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고현철}}}'''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고현철교수.png|width=100%]]}}} || ||<|2> '''출생''' ||[[1961년]] [[6월 10일]]||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現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2> '''사망''' ||[[2015년]] [[8월 17일]] (향년 54세)||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학교/부산캠퍼스|부산대학교 대학본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36575|#]]]|| || '''학력''' ||[[대동고등학교(부산)|대동고등학교]] {{{-2 (졸업)}}}[br][[부산대학교]] {{{-2 ([[국어국문학]] / [[학사]])}}}[br]부산대학교 대학원 {{{-2 ([[국어국문학]] / [[석사]][* 석사 학위 논문 : [[http://www.riss.kr/link?id=T2299563|1920년대 민요시 연구 : 병치구조를 중심으로]].]·[[박사]][* 박사 학위 논문 : [[http://www.riss.kr/link?id=T2285306|한국 현대시의 장르 패로디 연구 : 담론 양상을 중심으로]].])}}} || || '''약력'''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br][[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소장[br]부산작가회 이사[br]김준오시학상 운영위원회 부위원장[br](사)요산기념사업회 이사|| || '''가족''' ||아내 소경애[br]장녀 고한결[br]차녀 고한나|| [목차] [clearfix] == 개요 == >'''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냈던 시인, 국문학자. 2015년 8월 17일 오후 3시경 부산대학교 대학본관 4층에서 투신하여 사망하였다. == 생애 == 1961년 6월 10일 :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에서 태어났다. 1979년 : [[대동고등학교(부산)|부산 대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학부 기간 동안 부대문학회, 귀성문학회에서 꾸준히 시를 쓰고 학회장을 맡아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1984년 : [[부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1985년 :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2년 간 교편을 잡았다. 1986년 : 논문 『1920년대 민요시 연구 – 병치구조를 중심으로』로 국어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1988년 :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12월 28일, 학부 시절부터 함께 문학활동을 해 왔던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 출신 소경애 여사와 결혼했다. 1989년 : 부산 [[양정고등학교(부산)|양정고등학교]]에 부임하여 1996년까지 교편을 잡았다. 12월 24일, 장녀 고한결이 태어났다. 1990년 : 동인지 『지평』 10집에 6편의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렸다. 1991년 : [[부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비평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에 『인식의 변화와 균형잡기』를 쓰면서 본격적인 문학비평활동을 시작했다. 11월 2일, 차녀 고한나가 태어났다. 1995년 : 논문 『한국 현대시의 장르 패로디 연구 - 담론 양상을 중심으로』로 국어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현대문학의 양가성』(공저)을 발간했다. 2000년 : 한국시문학회 이사를 맡아 2007년 8월까지 역임했다. 2001년 : 한국문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했다. 『비평의 줏대와 잣대』(단독), 『동서시학의 만남과 고전시론의 현대적 이해』(공저)를 집필했다. 2003년 : 한국시학회 연구이사를 2007년까지 역임했고, 한국시문학회 총무이사를 2년간 맡았다. 한국문학회 섭외홍보이사를 2007년까지 역임했고, 한국비평문학회 편집위원으로 4년 간 활동했다. 『양왕용의 시와 시세계』(공저) 집필에 참여했다. 2004년 : 인문대학 발전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여 [[부산대학교]] 인문대학의 발전에 힘썼다. 2005년 :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로 임명되었다. 국제어문학회 지역이사를 2009년까지 역임했고, 국제비교한국학회 편집이사를 맡아 최근까지 활동했다. 한국시문학회 정보이사를 2년간 역임했다. 문예지 게재 우수문학작품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탈식민주의와 생태주의 시학』(단독)으로 독보적인 학문 체계를 구축했다. 2006년 : 우리말글교육학회 부회장으로 2년간 활동하였으며 부산작가회의 이사를 맡아 2년 간 지역문학과 문단의 활성화에 힘썼다. 한국문학 이론과 비평학회에서 지역이사를 2년 간 역임했다. 2007년 : 한국시학회 편집위원 및 총무이사, 국제비교한국학회 편집이사, 한국문학회 정보이사, 한국비평문학회 편집위원을 맡아 2년 간 역임했다. 2009년 11월까지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책임교수를 역임했다. 2010년 2월까지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장을 맡아 학과의 발전에 힘썼다. 2008년 : 영화연구소 아시아영화분과장을 맡아 1년 간 역임했다. 2009년 :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부소장을 2년 간 역임했다. 