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관우)] [목차] {{{+1 關王廟}}} == 개요 == 관왕묘(關王廟)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중국]] [[촉한]]의 장수 관왕, 즉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관우는 현재까지도 [[중국인]]들의 숭배 대상이 되고 있다. 무안왕묘를 줄여 무묘라고도 불린다. [[뤄양시]] (낙양)에 있는 [[관림]]을 기반으로 [[명나라]] 대에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건립되었다. 중국에서는 관림과 [[하이저우 관제묘]], 한국에서는 [[동관왕묘]]가 대표적이다. == 명칭 == 관왕묘(關王廟), 관림묘(關林廟), 관제묘(關帝廟), 무묘(武廟), 무성묘(武聖廟), 문형묘(文衡廟), 행천궁(行天宮), 협천궁(協天宮), 천존묘(天尊廟), 은주공묘(恩主公廟) 등의 명칭으로 불리며, 주로 한국은 관왕묘, 중일은 관제묘가 쓰이고 대만은 행천궁이 주로 쓰인다. == 역사 == 중국인들은 예전부터 관우를 존경하여 관공(關公), 관노야(關老爺)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일부러 공식석상에서만 그렇게 부르는게 아니라 누구든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부른 것이다. [[명나라]] 시절 쓰여진 [[수호전]]에서 [[노지심]]이 100근짜리 수마선장을 주문할때 대장장이가 이를 만류하며 "관왕도 82근짜리를 썼지요"라며 극구반대해 결국 62근짜리로 맞춘다.] [[원나라]] 시대 초기 판본인 삼국지통속연의에서는 아예 [[도원결의]] 때부터 [[유비]]는 현덕, 관우는 관공, [[장비]]는 그냥 이름으로 불린다. 이런식의 삼형제의 호칭은 황제로 즉위한 유비의 호칭이 선주로 바뀌는 것만 제외하면 세 명이 죽을 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여러 시대를 거치며 관우는 급이 승격된다. * [[북송]] 상부(祥符)[* [[송진종]]의 연호 대중상부(大中祥符), [[1008년]]~[[1016년]]] 연간에 칙령으로 관성묘(關聖廟)를 수축했다. * [[송철종]] 소성(紹聖) 3년([[1096년]])에 옥천사(玉泉祠)의 현판을 하사하면서 현열왕(顯烈王)이라 했다. * [[송휘종]] 숭녕(崇寧) 원년([[1102년]])에 충혜공(忠惠公)으로 추봉하고, 대관(大觀) 2년([[1108년]])에 무안왕(武安王)으로 가봉(加封)했다. * 송휘종 선화(宣和) 5년([[1123년]])에 칙령으로 의용무안왕(義勇武安王)으로 봉하여 무성왕묘(武成王廟)에 종사(從祀)하게 했다. * [[남송]] [[송고종]] 건염(建炎) 3년([[1129년]])에 장목의용왕(壯繆義勇王)이라 가봉하였고, [[송효종]] 순희(淳熙) 3년([[1176년]])에 영제왕(英濟王)으로 가봉했다. * [[원문종]] 천력(天曆) 연간([[1328년]] ~ [[1329년]])에 현령(顯靈)이라고 가호(加號)하였다. * [[명나라]] [[홍무제]] 초년에 본래의 봉호대로 전장군수정후(前將軍壽亭侯)라 하였고, 20년에 순천부(順天府) 정양문(正陽門) 밖에 묘(廟)를 세웠다. * [[정덕제]] 4년([[1509년]])에 유도묘(留都廟)의 현판을 충무(忠武)라 하사했다. * [[가정제]] 10년([[1531년]])에 한관제수정후(漢關帝壽亭侯) 라 하였다. * [[만력제]] 6년([[1578년]])에 협천호국충의대제(協天護国忠義關聖大帝) 42년([[1614년]])에 삼계복마대제 신위원진천존 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 神威遠震天尊關聖帝君)이라 했다. * [[천계제]] 4년([[1624년]])에 칙명으로 봉사(封祀)하는 축문에 '제([[帝]])'라고 하라 했다. * [[숭정제]] 3년([[1630년]])에 진원현응소명익한천존(眞元顯應昭明翼漢天尊)라 했다. * [[순치제]] 9년([[1652년]])에 칙령으로 충의신무관성대제(忠義神武關聖大帝)라 했다. * [[옹정제]] 3년([[1725년]])에 증조부는 광소공(光昭公)으로, 조부는 유창공(裕昌公)으로, 부친은 성충공(成忠公)으로 [[추존]].[* 이후 이들은 각각 왕으로 추봉된다.] * [[건륭제]] 원년([[1736년]])에 산서관부자(山西關夫子), 건륭 31년([[1767년]]) 존호 영우(靈佑) 추가. * [[가경제]] 18년([[1813년]])에 존호 인용(仁勇) 추가. * [[도광제]] 8년([[1828년]])에 충의신무영우인용위현관성대제(忠義神武靈佑仁勇威顯關聖大帝)라 했다.