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82828 0%, #333333 20%, #333333 80%, #282828);" {{{#e0c9a5 ''' 게랄트 아자모아의 기타 정보 ''' }}} }}} || || {{{#!folding ▼ [include(틀:FC 샬케 04 명예의 전당)] }}} || ---- ||<-3> {{{+1 [[FC 샬케 04|{{{#ffffff '''FC 샬케 04'''}}}]]}}} || ||<-3> {{{#004b9c '''Fußball Club Gelsenkirchen-Schalke 04 e. V.'''}}}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erald_Asamoah_2016_02.jpg|width=100%]]}}} || ||<-2> {{{#ffffff ''' 이름 ''' }}} || {{{+1 '''게랄트 아자모아'''}}}[* /ˈgeːʁalt ʔazaˈmoː.aː/] [br]'''Gerald Asamoah''' || ||<-2> {{{#ffffff ''' 출생 ''' }}} ||[[1978년]] [[10월 3일]] ([age(1978-10-03)]세) / [br] {{{-1 [[가나]] 맘퐁}}} || ||<-2> {{{#ffffff ''' 국적 ''' }}} ||'''[include(틀:국기, 국명=독일)]''' | [include(틀:국기, 국명=가나, 크기=20)] || ||<-2> {{{#ffffff ''' 신체 ''' }}} ||[[키(신체)|키]] 180cm || ||<-2> {{{#ffffff ''' 직업 ''' }}}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 ||<|2> {{{#ffffff ''' 소속 ''' }}} || {{{#ffffff ''' 선수 ''' }}} ||[[하노버 96]] (1996~1999) [br] '''[[FC 샬케 04]] (1999~2010)''' [br] [[FC 장크트파울리]] (2010~2011) [br]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2012~2013) [br] [[FC 샬케 04 II]] (2013~2015) || || {{{#ffffff ''' {{{-2 스태프}}} ''' }}} ||[[FC 샬케 04]] (2013~2016 / ^^마케팅^^) [br]{{{-1 [[FC 샬케 04|FC 샬케 04 유겐트]] (2015~2016 / ^^수석 코치^^)}}} [br][[FC 샬케 04 II]] (2016~ / ^^매니저^^) [br][[FC 샬케 04]] (2019 / ^^매니저^^) [br] [[FC 샬케 04]] (2021~ / ^^코디네이터^^) || ||<-2> {{{#ffffff ''' 국가대표''' }}} ||43경기 6골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 / 2001~2006)^^ ||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가나]] 출신 축구선수. 현재 [[FC 샬케 04]]의 1군 코디네이터와 리저브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흑인 특유의 유연한 몸놀림과 개인기는 물론 골 결정력도 갖추었으며, 포스트플레이에 장점을 지니고 있다. [[난치병]]과 [[인종차별]]이라는 축구 선수로서 가장 극복하기 힘든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극복한 선수이며, 특히 흑인 선수로서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것은 인종의 벽을 허문 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다. 물론 그만큼 많은 차별을 받기도 했지만,[* 2007년 8월 FC 샬케 04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더비 경기에서 도르트문트의 [[로만 바이덴펠러]] 골키퍼가 아자모아에게 "검은 돼지(schwarzes Schwein)"라는 인종차별 발언을 하며 3경기 출장 징계를 받은 바 있으며, 이외에도 독일 축구에서 인종차별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선수로 여겨진다.] 그야말로 축구계의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 클럽 경력 == === [[하노버 96]] === [[가나]]의 맘퐁 출생이며, 1990년 12세의 나이로 가족과 함께 [[독일]]로 건너와 [[하노버 96]] 유스에 소속된 이래로 1996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1998년 오른쪽 심장과 왼쪽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비대증 증세가 발견되어 축구 경력에 큰 위기를 맞게 되었으며, 당연하게도 담당 의사는 '''당장 축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축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아자모아는 [[미국]]의 [[심장병]] 전문 의사를 찾아가 심장에 [[제세동기]]를 달아 축구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달 반에 한번 꼴로 전문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했으며, 생명의 위기를 여러 번 맞이해 아자모아가 뛰는 경기장에는 언제든지 돌발상황을 대비한 [[구급차]]가 준비되어있을 정도로 위험 천만한 상황을 감수해야 했다.] === [[FC 샬케 04]]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tatic.goal.com/103914_heroa.jpg|width=100%]]}}} || 1999년 [[FC 샬케 04]]로 팀을 옮겼으며, 2000-01 시즌과 2001-02 시즌 [[DFB-포칼]] 우승, 2005년 DFB 리가포칼 우승에 기여했다. 2005-06 시즌 초반부에 무릎 부상을 입었으나, 놀라운 회복 속도를 보이며 2달 뒤인 11월 복귀하였다. 2006-07 시즌에는 9월 [[AS 낭시]]와의 [[UEFA 유로파 리그|UEFA 컵]] 경기에서 왼쪽 하퇴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으며, 6개월 뒤인 2007년 4월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경기에서 복귀하였다. 