쿄, 오사카와의 차이를 강조하고 실무, 실업을 중시하기 위해 이러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고베상업대학은 [[경영학]] 과목에 충실을 기했기에 오늘날 일본 경영학에서 고베대학의 높은 위치를 만들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중간에 [[오사카제국대학]]에서 합병교섭이 있었지만 고베상업대학으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오사카상과대학'''은 위 두 상대와 달리 [[마르크스경제학]]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었다. 본래 상인의 도시인 오사카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모순되는 두 사상이 공존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원래 맑시즘은 자본주의의 성숙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오사카는 좋은 여건을 갖췄다고 평가될 수 있겠다.] 게다가 오사카상과대학은 다른 두 상대에 비해[* 도쿄상과대학은 상법강습소 시절부터 미국인 윌리엄 휘트니를 교장으로 초빙해 실무 상학 위주의 교육을 했고, 상과대학 승격운동 당시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로 포괄하려는 문부성의 시도에 대항해 ''신유사건''을 발생시키는 등 격렬히 저항함과 동시에 도쿄제대와 차별화된 별개의 대학이 되기 위해 더욱 더 실무 교육을 강조한 바 있다([[https://kangaeruhito.jp/article/12142|참조]]). 고베상대와 기타 [[고등상업학교]]들 역시 부기부터 시작해서 실무 교육에 천착하였다.] 제국대학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제국대학]]의 경제학 강좌들은 대체로 [[마르크스경제학]]에[* [[파일:koeconrespection.png]]] 경도되어있었는데,[* [[도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도쿄제대의 분교격이었던 모든 제국대학이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오사카 출신으로(...) 대만에서 소학교, [[구제중학교]] 그리고 나고야의 [[구제고등학교|제8고등학교]]를 거쳐 1924년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호세이대학]] 교수를 지내다 1927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재정학강좌 담당교수로 부임한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교수 역시 학내 맑시즘 조직의 지도교수로서 법문학부에서 [[리강국]], [[박문규]], [[최용달]], [[박치우]], [[신남철]],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553788&cid=46645&categoryId=46645|김태준]], [[박치우]] 등의 쟁쟁한 공산주의자들을 제자를 길러냈고 공산주의자 도피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당해 징역 3년을 살았다. [[http://www.hangyo.com/mobile/article.html?no=89838|출처]] 참조. 재정학강좌 담당교수인 미야케와 함께 경제연구회 지도교수를 맡았던 스즈키 경제학강좌 담당교수 역시 강의를 온통 마르크스 이론의 소개와 해설로 메웠다고 한다. 김용직,「김태준 평전」, 일지사, 2007. 97쪽.] [[교토제국대학]]에서 옮겨온 일단의 학자들이 오사카상과대학의 교수단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1933년 [[교토제국대학]]의 타키가와 사건 참조.] 특히 초대 학장이 된 '카와다 시로'는 학칙을 개정해 국가의 규제에서 벗어나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도록 한것, 그는 마르크스 신봉자가 아니었으나 그에 가까운 교원들을 새로이 채용한 것 등이 있었다. 