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북송]] : 현열왕(顯烈王), 충혜공(忠惠公), 무안왕(武安王), 의용무안왕(義勇武安王) * [[남송]] : 장목의용무안왕(壯繆義勇武安王), 장목의용무안영제왕(壯繆義勇武安英濟王) * [[원나라]] : 현령의용무안영제왕(顯靈義勇武安英濟王) * [[명나라]] 1 : 전장군수정후(前將軍壽亭侯) * [[명나라]] 2 : 협천호국충의관성대제(協天護国忠義關聖大帝) * [[명나라]] 3 :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神威遠震天尊關聖帝君) * [[명나라]] 4 : 진원현응소명익한천존(眞元顯應昭明翼漢天尊) * [[청나라]] 1 : 충의신무관성대제(忠義神武關聖大帝) * [[청나라]] 2 : 충의신무령우인용위현관성대제(忠義神武霊佑仁勇威顕關聖大帝)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관우, version=2180, paragraph=7.1.)] === 한국 === [[한국]]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관제묘가 들어서는 등 명나라 군이 관우 신앙을 전파했다. 이 당시에 관우가 전장에서 나타나 [[왜군]]을 베었다는 이야기도 꽤 나왔는데, 아무래도 [[언월도]] 들고 있는 명군을 보고 퍼진 듯하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군 유격 진운홍이 [[울산성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숭례문]] 밖에 머물렀는데 후원(後園) 위에 있던 오래된 집을 관왕묘로 바꾸고 소상(小像)을 설치하고자 [[조선]] 조정에 장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 건물이 남묘가 되었는데 [[1598년]]이었다. [[1599년]]에는 조선 조정에서도 공식적으로 관왕묘의 건립이 논의되었고 [[1601년]] 8월에 가서야 일단락되었다. [[임진록]]에서는 관우 신령이 [[명나라]] 황제 [[만력제]]의 꿈에 나타나 '만력제는 유비의 환생이고 조선의 [[선조(조선)|선조]]는 장비의 환생이니, 명나라가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라,'고 말한다. 전란 중 관우의 음덕(陰德)으로 [[임진왜란]]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믿음이 명나라 병사들과 같이 싸우던 조선의 병사들에게도 퍼져나가 민간신앙으로 정착한 듯 보인다. 그리고 이런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당시 만력제는 [[조선]]에 병력과 물자를 파격적으로 지원하여 심지어 '[[고려천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해당 문서 참조. 명군이 지은 대표적인 관왕묘가 임란 중 [[진린]]이 [[전남]] [[완도군]] [[고금면]] 묘당도에 세운 관왕묘인데, [[1666년]] [[현종(조선)|현종]] 때 관왕의 양 옆에 [[이순신]] 장군과 진린 장군의 초상을 모셨다. [[일제강점기]] 때 관왕묘는 폐허가 되었고, 이후 사당은 [[이순신]]의 사당으로 변해 관왕묘비만 남았다. 이외에도 명나라 수군과 조선 수군이 함께 싸운 남해안 일대에 [[이순신]]의 사당과 관묘 등이 들어섰다. [[숙종(조선)|숙종]]은 관왕묘에 자주가고 또 여러 글들도 내려주었다. 관왕묘에 지내는 제사를 정례화하여 국가 차원으로 관우를 섬겼고, 자신의 뜻대로 모든 지방의 관왕묘에 정기적으로 향축을 올리라 명령했다. 당시 좌의정 서종태는 숙종에게 '과도한 관우 신앙을 자제하라.'고 했으나 숙종은 듣지 않았다. 숙종은 [[1692년]]에 시 2수를 지은 후 어필 목판을 내려 동묘와 남묘에 걸어 두도록 했고, [[1701년]]에는 모든 지방의 관왕묘의 제식을 선무사(宣武祠)의 예에 따라 거행하라고 하였으며, 매년 [[경칩]]과 [[상강]]일에 향축하도록 하였다. 경칩과 상강은 조선의 공식제례법에서 [[병조판서]]를 포함하여 무관들이 둑기(纛旗)에 제사를 드리는 날이다. 관우를 그날에 제사지내도록 함은, 관우를 군신(軍神)으로서 조선의 제례에 집어넣으려는 의도일 공산이 크다. [[영조]]는 [[1746년]]에 '현령소덕왕묘(顯靈昭德王廟)'라는 현판을 써서 두 관왕묘에 걸도록 했다. [[정조(조선)|정조]]도 관왕묘에 관심을 기울여, [[1786년]]에 친히 관묘악장(關廟樂章)을 지어 처음으로 관왕묘의 행례(行禮)에 쓰게 하였다. [[1832년]]에는 [[순조]]가 남관왕묘에서 전작례(奠酌禮)를 행하였다. 이후 [[고종(대한제국)|고종]] 황제도 관우 신앙에 마음이 많이 기울었고 [[대한제국]] 선포 이후 관우를 현령소덕의열무안관제(顯靈昭德義烈武安關帝)로 추존했다. 