한국시학회와 한국문학회 이사를 2011년까지 맡았다. 『문학과 영화의 지평과 해석』(단독)을 집필하여 문학과 영화 간 관계성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2010년 :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2011년 : 어문연구학회 지역이사, 국어국문학회 지역이사를 2년 간 역임하고 한국시학회 편집위원 및 편집이사로 4년간 헌신했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소장으로 지금까지 역임하면서 학교 발전 뿐 아니라 영화의 질적 수준 제고에 기여했다. 김준오시학상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최근까지 김준오 시학의 계승과 발전에 힘썼다. 2013년 : 한국문학회 부회장과 국제비교한국학회 이사를 지금까지 역임했다. 『재현과 탈식민주의』(단독)를 통해 재현 체계의 문제를 현실과의 접점 관계 속에서 사유하는 한편, 시집 『평사리 송사리』를 발간, 시인으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2014년 : (사) 요산기념사업회 이사를 맡아 최근까지 부산 지역 문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요산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는 데 힘썼다. 2015년 : 최근까지 한국시학회 편집이사를 역임하여 한국 시문학의 질적 제고와 학문적 발전에 힘썼다. 2015년 8월 17일 오후 3시경:대학민주화와 사회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 [[고현철 교수 투신 사건]]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고현철 교수 투신 사건)] == 유작 == 고현철 교수가 생전에 남긴 시. === 평사리 송사리 === 마음도 머리도 아주 무게를 더할 때 혼자 찾은 고향 같은 하동 평사리. 내가 발 딛고 있는, 토지 서희는 어떻게 견뎌왔던가. 힘든 세월 비틀어진 나무를 본다. 바람 찬 겨울일수록 잔잔한 개울 흑싸리 홍싸리 화투패처럼 쉽사리 휩쓸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살얼음 얼음물 속 흙자갈 속을 자갈자갈 헤치며 떠다니는 평사리 송사리 같은 것. 내 어찌 여기서 끊겠는가. 그동안 어렵사리 길들여 온 지겨운 이 길을 흙먼지 날리는 이 길을 헤엄쳐 가지 않겠는가. === 悲歌 === 1 누워서 침 뱉기라는 말 그냥 있는 게 아니더군, 그것도 모르고 그 짓을 행하는 웃지 못할 할배가 있더군. 욕도 잘 써야 되는 법, 전영경이나 김수영 같으면 오죽 좋으랴만은, 그도 아니라면 욕쓰는 법도 배워야 되는 법. 2 박상 할배, 무얼 그리 튀기는가 튀겨도 제대로 튀겨야지, 튀 제 마음대로 박상 튀기듯이 부풀리기만 하면 되겠는가, 튀 이 소리는 무슨 소리 박상 터지는 소리 펑, 펑, 터뜨려 봐야 박상 뿐, 박상 할배, 속 빈 박상일 뿐. 3 시가 시시한 시대라 한다, 우스개로 시쓴다 하는 시시한 시인 웃기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시, 정말 슬픈 일이다. === 면도를 하며 === 털을 깎는다. 그동안 눌어붙은 일상의 때 구석구석 숨죽여온 안일 빳빳한 그 욕망 위에 한겹 두겹 비누칠한다. 한참 털을 깎다보면 비누 거품을 뿜으며, 유령 같은 허연 가면의 사내가 정신없이 나를 째려본다. 잇몸을 드러내어 웃는다. 흰 거품에 물려 잘리는 시커먼 털, 속을 숨기며 그럴 듯하게 보이며 지끔껏 나를 은밀히 길들여온 끈적함이여! 이 아침, 마주치는 투명한 살결을 위해 겨울 속의 그 사내를 한껏 노려보며 잔털의 밑바닥까지 아주 깎아버린다. === 길 === 그는 길 떠난다. 꿈꿀 공간이 없으면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결코 그는 빛을 가두지 않는다. 애벌레처럼 온몬을 밀어 나아갈 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인가, 그가 번데기 그 어둠을 벗고 은빛 날개 파르르 떨 때는. === 부활 === 눈을 닫습니다, 어머니. 얼마나 야위어가는 햇살입니까. 바람도 흐릿한 바람이 흘러갑니다. 떠도는 말들이 사람을 길들이고 있습니다. 어머니, 스스로 익어가는 것은 참 아름답습니다. 돌아보면, 속을 캐내지도 않은 말로 몇 번씩 부드러운 눈빛을 가두었습니까. 푸른 물결이나 다스리는 섬에 머무르겠습니다. 드문드문 잡풀의 깊은 우물에서 고도한 말들을 퍼올리겠습니다.어머니, 그것의 큰 뿌리까지 아주 만나서야 눈을 열겠습니다. 가슴 가득 햇빛 내비치는 물이 되어 제가 가는 어디에나 들어가겠습니다 == 저서 == 구체성의 비평(1997), 현대시의 쟁점과 시각(1998), 비평의 줏대와 잣대(2001), 탈식민주의와 생태주의 시학(2005), 문학과 영상예쑬)2006), 문학과 영화의 지평과 해석(2009), 영화 읽기와 문학(2010), 세계화와 지역성을 중심으로:부산국제영화제연구(2012), 고전의 힘(2013), 평사리 송사리(2013), 김준오 평론선집(2015), 고독한말들(2017,추모사업회) [[분류:대한민국의 문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한국 남성 작가]][[분류:서귀포시 출신 인물]][[분류:열사]][[분류:민주운동가]][[분류:1961년 출생]][[분류:2015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인물]][[분류:대동고등학교(부산) 출신]][[분류:부산대학교 출신]][[분류:부산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부산대학교 재직]][[분류:제주 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