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아프리카 총독부 총독)] || '''이름''' ||겐나디우스[br](Gennadius)|| || '''출생''' ||미상|| || '''사망''' ||미상|| || '''직위''' ||아프리카 총독|| [목차] == 개요 == [[동로마 제국]] [[아프리카 총독부]] 초대 총독. == 생애 == 578년경 아프리카 속주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을 맡았다. 비클라이오스의 요안니스가 저술한 연대기에 따르면, 무어인들을 격파하고 3명의 로마 장군을 죽인 무어 왕 가뮬레스를 손수 죽였다고 한다. 또한 에는 그와 관련된 2개의 비문이 실려 있다. 첫번째 비문에서는 [[티베리우스 2세]] 휘하의 파트리키오스이자 군대 사령관으로 언급되었고, 두번째 비문에서는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파트리키오스이자 명예 [[집정관]]으로 언급되었다. 이에 따르면, 그는 티베리우스 2세 시대에 파트리키오스이자 군 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마우리키우스 황제 시대에도 파트리키오스의 지위를 유지했고 명예 집정관을 수여받았다. 그가 언제부터 아프리카 총독이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서 확실하지 않다. 다만 589년에 또다시 반란을 일으킨 무어인들을 토벌했다는 것을 볼 때, 그 즈음부터 총독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591년 7월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서한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 총독으로 불렸다. 그는 총독을 맡는 동안 그레고리오 1세로부터 여러 서신을 받았다. 교황은 사르데냐와 코르시카의 행정 문제에 관여했고, 북아프리카에 횡행하는 [[이단]]인 [[도나투스파]]를 근절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으며, 누미디아 대주교구의 비리를 감찰해달라고 촉구했다. 595년에 또다시 무어인들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598년 9/10월에서 600년 7월 사이에 총독직을 은퇴하거나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 헤라클리우스]]([[이라클리오스]]의 부친)가 후임 총독에 선임되었다. [[분류:아프리카 총독부 총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