그래서 전쟁 당시 오사카상과대학에서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며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한 것이 [[오사카시립대학#s-3|오사카상대사건]]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주류 경제학이 정착한 현재, 오사카상과대학의 후신인 [[오사카시립대학]]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 색체가 거의 사라졌다] == 평가 == * 3상대 설립 이후 '천하의 3상대'(天下の三商大)라 불리며 세 학교는 명실상부한 상학의 전당으로 당시 [[도쿄제국대학]]을 필두로 한 [[제국대학|7제대]](七帝大)와 경쟁했다고 한다.[* 출처: 고베대학 대학원 경영학연구과] * 실제로 고베상업대학이 승격된 1929년에 [[오사카제국대학]]과[* 1931년 설립] [[나고야제국대학]]은[* 1939년 설립] 존재하지 않았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제국대학에서 상경계열 학부를 가진 제국대학은 도쿄제국대학과 교토제국대학 뿐이었다.[* [[도호쿠대학|도호쿠제국대학]][* 1907년 개교, 1922년 8월 법문학부 설치, 1923년 법문학부 제1회 신입생 입학] [[규슈대학|규슈제국대학]][* 1911년 개교, 1924년 9월 법문학부 설치, 1925년 법문학부 제1회 신입생 입학] [[경성제국대학]][* 1924년 예과 개교, 1926년 법문학부 설치] [[다이호쿠제국대학|다이호쿠제국대학]][* 1928년 개교 및 문정학부 설치]은 문과계열이라고는 1920년대에 들어서야 설치된 '법문학부(法文學部)'[* [[다이호쿠제국대학]]의 경우는 법학과가 없이 '문정학부(文政學部)'였다.] 단 하나에 불과했다. 이외에 [[홋카이도대학|홋카이도제국대학]], [[오사카대학|오사카제국대학]], [[나고야대학|나고야제국대학]]은 종전 때까지 법문학부는 커녕 문과 계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즉, 현재 구제국대학의 문과는 전후 신제대학이 되면서 [[구제고등학교]]를 흡수하거나[* 제국대학에 흡수된 [[구제고등학교]] 고등과(대학예과)는 주로 교양학부가 되었다. [[홋카이도대학]]은 [[구제고등학교#s-3.3|홋카이도제대 예과]]를 교양학부로 개편하고 법문학부를 신규설치했고, [[오사카대학|오사카대]]도 구제고등학교인 [[구제고등학교#s-3.4|오사카고등학교]]와 [[구제고등학교#s-3.4|나니와고등학교]]를 흡수해 교양학부로 삼고 법문학부를 신설했다. [[나고야대학|나고야대]]는 [[구제고등학교#s-3.2|제8고등학교]]를 교양부로 개편했다. 기타 문과 학부가 존재하고 있었던 제국대학들도 마찬가지.] [[구제대학|관공립대학]]을 병합하면서[* [[나고야대학|나고야대]]는 1948년 나고야경제전문학교와 오카자키고등사범학교를 흡수해 법경학부와 교육학부의 모체로 삼았고, [[오사카대학|오사카대]]는 2007년 오사카외국어대학을 외국어문학부로 흡수함.]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비교적 역사가 짧다.] * 똑같은 신입사원도 학력에 따라 봉급을 차별하던 시대 기준으로 보면 '''구3상대'''는 '''[[관립대학|상과대학]]''' 승격 후 [[제국대학]]과 동등 내지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취급받았고, [[게이오기주쿠대학]]•[[와세다대학]] 등 최고 [[구제대학|사립대학]]에 비해 확실히 상위 클라스로 대접받았다. > 전후 도쿄대학 문학부 사무장을 지낸 尾崎盛光의 명저『日本就職史』(1967年刊)에 따르면 메이지 말기의 관립/사립학교 문과 졸업생의 초봉 격차를 "제국대학 100엔에 대해서 히토츠바시(당시 도쿄고등상업학교) 60~70엔, 게이오 50~60엔, 와세다는 30~40엔과 동등한 것"으로 본다. 기업이 사원을 채용할 경우 출신 학교마다 초임 봉급의 차등을 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사립대학이 정식 [[구제대학]]으로 승격한 [[다이쇼 시대]] 이후에도 엄연한 급여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大戦景気"시대의 일본우선(日本郵船)에서는 제국대학, 상과대학(히토츠바시) 졸업생의 초봉은 80엔, 와세다·게이오와 지방[[고등상업학교]] 60~65엔, [[소케이]]를 제외한 사립대학이 50~55엔이었다(寿木孝哉,『就職戦術』). 