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癸甲日錄. [[조선]] [[선조(조선)|선조]] 16년, 1583년 6월 1일부터 이듬해 7월 30일까지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우성전]](禹性傳)[* 이 분의 처가 [[허균]]의 이복누나이다.]이 쓴 정치 일기. == 내용 == 우성전은 선조 1년, 1568년에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문인으로 동서분당 당시 [[동인(조선)|동인]]으로 분류되었고, [[이발(조선)|이발]](李潑)과 갈등이 생기자 우성전은 남산에 살아서 [[남인]], 이발은 북악(北岳)에 살아서 [[북인]]으로 분당되었다. 남인의 거두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도]]에서 [[의병]]인 추의군(秋義軍)을 모집해 소금과 식량을 조달해 [[난민]]을 구제하였다. 또한 [[강화도]]에 들어가 [[김천일]]과 합세해 전공을 세우고 강화도 주변 지역을 장악해 조선의 보급로가 남북으로 통하게 하였다. 이후 병선을 이끌어 적의 진격로를 차단했으며, [[권율]]이 [[독산성|독성산성]](禿城山城)에서 행주에 이르자 의병을 이끌고 지원하였다. [[용산구|용산]]의 왜군을 쳐서 양곡을 확보해 관군과 의군의 식량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퇴각하는 왜군을 쫓아 경상우도 [[의령군|의령]]까지 갔다가 지나친 [[과로]]로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우성전이 계갑일록을 쓸 때는 막 동서분당이 이루어지던 때로 분당의 원인과 그 당시의 정치 상황, 기타 조정의 동향에 대해 잘 알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일기의 맨 뒤에는 서애 [[류성룡]]이 쓴 시가 있다. == 류성룡의 시 == >고인은 오늘 이미 유명을 달리 했으니 / 故人今日隔幽明 >만사는 망연히 한 꿈속에 깨는구나 / 萬事茫然一夢驚 >난실에서 좋아한 것 취미 서로 같아서인데 / 蘭室已忻同臭味 >모진 바람 몰아쳐도 마음과 정 변치 않네 / 風終不改心情 >살아 생전 불우함이 어찌 운명이 아닐소냐 / 生前枘鑿寧非命 >죽은 뒤 서주됨은 평론이 다시 있을 테지 / 身後犀珠更有評 >한 권의 남긴 책자 못난 친구 보관하네 / 一卷遺編留損友 >무덤의 풀 다시 나와도 목이 메어 흐느끼네 / 雖經宿草亦呑聲 >눈이 높아 한 세상 사귄 사람 적었고 / 眼高一世從遊少 >당시의 인물들을 대단찮게 여겼다네 / 不歎當年大小兒 >말과 수레 거리 메워도 문 닫아 거절했고 / 車馬滿街常閉戶 >서릿발 같은 정직한 말 온 좌중이 놀라도다 / 風霜驚座聘危辭 >바닷 비에 기 젖으니 나라 위해 충성했고 / 旗沾海雨勤王苦 >영문의 밤에 별 지니 대명이 쓰러졌다 / 星殞營宵大命隳 >살아 남은 이 인생 가시덤불 속인데 / 未死餘生刑棘裏 >호소할 길 아득하여 슬퍼만 하네 / 籲天無路只傷悲 == 기타 == 원본과 별개로 [[대동야승]](大東野乘) 권 24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패림]](稗林)에도 수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이토 히로부미]]가 국내서 반출해 일본으로 가지고 간 77종 1028책의 조선시대 문헌 중 하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763488|네이버 기사]] 2010년에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될 때 함께 반환되었다. == 외부 링크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1870000,31&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계갑일록 및 관련문서(癸甲日錄 및 關聯文書)]] [[분류:조선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