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동왕자 (문단 편집) == 낙랑공주와의 로맨스 == 낙랑국과 [[고구려]] 양국의 중립지대인 [[옥저]]에서 호동왕자가 낙랑왕 최리의 행렬을 만나면서 그 유명한 [[낙랑공주]]와의 로맨스가 시작되었다. >夏四月, 王子好童, 遊於沃沮. 樂浪王崔理出行, 因見之問曰, "觀君顔色, 非常人. 豈非北國神王之子乎." >여름 4월,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에서 유람하고 있었다. 그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그곳을 다니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구나. 그대가 어찌 북국 [[대무신왕|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리오?"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15년([[32년|서기 32년]]) 4월조 낙랑왕은 호동이 [[대무신왕|고구려 신왕]]의 아들임을 알고 [[낙랑공주|자신의 딸]]과 결혼시킨다. 이는 [[고구려]]의 팽창을 두려워한 낙랑왕이 고구려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遂同歸, 以女妻之. 後好童還國, 潛遣人, 告崔氏女曰, "若能入而國武庫, 割破鼓角, 則我以禮迎, 不然則否." 先是, 樂浪有鼓角, 若有敵兵, 則自鳴, 故令破之. 於是, 崔女將利刀, 潛入庫中, 割鼓面角口, 以報好童. 好童勸王襲樂浪. 崔理以鼓角不鳴不備, 我兵掩至城下, 然後知鼓角皆破. 遂殺女子, 出降.[*或云 欲滅樂浪 遂請婚 娶其女 爲子妻 後使歸本國壞其兵物] >낙랑왕 최리는 마침내 그를 데리고 돌아가서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후에 호동이 나라로 돌아와서 남몰래 아내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 "네가 너의 나라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면 내가 예를 갖추어 너를 맞이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다면 너를 맞이하지 않겠다." 이전부터 낙랑에는 [[자명고|북과 나팔이 있었는데, 적병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녀에게 그것을 부수어 버리게 한 것이었다. 이에 최씨의 딸은 예리한 칼을 들고 몰래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과 나팔의 입을 베어 버린 뒤에 호동에게 알려 주었다. 호동은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북과 나팔이 울지 않아 대비를 하지 못했고, 우리 병사들이 소리 없이 성 밑까지 이르게 된 뒤에야 북과 나팔이 모두 부서진 것을 알았다. 그는 마침내 자기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원주 낙랑을 없애기 위하여 청혼하고, 그의 딸을 데려다가 며느리를 삼은 후에 그녀를 본국에 돌려보내 그 병기를 부수게 하였다는 설도 있다.]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대무신왕]] 15년([[32년|서기 32년]]) 4월조 [[낙랑공주]] 쪽에서 생각하면 로맨스이겠으나, 호동왕자 쪽에서 로맨스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호동이 낙랑을 사랑했다는 모습은 기록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너희 나라를 팔아먹으면 내가 너를 맞이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보지 않겠다'라는 식의 협박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매국노]]'''의 멍에를 지우는 행동이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보면, 이때 호동의 행동이 국가적으로는 대의에 찬 결단일 수 있겠으나 인간으로서는 얼마나 냉혹하고 비정한 짓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동용 만화 역사서인 '만화로 보는 고구려 왕조 700년'에서는 이러한 호동의 양면적인 인간성을 차마 저연령층 아동에게 심어줄 수 없었는지 이 사건의 책임의 일부를 호동이 아닌 호동의 아버지 [[대무신왕]]에게로 돌렸다. 즉, "호동이 낙랑공주와 결혼 → 호동이 귀국했으나 적국의 공주와 결혼했다고는 말할 수 없어 고민 → 대무신왕이 낙랑을 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낙랑공주가 이를 도와주면 아버지가 허락해줄 수도 있을거라 믿음 →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고 최리가 낙랑공주 살해. 호동은 낙랑공주의 무덤 앞에서 대성통곡."과 같은 순서로 전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리가 [[낙랑공주]]를 죽일 가능성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호하려 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호동왕자는 낙랑공주를 이용할 가치가 있는 반간(反間)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을 뿐, 사랑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호동이 계략을 통해 낙랑을 정벌했듯이, [[자업자득|곧 그 자신도 계략에 빠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