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毅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문견(文堅)으로 익주 재동군 사람. == 생애 == 정익이 효렴으로 추천했고 사도로부터 일을 능숙하게 처리한다며 연양후상, 고릉현령으로 임명했으며, 문학을 세우고 예를 지켜 겸손하게 백성을 교화했다. 시어사로 승진해 관리들과 백성들이 대궐을 지키며 청해 3년 동안 이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아들 경고를 [[이응(후한)|이응]]에게 배우라고 보냈지만 169년에 이응이 주살되자 스스로 면죄되기를 청했으며, 후에 무도현령으로 임명되었다가 이옹이 죽자 이민족들이 다시 봉기하면서 익주태수에 임명되었는데, 백성들이 울면서 전송했고 그 중 700명이 저현까지 마중갔고 백수현까지는 300명이 갔다. 익주의 난리로 쌀 한 말 가격이 1,000전에 달했다가 경의가 다스린 후에 은덕이 백성에게 미쳐 번성하게 넉넉하게 하니 쌀 한 말의 가격이 8전까지 떨어졌으며, 비둘기가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와 둥지를 튼 다음 길러달라 하고 떠날 정도였다. 삼부에서 표를 올려 천거해 의랑으로 징소했지만 스스로 면직되기를 청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익주목 [[유언(삼국지)|유언]]이 표를 올려 도위로 임명했고 경의는 사람됨이 청렴하고 정직하면서 사사로운 제사를 증오했기에 자손들에게 선한 것에만 기도해 잘 다스리고, 인의로 다스려 복을 얻으라고 했으며, 81세에 사망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경의, version=3, paragraph=1)]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관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