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일관계 (문단 편집) === 군사 교류 === [[파일:external/www.mod.go.jp/20131209_ph002.jpg]] [[파일:external/www.mod.go.jp/20131209_ph003.jpg]] 2013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초급장교 교류행사. [[한국군]]과 [[주일미군]], [[자위대]]의 위관급 장교들이 참석했다. 일반 한국 국민들이 감정적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정부차원에서는 군사적으로 간접적인 그리고 실질적인 교류가 오고가고 있다. 1950년대부터 함께 [[미국]]을 필두로 한 반공전선을 수행했으며, [[자위대]]의 출범에는 [[6.25 전쟁]] 당시 [[한반도]]로 파병된 [[주일미군]]의 공백이 컸다. [[6.25 전쟁]] 이후 53년을 방위청으로 지낸 방위성이 성급으로 격상되는데는 [[북한]]의 도움이 컸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교류의 대부분은 미국의 반강제적인 압력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당장 우리나라가, 단독으로 일본과 대규모 군사교류를 갖는 경우는 전무하며 대부분 미국의 요청(및 좌판을 깔아 주선함)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파일:external/www.sisainlive.com/3374_6735_2714.jpg]] 김용환 인천해역방어사령관에게 경례하는 [[해상자위대]]원들. [[해상자위대]] 소속의 [[연습함대]]가 2007년에 [[인천]]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파일:/image/001/2007/03/14/kp1_070314053900.jpg]] 2007년에 방한했을 당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분향하는 일본 사이토 다카시 [[합동참모의장|통합막료장]]. 연합작전은 하지 않지만 [[위관급 장교|위관]]이나 [[영관급 장교|영관]], [[사관생도]] 등의 인적교류는 이미 빈번하게 이뤄지는 편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자위대 간부후보생학교의 [[후보생]]들이나 따라온 [[자위관]]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기도 했는데, 현충원은 [[일본군]]과 싸우던 [[독립운동가]]들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절대 무리지만 일본에서 순직자 대체 추도시설이 생길 경우, 한국의 정부 관계자가 참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미국]]은 밀고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당의]] [[조선로동당#s-4.4|군사위원회]]가 정부의 국방기능을 앞서는 [[북한]]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의 군사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있다. [[합동참모본부|합참]] 등이 그렇다. [[정복]]도 비슷한 편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이나 [[중국]] 등에 대한 견제 노선으로 [[한국군]]과 [[자위대]]가 손을 잡자는 주장이 있다. 다만, 과거의 역사적인 문제나 [[독도]]같은 영토분쟁의 문제 때문에 앞으로의 일본 정부가 모든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2010년대 기준으로 [[한중관계]]가 밀월관계라고 불릴 정도로 급진적으로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일본과는 서로 못죽여서 안달난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보니 한국군과 자위대가 손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드논란 이후에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실 지리적으로 볼때 순망치한의 관계라 아무리 한일관계가 악화되도 그건 국민여론만 그렇고 군사적 교류는 지속되고 있었다. 일단, 중국이 북한에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고, 거기다 중국과의 무역에서 얻는 경제적 이익이 굉장히 큰 우리나라가 중국을 상대로 일본과 손을 잡을지는 심히 미지수다. 당장, 최근 일본이 반대하고 난리친 안중근 기념관 설립에서 우리나라와 중국이 연대체제를 구축했다지만, 이건 그냥 일본이 막장이었던 것이고. 현안을 덮어두고 군사적인 부분에서 이익만 챙기자는 식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일관계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당면한 적국인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데 자국의 동맹국들인 주요 파트너인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2013년 11월 주일대사로 부임하는 [[존 F. 케네디]]의 딸 캐럴라인 케네디의 부임 행사에서 미 [[국무장관]]인 [[존 케리]]는 '''"제발 저 두 국가 좀 어떻게 해봐라."'''고 이례적으로 거론을 했다. 보통은 덕담 수준만 오가는 자리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142311305&code=970201|관련기사]]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미국의 대아시아 외교 실패가 원인이다. 미국은 한일 양국이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라는 점을 간과한 데다가, 아직까지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는 한국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가까운 역사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한일 양국에서 역사 갈등 문제가 터졌을 때, 미국은 애매한 반응만을 보여주었는데, 이로 인해 일본은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주는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아베 신조 정권의 탄생을 계기로 더욱 막나가는 도발을 하게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저지른 각종 만행들과, 위안부, 독도문제는 단순히 '일본이 왜곡하는 역사를 재조정' 하는 문제가 아닌, 양국의 국가관계를 재조정하고, 나아가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은 결코 저 문제들에 대해서 양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정부차원에서 추진하던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 사실상 이명박 정권 시기에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2014년 12월에 결국 미국의 중재로 북한 관련 정보에 대해서 양국이 미국에 정보를 요청하면 미국이 중간에서 나눠주는 식으로 공유하는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을 맺었다. 그런데 이 약정도 이명박 정권 때 정부 주도로 단독 처리하려다가 들켜서 결국 '매국노냐?'는 욕을 먹은 것처럼 국방부가 단독으로 서명한 뒤에 국회에 보고해서 국회 국방위와 네티즌들에게 욕을 무수히 먹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2761797|#]] 박근혜 정권 시절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위안부 협상]] 체결 이후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 이루어졌으며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간의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박근혜 정권은 2015년까지만 친중일변도 였고 심지어 중국 열병식까지 참가했지만 북한의 핵 실험 사태가 터지자 후 중국에게 SOS을 요청했다. 하지만 중국은 말로만 유감이다 하고 북한을 방임하자 미국과 사드배치 협상을 시작했으며 친중에서 친미로 급격하게 선회했다. 한국,미국,일본관계에서 완전히 수세에 몰려 버린 박근혜 정권은 미국의 압력과 중국의 위협에 결국 근 1년 만에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논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처리했으며 국민의 반발과 중국의 반발은 덤이였다. 이미 중국과는 척을 졌고 미국에게는 진정성을 의심을 받는 상태에서 또 다시 사드 배치를 무효화한다던가 이러면 정말 중국에겐 얕보이게 되며 호구처럼 볼것이다.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한술 더떠서 상호군수지원협정(ACSA)까지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상호군수지원협정(ACSA)까지 체결하면 한국군이 일본본토에,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중국의 북한 방임속에 한-미-일간의 3각 연대는 국민감정과 다르게 공고해지는 중이다. 한국 정부에서 [[제주도]] 국제 [[관함식]]에서 [[욱일기]]를 자제해달라고 하자 해상자위대는 차라리 불참하겠다, 예의가 없다며 그냥 달고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http://imnews.imbc.com/replay/2018/nwtoday/article/4850836_22669.html|MBC]],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55&aid=0000677803|SBS]] 그러나 이에 대응해 한국측에서 좌승함을 [[독도함]]으로 변경하자 불참을 선언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주 국제관함식 자위대 욱일기 논란]] 참조.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두달간 4회에 걸쳐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2020년대]]에 들어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패권주의식 외교가 심해지고 [[북중러]] 3국이 밀착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한국과 일본이 군사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