2007-08 시즌에는 SV 아인트라흐트 트리어 05와의 DFB 포칼 경기에서 [[해트 트릭]]을 터뜨리기도 했으며, 2008년 1월 구단과의 계약을 2011년 1월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2009-10 시즌 저조한 활약을 보이며 리그에서 단 8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는 데 그쳤으며, 시즌 종료 이후 1부 리그로 승격이 확정된 [[FC 장크트파울리]]와 2년 계약을 맺어 이적에 합의하였다. === [[FC 장크트파울리]] === 그러나 2010-11 시즌 시작 전 연습 경기 도중 [[허벅지]] 부상을 입어 개막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으며, 9월 [[함부르크 SV]]와의 [[더비 매치]]에서 복귀해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1:1 무승부에 기여했다. 이후 2011년 2월에 다시 함부르크 SV와의 더비 경기를 치를 당시 활약했으며, 이번에는 결승골을 넣어 팀의 1:0 승리에 크게 공헌하며 1997년 이후 팀의 첫 더비 경기 승리를 견인했다. 하지만 시즌 종료 이후 팀이 최하위를 기록하며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자 계약이 만료되었으며, 아자모아는 친정팀인 FC 샬케 04로 복귀하기를 원했지만 무산되었다. 결국 무적 상태에서 6개월동안 [[올라프 톤]] 감독의 허가 하에 5부리그의 VfB 휠스에서 개인 훈련을 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2012년 1월 독일 2부 리그의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에 입단했다. 2013년 7월 15일 [[샬케 04]]로 이적하였다. 2군 팀에서 선수들의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선수생활을 이어오던 그는 2015년 11월 15일 은퇴를 선언했다. == 은퇴후 == 은퇴 후 샬케 2군 코치로 일했고, 이후 2021년 2월 28일, 해고된 [[자샤 리터]]의 뒤를 이어 [[FC 샬케 04]]의 팀 코디네이터직에 부임했다. 2020-21시즌 샬케가 최하위로 강등이 확정되자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하기도 했다. == 국가대표 경력 == [[독일]]에서 11년 동안 생활한 뒤 2001년 독일 시민권을 취득했고 시민권을 획득한 직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순수 흑인선수'''가 되었다.[* 이전에도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흑인선수는 몇 명 있었지만, 한 쪽 부모가 독일인인 혼혈선수들이었다. 양쪽 부모가 모두 흑인 출신은 아자모아가 최초. 다만 이것도 독일에서 줄곧 자란 경우라 가능했으며, 아무 연고가 없는 선수들은 여전히 독일 국가대표팀 발탁이 불허되었다.] 그 해 5월 [[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그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FIFA 월드컵]] 직전에 허벅지 부상을 입었으나 결국 최종 엔트리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과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결승|결승전]]에서 교체 투입되며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최초로 [[FIFA 월드컵|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는 선수가 되었다. 그 뒤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FIFA 월드컵]]에도 출전해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팀의 4강에 기여했으나, [[인종차별]] 문제로 그 해 10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네오 나치]]들은 "아자모아, 넌 [[독일인]]이 아니야"라는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닐 정도로 아자모아에게 적대적이었으며,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 민족민주당]](NDP) 또한 이민자 출신 독일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을 비하하는 데 한 몫 단단히 거들었다. 그러나 아자모아, 그리고 그보다 몇 살 어리지만 거의 같은 세대인 [[다비드 오동코어]]의 활약을 기점으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혼혈 및 유색인종 선수들이 크게 늘어나고 그들의 활약에 힘입어 통일 이후 첫 월드컵 제패에도 성공하며 비록 아자모아 본인은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하지는 못했으나 다양성 재고의 측면에서 아자모아의 커리어는 독일 축구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었다. == 수상 == 2015 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2015년 한해 국제사회의 이슈였던 난민문제를 비롯해 그동안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 여담 == [[파일:attachment/Ugly_Footballer.jpg]]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직전에 한 [[웹사이트]]에서 실시한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월드컵에 출전하는 가장 못생긴 축구 선수']]를 가리는 투표에서 1.76%의 지지(?)를 얻어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각주] [[분류:1978년 출생]][[분류:맘퐁 출신 인물]][[분류:가나계 독일인]][[분류:독일로 귀화한 인물]][[분류: 독일의 축구선수]][[분류:하노버 96/은퇴, 이적]][[분류:FC 샬케 04/은퇴, 이적]][[분류:FC 샬케 04 II/은퇴, 이적]][[분류:FC 장크트파울리/은퇴, 이적]][[분류:SpVgg 그로이터 퓌르트/은퇴, 이적]][[분류:독일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분류: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분류: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 참가 선수]][[분류:복수국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