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청사고)] 耿仲明 (1604 ~ 1649) [목차] == 개요 == [[명나라]], [[청나라]]의 장수. 자는 운대(雲臺). 요동 개주 사람. == 생애 == === 명나라 휘하 === 처음에는 [[모문룡]] 휘하에 있다가 모문룡이 죽자 [[공유덕]]과 함께 등주로 달아나 손원화에게 의탁해 중군 참장에 임명되었으며, 황룡이 피도를 장악하자 황룡 휘하의 이매와 바다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가 발각되어 감옥에 갇히면서 동생 경중유가 황룡을 공격해 붙잡았다가 도리어 황룡의 부하들의 공격으로 죽으면서 황룡이 경중명의 죄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손원화가 황룡을 탄핵하고 명 조정에서 조사를 하려 하자 마침 공유덕이 명나라를 배반해 등주를 공격했는데, 경중명은 요동에 있는 자들과 규합해 공유덕과 내통했고, 등주성이 함락되자 공유덕을 추대해 원수로 삼고 총병관을 칭했다. 등주성에서 황룡의 가족들을 죽였고 공유덕이 내주를 공격하는 동안 등주를 지켰으며, 경중명과 친해 항복시킬 수 있다고 여긴 손응룡이 오자 1632년 4월에 공유덕이 있는 척 해서 성문을 열어 들어오게 한 후 손응룡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공격해 손응룡과 군사들을 모두 죽였다. === [[후금]]에 귀순하다 === 명나라의 군사가 등주를 계속 공격하자 1633년 2월에 성을 버리고 바다로 달아났으며, 4월에 후금에 투항해 총병관에 임명되고 그가 데려온 군대를 천우병(天佑兵)이라 했다. 경중명이 공유덕의 부하를 빼앗아 그 부하들이 공유덕에게 알리자 공유덕은 경중명을 탄핵했으며, 경중명은 글을 올려 자신이 빼앗은 부하를 공유덕에게 돌려주기를 청하자 [[청태종]]이 조서를 올려 공유덕에게 경중명을 잘 달래고 경중명에게는 부하들을 잘 대해 예전의 악습을 탐하지 말라고 했다. === 명나라와 [[조선]] 공격에 참가하다 === [[숭덕제]]가 사람을 보내 공유덕과 함께 연회로 불러 양고기와 술을 하사하면서 두 사람에게 요양을 지키도록 했으며, 1636년 4월에 회순왕에 임명되고 숭덕제를 따라 명나라를 토벌하고 [[조선]]을 공격하는 여러 번의 출정에 참가했다. 1642년 8월에는 한군(오진초합)을 팔기로 나누자 경중명은 정황기에 소속되었으며, 9월에 갑라맥진 석명웅이 경중명이 송산과 행산의 인가에 몰래 숨었다고 탄핵했는데, 도망자는 법에 따라 처형했기에 경중명은 시신을 수습해 제물로 사용하고 그의 부하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으며, 상황이 확인되자 경중명은 백금 1천냥을 벌금으로 물었다. === [[남명]]을 공격하다 === 1643년 11월에 갑라액진 송국보, 반효화, 석명웅 등이 살해하려 하자 경중명이 알아채 태종에게 보고했고, 태종이 그들을 참수하고 재산을 몰수해 경중명에게 주었다. 1644년에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을 따라 군사를 이끌고 [[이자성]]을 추격해 망도로 귀환했다가 산서로 들어가 이자성을 공격했으며, 남하해 강남 평정에 참가하고 개선해 많은 상을 받고 요양을 진수했다. 1646년에 공유덕이 남명의 영력제를 정벌하면서 경중명은 상가희와 함께 공유덕을 따라 남하했으며, 1647년에 양국동을 우피탄에서 격파하고 형주, 기양, 무강 등의 군현을 점령하고 곽조기를 붙잡았다. 호남을 점령하고 광서를 공격했지만 전주에서 하등교, 구식사의 공격을 받고 영주로 물러났으며, 1648년에 전주의 수장인 당문요, 왕유성을 투항시켜 청군이 전주를 점령하도록 했다. 상가희와 함께 계림을 공격했지만 남명의 군사에게 격퇴당했고, 청 조정의 명으로 돌아갔다. === 최후 === 1649년에 정남왕이 되었고 경중명은 상가희와 함께 광동을 공격하는데, 원래의 병사인 2500명과 신병인 7500을 합쳐 1만의 병력을 이끌고 서득공을 좌익 총병, 연득을 우익 총병으로 삼았다. 경중명이 군사를 정비하고 출발하려 할 때 형부에서 경중명의 부하인 머이런 장긴 진소종을 도망치도록 해서 도망법에 따라 죽여야 한다고 했다. 도르곤이 경중명에게 도망자를 숨긴 징집병들을 조사하게 했고, 경중명은 300여 명을 조사해 죄를 청하자 대신들이 작위를 박탈해야 한다고 했으나, 도르곤은 선처를 결정해 진소종도 죽음을 면했다. 그러나 11월에 경중명은 관대한 명령을 알지 못하고 강서 길안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으며, 이설로는 총독 장존인이 밀명을 받아 자살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분류:1604년 출생]][[분류:1649년 사망]][[분류:명나라의 인물]][[분류:청나라의 인물]][[분류:랴오닝성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