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경주 인용사지 봉황무늬 전3.jpg]] [[https://blog.naver.com/chefjhkim/220578958012|사진 출처 : 국립경주박물관 :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2)]]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 월성|월성]] 남쪽에 위치한 옛 인용사(仁容寺) 터에서 발굴된 7세기 후반 경 [[신라]]시대의 [[봉황]]무늬 전돌.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경주 인용사지 봉황무늬 전1.jpg]] [[파일:경주 인용사지 봉황무늬 전2.jpg]] [[http://blog.daum.net/kelim/15717769|사진 출처 : 경주 인용사터 봉황무늬 전]] [[경주시]] 인용사지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전돌로, 제작 연대는 7세기 후반이다. 전돌이란 [[왕궁]], [[사찰]], [[왕릉]] 등의 건물이나 도로의 바닥을 장식하는 데 쓰던 벽돌로,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보도블록]]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이 유물이 발견된 인용사는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이자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신라)|김인문]]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의 목적으로 창건된 신라시대의 사찰로, 당시 [[나당전쟁]]의 시작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가 악화되자 이로 인해 당나라에 입조해있던 김인문이 옥에 갇혀 각종 심문을 받았음에도 끝까지 신라에 대한 절개를 지킨 것을 추승하여 만들어졌다. [[통일신라]] 때까지 존속되다가 [[고려]] 또는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돌은 화면 중앙에 [[봉황]]으로 추정되는 긴 꼬리를 지닌 새가 날개를 펴고 있고, 그 주변에는 식물무늬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보상화무늬]]가 주종을 이루는 신라 통일기 전돌의 무늬로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다만 이 새가 정말 [[봉황]]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으며, [[닭]]이나 다른 새를 묘사한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류:신라의 공예]] [[분류: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분류:경주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