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종 (문단 편집) == 생애 == 아버지가 없는 결손가정 출신으로 손책이 회계태수로 있던 198년에 14살의 나이로 문하수생이 되어 손권과 독서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200년 손책이 죽고 난 후에는 금조종사가 되어 [[황조(삼국지)|황조]]를 토벌하는데도 참가해 익현의 장이 되었다가 209년 [[손권]]이 거기장군을 받을 때 서부가 된다. 221년 [[이릉대전]] 때는 손권의 주위에 병사가 없었기에 지방에 내려가 징병을 하고 두 개의 해번병 중 우부독이 된다. 후에 [[진종]]이 위나라로 배반하여 약탈을 행하자 [[하제]]와 함께 토벌했다. 221년 위나라에서 손권을 오왕으로 봉했을 때 정후가 되었다. 225년 파양사람 [[팽기(손오)|팽기]]가 반란을 일으키자 [[주방#s-2]]을 도와 반란을 제압했으며, 227년에 팽기를 사로잡아 무창에 보내 반란이 끝나게 되었다. 229년에 [[손권]]이 황제를 칭하자 부를 지으며 이 때 촉과의 맹약하는 글을 지은 것이 호종. [[손권]]이 건업에 수도를 정한 다음에 호종은 시중, 향후, 좌우령군이 되었다. 이 때 위나라의 [[오질]]이 배반하려고 한다는 풍문이 도니 호종은 [[오질]]이 오나라에 항복하겠다는 글을 세편이나 만들어 배포하여 항복을 기정사실화 하려고 했으나 이미 [[오질]]은 본진으로 돌아가 시중이 된 후였다. 230년 은번이라는 청주 사람이 오나라에 귀순을 해서 손권이 여러가지 질문을 해 썩 마음에 들어했지만 호종은 그를 믿지 못한다며 수도의 작은 직책을 맡게 한다. 비록 [[주거(삼국지)|주거]]와 [[학보#s-1]]는 그를 매일 칭찬하며 학보의 경우는 그에게 작은 직위를 주는 호종을 원망까지 했지만 결국 호종의 말대로 은번은 모반을 꾀하다가 주살당하니 그 일로 학보는 자살, 주거는 연금되었다. [[장소(삼국지)|장소]]와 [[손권]]이 [[공손연]] 사건으로 인해 싸우자 그 둘을 화해시킨 일로 편장군, 좌집법이 되었다. 237년에는 국가의 의무를 버리고 모친상을 치르러 간 사람을 죽이는 법령을 만드는 것에 찬성하고 [[전종]], [[주환]]을 거느리고 여강을 공격하려다 작전이 실패하자 남의 명령을 듣는 다는 것에 화가 난 [[주환]]에게 죽을 뻔 하지만 겨우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243년에 세상을 떠나 아들 [[호충(손오)|호충]]이 작위를 잇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