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성씨) (문단 편집) === 상세 === 1930년도 [[조선총독부]] 국세조사 당시에는 [[김해시|김해]](金海) 6가구, [[진주시|진주]](晉州) 1가구, 본관 불명 1가구 등 총 8가구가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지역별 ● [[전라남도]] 목포부 호남정(현 [[목포시]] 호남동) - 김해 해씨 해종한(海宗漢) 1가구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수산리 - 김해 해씨 해춘수(海春洙), 해낙서(海洛瑞), 해경욱(海京旭) 3가구 ●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하촌리(현 [[나주시]] 반남면 성계리) - 김해 해씨 해대례(海大禮), 해일순(海溢順) 2가구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 진주 해씨 해종수(海宗洙) 1가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면(현 영암읍) 농덕리 - 본관 불명 해학중(海學仲) 1가구 ※ 8가구 모두 전라남도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영암군에 김해 해씨 3가구, 진주 해씨 1가구, 본관 불명 1가구, 그리고 나주시에 김해 해씨 2가구, 목포시에 김해 해씨 1가구가 나타났다. 이중 전라남도 목포부 호남정(현 목포시 호남동)에 살던 해종한(海宗漢)씨는 해씨가 [[홍무제|명 태조]] 때 중국에서 이주해 온 귀화성[* 이와 관련하여 명나라의 유명한 청백리였던 [[해서(명나라)|해서]]가 있다.]이라고 전하였으며,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에 살던 해종수(海宗洙)씨는 그 내력에 대해 당시로부터 약 50년 전[* 1880년경]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이주해왔다고 증언했다. 1985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김해 본관 이외에 진주 본관이 사라지고, [[영암군|영암]](靈巖)과 [[함양군|함양]](咸陽) 본관이 새로 나타났다. 인구는 전국에 270명(김해 150명, 영암 80명, 함양 10명, 기타 22명, 미상 8명)으로 나타났다. 2000년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전국에 322명(김해 149명, 영암 121명, 함양 48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영암 본관과 함양 본관이 다시 사라지고 김해 142명, 기타 4명 등 전국에 146명으로 인구가 대폭 줄었다. 아래 유명인들을 제외하면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해덕진(海德珍, 1976. 2. 21 ~ )[*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1기 수료.]과 전직 복싱 선수 해학기(海學基)[*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목포시]] [[죽교동|죽교3동]]에 살았다고 한다.]가 유명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