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레온 국왕)] ||<-3><:>[[파일:가르시아 1세.jpg|width=100%]]|| ||<-3><:>{{{+1 '''García I de León''' }}}|| ||<-2> '''가문''' ||<(> 아스투리아스 왕조 || ||<-2> '''생몰년도''' ||<(> [[875년]] ~ [[914년]] || ||<-2> '''출생지''' ||<(> [[아스투리아스 왕국]] 오비에도 || ||<-2> '''사망지''' ||<(> [[레온 왕국]] 사모라 || || '''재위'''[br]'''기간''' || '''[[레온 왕국]] 국왕''' ||<(> 910년 - 914년 || ||<-2> '''아버지''' ||<(> [[알폰수 3세]] || ||<-2> '''어머니''' ||<(> 팜플로나의 히메나 || ||<-2> '''형제''' ||<(> [[오르도뉴 2세]], [[프루엘라 2세]], 곤잘로, 라미루 || ||<-2> '''배우자''' ||<(> 무니아도나 || [목차] [clearfix] == 개요 == [[레온 왕국]] 초대 국왕. == 생애 == 875년경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수도 오비에도에서 아스투리아스 왕국 13대 국왕 [[알폰수 3세]]와 팜플로나의 히메나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로 [[오르도뉴 2세]], [[프루엘라 2세]], 곤잘로, 라미루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통치를 곁에서 돕다가 909년 어머니 히메나의 묵인하에 정변을 꾸몄다가 발각되어 고손 성에 구금되었다. 하지만 카스티야 백작이자 장인인 무니오 누녜스에 의해 구출된 뒤 두 동생 오르도뉴 2세, 프루엘라 2세와 함께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체포했다. 비록 아버지를 폐위시키지는 않았지만 실권을 완전히 빼앗고 산 살바도르 데 발데디오스 인근의 볼리데스 마을에 유폐시켰다. 그 후 왕국의 수도를 아스투리아스에서 레온으로 이전했으며, 나라의 이름을 아스투리아스 왕국에서 레온 왕국으로 변경했다. 910년 12월 아버지가 그의 허락을 받고 사모라에 대한 원정을 떠났다가 귀환하던 중 중병에 걸려 사망한 뒤, 왕국을 세 개로 나눠서 자신은 레온 왕국의 초대 국왕이 되었고, 둘째 동생 오르도뉴 2세는 갈리시아 왕국의 초대 국왕이 되었으며, 셋째 동생 프루엘라 2세는 아스투리아스 국왕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두 형제의 주군으로 군림했다. 911년 군대를 이끌고 무슬림을 공격해 톨레도 또는 탈라베라나를 약탈했으며, 두에로 강 전선을 확고히 하기 위해 강변의 여러 도시에 인구를 대거 이주시켰다. 장인 무니오 누녜즈에게 로아 시 관리를 맡겼고, 또다른 카스티야 귀족 곤잘로 텔레즈는 오스마 시를 맡았으며, 부르고스 백작 곤잘로 페르난데스는 하자, 클루니아, 산 에스테반 데 고르마즈 시를 담당했다. 914년경 사모라 시에서 사망했고, 유해는 형제 프루엘라 2세가 관리하던 아스투리아스로 옮겨져 오비에도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는 카스티야 백작 무니오 누녜스의 딸 무니아도나를 아내로 삼았지만 자식을 낳지 못했고, 형제 [[오르도뉴 2세]]가 레온 왕국의 왕위를 겸임했다. [[분류:레온 국왕]][[분류:875년 출생]][[분류:91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