대체로 제국대학-[[관립대학|관립상대]]-[[소케이]]-기타사립대학이라는 순서로 평가받으면서 신입 사원은 같은 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차별 대우를 감수해야 했다. >-[[https://kangaeruhito.jp/article/8635|反東大の思想史]] * 전쟁 전 [[미쓰이 그룹|미츠이]], [[스미토모 그룹|스미토모]], [[미쓰비시 그룹|미츠비시]] 등 재벌계 대기업의 초봉은 [[제국대학]]과 '''상대'''는 80엔, 고등상업학교나 [[소케이]]는 70엔, 그외 사립대학은 60엔이 평균이었다고 한다.[* 출처: 早稲田と慶応 名門私大の栄光と影 - 橘木 俊詔 (著) ] * [[제국대학]]은 [[고등문관시험|고급관료]]와 고등교원[* [[구제고등학교]], [[구제전문학교]], [[구제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의 교원] 양성을 목표로 했기에[* [[일본 제국]] 정부는 1918년 대학령 개정을 통해 제국대학 이외의 대학 설립을 허가하기 시작한 후에도 제국대학 출신들에게 배타적인 특혜를 줬다. 법학부 졸업자에게는 [[고등문관시험]]의 1차 시험을 면제하여 고급관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고, 문학부 졸업자에게는 무시험검정에 의해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어느 곳에서든 교원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줬다. 민간기업에서도 제국대학 출신자에게는 동일한 노동을 하는 사립대학 출신자보다 봉급을 더 주는 것이 관례였다. 국가는 제국대학 출신자에게 각종 특혜를 주고, 제국대학 출신자는 국가의 충직한 신민(臣民)이 되는 완벽한 공생관계였다. 신동아 2005년 12월호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5035|경성제대 입시 대소동]] 발췌.] 사기업 취직자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민간부문에서 구3상대 출신은 사실상 최상의 학벌을 가진 최고의 상학 전문가 대우를 받았다. 구3상대가 아니라 심지어 [[구제전문학교]]급인 [[고등상업학교]] 졸업자들 역시 재벌 기업들에서 우대하면서 모셔갈 정도였다고 한다. * 기업과 경영, 시장에 대해 연구하는 [[상과대학]]인 만큼 3상대는 [[임원]] 배출에 있어서도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부나이다이가쿠(危ない大学; 위험한 대학)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상장기업임원 출세예상지수[* 산출방법 : 각 대학 출신 임원수를 그 대학의 기업 취직 학생수로 나누고, [[와세다대학]]을 100.0으로 잡고 산출.[br]각 대학의 기업 취직 학생수는, 각 학부의 학생정원에 대해, 이하의 비율을 조정함.[br]법, 정, 경 등의 사회과학계열의 정원의 100%[br]공학부, 약학부, 농학부 등의 이과계학부는 정원의 70%[br]인문과학계열 학부와, 이학부는 정원의 50%[br]의학, 치학, 교육학부(교원육성계열)에 대해서는 정원의 0%[br]출처: 危ない大学―大学選びのための最新学校経営事情 - 中村 忠一 (著)]에 따르면 전 대학 중 히토츠바시대학은 230.5점으로 3위, 고베대학은 135.3점으로 5위, 오사카시립대학은 108.2점으로 6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지수를 계산할 때 기준이 된 와세다대학은 100.0점으로 8위를 기록했다. 1위는 360점인 [[도쿄대학]], 2위는 264점인 [[교토대학]], 4위는 167.4점인 [[게이오기주쿠대학]]이 차지했다.] 또한 [[https://tanuki-no-suji.at.webry.info/202010/article_2.html|배출 임원 수]]로 따져도 국공립대학 중[* 사립대학은 졸업생이 너무 많아서 단순 수치 비교가 안되기 때문] 히토츠바시대학은 3위, 고베대학은 5위, 오사카공립대학은[* 오사카시립대학 오사카부립대학 합산] 9위를 차지한다.