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高維 (? ~ ?) == 개요 == 고려의 문관으로, [[탐라국|탐라]] 출신이다. == 생애 ==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에 따르면 [[자견왕|고자견]]의 아들로, 제주 고씨 족보에 따르면 태자 [[고말로]]의 아들이다.[* 고말로가 [[태조(고려)|태조]] 21년(938) 탐라국의 [[태자]]로서 입조한 것을 생각하면 고말로와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즉 족보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동문선]]』에 따르면 고유는 먼저 고려에서 실시한 [[빈공과]]에 합격하고, [[정종(고려 10대)|정종]] 11년(1045) 남성시에 수석으로 급제했으며, 정종 12년(1046) 을과에 3위로 급제해 탐라 출신 중에서는 처음으로 고려에서 관직을 얻는다. [[문종(고려)|문종]] 11년(1057) 우습유에 임명된다. 습유는 [[중서문하성]]의 종6품 관직으로 조선시대에는 [[사간원]]에 속하는 간관이다. 그런데 중서문하성에서 고유는 탐라 출신이므로 간관을 맡길 수는 없다고 해서 결국 다른 관직으로 옮긴다. 탐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관직을 옮겨야 했다는 점에서 고려 초 탐라 출신 인물의 지위, 나아가 탐라와 고려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언급되고는 한다. 비교해 볼만한 사례로, 40여년 전인 현종 7년(1016) [[북송]] 천주(泉州) 사람 구양징(歐陽徵)은 고려에 귀화한지 반년만에 우습유에 임명될 수 있었다. 문종 24년(1070)에는 동북로병마부사에 임명되고, 이듬해에는 비서소감으로 과거 시험관이 되기도 한다. 아들 [[고조기]]의 열전에 따르면 최종 관직은 정2품의 우복야까지 이른다. [[분류:고려의 인물]][[분류:탐라국의 인물]][[분류:제주 고씨]][[분류:제주특별자치도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