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한수정후)] ||<-2> '''명 추존 왕작 [br] {{{+1 顯忠王 | 현충왕}}}''' || || '''시호''' ||현충왕(顯忠王) || || '''성씨''' ||관(關) || || '''휘''' ||흥(興) || || '''자''' ||안국(安國) || || '''부황''' ||[[관우|관성대제]](關聖大帝) || || '''모후''' ||[[영황후]](英皇后) || || '''자녀''' ||아들 [[관통(삼국지)|관통]], [[관이]] || || '''생몰''' ||? ~ 3세기 경 || [목차] [clearfix]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촉나라]]의 인물. 자는 안국(安國). [[관우]]의 차남, [[관통(삼국지)#s-1|관통]]과 [[관이]]의 아버지. 1569년 [[만력제]]에 의해 현충왕(顯忠王)으로 추존되었다. == 정사 == 정사 관우전에 약간 소개되는데, 어려서부터 좋은 평판이 있었고 [[제갈량]]이 높이 평가했으며 형 [[관평]]이 아버지와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한수정후 작위를 계승하고 약관의 나이에 시중, 중감군이 되었지만[* 촉에서 시중과 중감군의 작위를 만든 것은 221년이다. 역산하면 관흥의 생년은 202년이다.]몇 년 후 죽었다고 나온다. 그의 적자 [[관통(삼국지)#s-1|관통]]이 그의 작위를 잇고 후사를 이었지만 또 요절하고 관통이 후사가 없어서 관흥의 서자 [[관이]]가 이를 이어 받았다. 그런데 [[왕은]]의 <촉기>에 의하면 훗날 [[방덕]]의 아들 [[방회]]가 [[종회]], [[등애]]와 함께 [[촉한|촉나라]] 정벌에 참여해서, 촉이 무너질 때 관이와 관씨 일가를 찾아내 멸족시켜 버렸다고 하는데... [[신당서]] 재상세계표에 의하면 관흥의 후손이 [[기주]] 신도군[* 위나라의 영토였으며 당시 명칭은 안평군이었다. 사마염이 진을 세운 이후 장락군으로 개명되었다가 수나라 때 신도군으로 개명된다. 지금의 허베이성 헝수이시 지저우구이다.]에 세거했으며, 당 덕종 때 재상을 지낸 관파(關播)는 관흥의 후손이라 한다.[* [[2001년]] 관우의 67대손 관중진이 발견되었는데, [[족보]]에 따르면 그는 관우의 장남 관평의 후손이다. 이 족보에서는 관평의 아내가 [[조운]]의 딸 조씨, 관평의 아들이 건안 18년(서기 213년)에 태어난 관월(關樾)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방회가 멸한 것은 관흥의 자손으로, 오나라 형주에 살던 관평의 자손은 멸하지 못했던 것이다.] 연의의 영향으로 [[용장]]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나, [[제갈량]]과 함께 입촉한 사람들은 거의 문관들이다. 그래서 아마 무(武)보다 문(文)쪽으로 재능이 있지않았나 추측된다. 또한 관흥이 맡았던 시중은 황제를 가까이 모시고 궁전을 드나들며 물음에 대답하는 일종의 고문관이었다. 흔히 공신의 자제 대신이 맡았던 작위이기도 하다. 무관 계열이 아닌 문관 계열의 작위인 것. [[http://blog.naver.com/OpenMagazineViewer.nhn?blogId=neight_nesia&logNo=130181484999&categoryNo=7&parentCategoryNo=0&viewDate=|다만 그가 맡은 중감군의 경우 후임이 등지, 강유라는 점에서 군사적인 재능이 추측되기도 한다.]] 아무튼 재능을 펴보기도 전에 사망했다. == 연의 == [[삼국지연의]]에서는 [[나관중]]이 훌륭하게 창작으로 승화시켜, 연의만의 거의 오리지널 캐릭터로 탄생시킨 것이 흔히 알려진 관흥의 모습이다. 연의에서의 관흥의 활약은 남정, 북벌에서 셀 수도 없이 많다. 초장에 [[장포#s-1|장포]]와의 무술 대결에서 보이는 말도 안 되는 활솜씨 등은 신 캐릭터의 임팩트 있는 등장을 위해 늘상 나오는 서비스 장면. 이어 장포와의 대결 과정에서 도가 지나친 나머지 창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되었고, 이를 본 [[유비]]가 이들의 아버지 얘기를 하며 대판 꾸짖자 본인들의 행태를 반성하였고, 이어 유비가 누가 더 나이가 많냐고 묻자 장포는 본인이 한 살 많다고 하였고, 이에 유비는 장포를 형으로, 관흥을 동생으로 임명하며 [[의형제]]를 맺게 하였고, 장포와 관흥은 우애를 다지며 충성을 맹세하기로 하였다. [[무안국]] 같은 캐릭도 첫 등장 시에는 항상 임팩트가 넘친다. 그리고 사망은 알려진 대로 오장원 정벌 준비 즈음 병사(病死)로 처리하였다. 참고로 장포는 관흥이 숨지기 몇년 전에 전투 도중 머리를 다친 후유증을 앓다가 얼마 안 가 사망하였다. 다만, 관흥이 어떠한 경위로 죽었는지는 정사에도 안 나오는 기록이므로 사실 병사도 창작이다. 다만, [[영웅]]답게 죽는 것을 중요시한 [[나관중]]이 의외로 정사에 가깝게 창작한 몇 안 되는 케이스. == 기타 == 사실 사서의 기록이 짧막하게 있을 뿐 실제로 별다른 활약이 없어서 그런지, [[삼국지연의]] 이전의 삼국지 문화에는 '''이런 인물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듣보잡]]이었으며, '''아예 존재 자체가 무시되었다.''' 이복형인 [[관평]]은 그래도 여기저기 이름을 많이 내보였지만, 관흥은 그렇지 못했다. [[관우]]의 [[삼남]]이라는 [[관색]]이 창작된 것도 저런 사정 때문인 듯 하다. 사람들이 관흥의 존재를 까먹기도 했고, 무엇보다 [[방회#s-2]] 때문에 관우의 대가 끊어졌기 때문에 관우의 혈통을 잇고 복수를 할 관색이라는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수호전]]의 108두령 중 한 명인 대도 [[관승]]은 관우의 후손이라는 설정이 있지만, 당연히 창작이다. == 미디어 믹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관흥/기타 창작물)] == 둘러보기 == [include(틀:관우 가문)] [include(틀:촉서)] [각주] [[분류:몰년 미상]][[분류:촉한의 인물]][[분류:추존된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