고종대에는 북묘와 숭의묘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북묘는 [[1883년]](고종 20)에, 숭의묘는 [[1903년]]에 완성되었다. [[대한제국]]기인 [[1908년]]에는 칙령 제50호 향사이정에 관한 건(享祀釐正件)이 통과되어 관왕묘는 국가의 관리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존의 조선 예절은 너무 번잡하여 근본을 잃게 되었으니, 이른바 [[유신]](維新)을 지향하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제실(帝室)에 관계되지 않는 제사는 [[궁내부]]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 칙령의 요지였다. 이 칙령에 따라 숭의묘ㆍ동묘ㆍ남묘ㆍ북묘 및 지방 관왕묘의 제사가 폐지되었고, 숭의묘와 북묘는 국유로, 동묘, 남묘 및 지방 관왕묘는 해당 지방 관청으로 넘겨 백성들의 신앙에 따라 따로 관리하도록 했다. 이 시기 [[대한제국]]은 말이 [[제국]]이지 사실상 [[통감부]]의 지배를 받았으므로, 일제가 조선의 법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같이 폐지된 것 같다. 이후 서묘는 [[1909년]] 동묘에 합사(合祀)되었고, 북묘는 [[1910년]]에 헐어버려 [[흥인지문]] 밖에 위치한 동묘만 남게았다. 관우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무당]] [[진령군]]이 [[명성황후]]의 앞일을 몇 개 기똥차게 맞추자, 명성황후는 진령군을 거의 숭배자 수준으로 믿게 되어 황실의 돈을 엄청나게 탕진했다. 해방 전후 정치인 [[여운형]]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당시 [[명성황후]]가 아꼈던 무당 [[진령군]]이 여씨 집안을 '관우를 죽인 [[여몽]]과 같은 성씨 쓰는 집안'이라고 저주하는 일이 있었는데, 안 그래도 정계에서 멀어진 여씨 집안은 출세길이 아주 막혀버려 정치 문제에 신경이 곤두섰다. 이 때부터 여운형은 본격적으로 구습을 타파하는 일에 주력하였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여운형은 어려서부터 [[미신]]을 믿지 않는 성격이라, '성이 여씨인 사람이 관우 사당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미신이 있었는데도 예전부터 관우를 모시는 사당에 들락날락하기도 했다고 한다. [[을미사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무당 [[진령군]]도 죽었다고 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관우, version=2180, paragraph=7.2.1.)] === 일본 === 일본에도 관우숭배는 존재한다.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경우에는 주로 학문과 상업의 신으로 모시는데, 특징이 있다면 한중과는 다르게 관왕묘를 세우지 않고 신사에 직접 모신다는 것이다. 물론 관왕묘가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 [[화교]]가 세운 것이고 일본이 직접 세운 관왕묘는 없다시피하다. 다만, [[오키나와]]에는 독자적인 관왕묘인 천존묘(天尊廟)가 존재한다. == 관왕묘 == === 한국의 관왕묘 === * [[동관왕묘]] * 남관왕묘 * [[성제묘]] * 강진 관왕묘 * 안동 관왕묘 * 성주 관왕묘 * 남원 관왕묘 * [[남면(여수)|남면]] 관왕묘 === 중국의 관왕묘 === * [[하이저우 관제묘]][* 세계 최대의 관제묘. [[표준중국어]]로는 제저우 관제묘이지만 여긴 예외규칙이 적용되어 하이저우라고 읽힌다.] * 창핑 관제묘 * 뤄양 관림묘 ([[뤄양시]] 문서 참조) * 저우커우 관제묘 * 둥산 관제묘 * 궁청 무묘 === 일본의 관왕묘 === * 고베 관제묘 * 요코하마 관제묘 * 구메촌 천존묘 == 둘러보기 == [include(틀:중국 관련 문서)] [include(틀:대만 관련 문서)] == 외부 링크 ==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94414&cid=46650&categoryId=46650|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여기가 제일 자세하게 나와있다.]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64647&cid=40942&categoryId=31604|두산백과]]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82358&cid=41826&categoryId=41826|한국고전용어사전]] [[분류:조선/건축]][[분류:관우]][[분류:사당]][[분류:중국의 종교]][[분류:일본의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