[* 참고로 제국대학인 [[홋카이도대학]]이 11위다.] * 주요 대기업의[* [[미츠비시 UFJ 은행|3대]] [[미쓰이스미토모은행|메가]][[미즈호 은행|뱅크]], [[종합상사]], 정부계열 금융기관 등] [[중간관리직]] 배출에 있어서도 탁월한 면모를 보여준다.[* 국공립대학 중 히토츠바시 2위, 고베 4위, 오사카시립 10위[[http://2chreport.net/com_91.htm|링크]]] * 금융권 취업에 강하다. 2016, 2017년 금융권 14개 대기업 취직자 수가 국공립대학 중 상위권이다. [* 고베 2위(271명), 히토쓰바시 3위(269명), 오사카공립 5위(191명)[br][br][[파일:일본 주요대학 금융권 취직자 수.jpg]]] * 상경계 교원들을 많이 배출해 낸 대학들이다.[* 외국대학 출신을 제외하면 히토츠바시대학 3위, 고베대학 4위, 오사카시립대학 9위. [[파일:DC109F48-E0F8-4366-83DF-BADCDA593E57.jpg]] [[https://rihe.hiroshima-u.ac.jp/publications/wp/wp-content/uploads/2019/03/COE15.pdf|출처]]] * 2020년 기준 대기업 임원 또한 많이 배출하였다. * 세 대학 모두 법과대학원, 즉 [[로스쿨]]을 가지고 있으며 평균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는 대학들이다. [[https://www.agaroot.jp/shiho/column/law_school_ranking/|2023년 사법시험 합격률]]을 살펴보면 히토쓰바시대학은 3위, 고베대학은 7위, 오사카공립대학은 11위를 차지했다.[* 이외에 [[제국대학]], [[소케이]], [[주오대학]], [[치바대학]], [[도쿄도립대학]] 등이 높은 합격률을 기록하고 있다.[[https://www.agaroot.jp/shiho/column/law_school_ranking/|출처]]] == 기타 == ||[youtube(gzxL4_6yF4s, width=500, height=300)] || || '''구글 어스로 본 구3상대의 캠퍼스''' || * 현재 히토쓰바시대학을 제외한 두 대학은 의학부와 이공계학부를 모두 가진 종합대학이 되었다.[* 그래도 히토쓰바시대학은 [[4대학연합]]을 만들어 단과대학의 한계를 넘으려 노력하고 있다.] * 세 대학 모두 [[제국대학]]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대학이다. 특히 히토쓰바시대학이 실력과 인지도의 괴리가 크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초명문대학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이름만 듣고 사립대학인 줄 안다. * 국제화가 비교적 덜 된 대학들이다. 실제로 세 학교 모두 [[슈퍼글로벌대학]]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히토쓰바시대학은 최근 열심히 국제화에 힘쓰고 있지만 다른 두 곳은 아직 갈 길이 멀다. *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3대고상(三大高商)'''도 존재하는데 각각 현재의 [[나가사키대학]], [[오타루상과대학]], [[요코하마국립대학]]의 경제학부, 경영학부의 뿌리가 된 [[고등상업학교]]를 뜻한다.[* 출처: 三商大 東京・大阪・神戸――日本のビジネス教育の源流 -橘木 俊詔-(著)] * 나가사키고등상업학교는 [[아시아]]에 주목해, 해외실무에 관련된 교육을 추진했다. * 오타루고등상업학교는 고베고등상업학교의 교육방침을 모방해 실무교육에 충실을 기했다. * 요코하마고등상업학교는 [[간토]] 지방에서 도쿄상대([[히토츠바시대학]]) 이외의 관립고등상업기관으로써 설립되었다. 요코하마고상은 연구지도에 중심을 맞춰 상업론, 상품학, 상업영어에 더해 금융론, 재정학 등 경제학계 과목도 챙겨두는 등 나가사키와 오타루와는 다른 학풍을 가졌다. == 관련 링크 == * [[구제대학]] * [[제국대학]] * [[관립대학]] * [[고등상업학교]] * [[상과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