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경주 황남동 151호분 금귀걸이3.jpg]]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_/fwGgNBHSJ2YeIw|사진 출처 : Google Arts & Culture -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금귀걸이(5세기)]]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황남리 고분군 내의 제151호분에서 출토된 5세기~6세기 경 [[신라]]시대의 금귀걸이 10여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주 황남동 151호분 금귀걸이1.jpg]] [[경주 황오동 4호분 금귀걸이]], [[경주 황남동 442호분 금귀걸이]]와 함께 전시된 모습. [[http://blog.daum.net/ppm290/4228839|사진 출처 : [신라의 황금문화] 신라인과 황금]]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6-1번지를 중심으로 422,908㎡ 대지 면적에 조성되어 있는 [[신라]]시대 고분군인 경주 황남리(황오동) 고분군 내에 위치한 151호분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황금]] [[귀걸이]] 10여점으로, 귀걸이들의 제작 연대는 5세기~6세기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황남동 고분군은 경주분지 중심에 있는 대고분군 가운데 주고분군으로 노동동(路東洞) 고분군과 노서동(路西洞) 고분군에서 남동쪽인 [[경주 월성|월성]](月城)으로 이어지는 선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분군 일대 31,565평이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었다. 이후 2011년 7월 28일에 경주노동리고분군(사적 제38호), 경주노서리고분군(사적 제39호), 경주황오리고분군(사적 제41호), 경주인왕리고분군(사적 제42호)과 함께 사적 제512호 경주 [[대릉원]] 일원으로 재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경주고분 일련번호로는 90~114호, 151~155호 봉토분 30기가 이 고분군에 속한다. 이 가운데 100·109호분이 [[일제강점기]]에, 151호분이 1965년에, 98(皇南大塚)·110·155(天馬塚)호분이 고분공원 조성 당시에 발굴 조사되었다. 이 금귀걸이들은 1965년 151호분 조사 당시에 발견된 것들이다. [[파일:경주 황남동 151호분 금귀걸이2.jpg]] [[http://www.dapsa.kr/blog/?p=25160|사진 출처 : [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신라인과 황금]] 황남동 고분군의 경우 최초 발견된 30여기 외에도 1973년 고분공원 조성 당시 담장부지를 발굴하던 중 지상에는 흔적이 없었던 지하 고분 수백 기가 추가 확인되기도 했다. 아직 이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만큼 나중에 추가로 금귀걸이들이 더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황금 귀걸이들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분류:경주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