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동훈/생애 (문단 편집) == 유년/청년기 == [[1973년]] [[4월 9일]], [[서울특별시]]에서 [[한명수(1940)|한명수]]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한명수는 당시 세계 1위 마그네틱레코딩헤드 제조회사인 아프라이드 마그네틱스의 한국 법인인 AMK[* [[중국]]의 에어로 프라모델 제조사 [[AMK]]와는 별개의 기업이다.]의 대표를 역임했다.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121959|#]]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충청북도]] [[청주시|청주]]로 이사가서[* 당시 아버지가 대표로 재직 중이던 AMK의 공장이 청주에 위치하고 있었다.] 운호국민학교를 4학년까지 다녔고, 5학년이 될 때 다시 [[서울특별시|서울]] 강남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사를 온 이후[* 한동훈의 아버지가 청주 공장 임원으로 재직하다 한동훈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 서울 본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서울 서초구 [[잠원동]]으로 이사했고 한동훈은 신동초등학교로 전학했다.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206100014|#]]] [[강남 8학군]]의 [[서울신동초등학교]], [[경원중학교(서울)|경원중학교]], [[현대고등학교(서울)|현대고등학교]], 그리고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에 따르면 [[미술]]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http://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702345|#]] 또한 학교 동기동창과 법조계 선후배들에 따르면 한동훈에 대해서 '[[리더십]] 있는 모범생이었지만, [[반골]](反骨) 기질도 있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 '''“강남 8학군에서 초-중-고 다니며 반장 도맡아”''' 한 장관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쭉 [[서초구]]에 살았고 이후에도 [[서초동]], [[삼성동(강남구)|삼성동]], [[도곡동]] 등 거주지가 [[강남구]]와 [[서초구]]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른바 ‘8학군’ 학창 시절 친구들과 꾸준히 교류를 하고 있다.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206100014|한동훈 연구]] 중학교 진학 후 3년 내내 전교권 성적을 유지하면서 반장을 도맡아 하고 친구가 많았던 한동훈은 요즘 말로 ‘인싸’ 였다. 한 동창은 “중학교 때 같은 반에서 이른바 모범생 한 명과 문제아 한 명이 비슷한 시기에 전학을 가게 됐는데, 선생님이 반장인 한동훈에게 모범생을 위한 롤링페이퍼를 반 친구들에게 돌려 적어주라고 시키셨다. 그랬더니 동훈이가 왜 그 친구만 해줘야 하느냐,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걸 봤다. 반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여서 다들 동훈이를 좋게 생각했고, 불량한 태도의 아이들도 동훈이가 반장인 반에서는 얌전히 지냈다."라고 말했고 다른 한 동창은 “당시 학교에서 한동훈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작고 하얘서 눈에 띄었는데 공부까지 잘하니 유명했다.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있는 것은 물론 남자애들 사이에서 평이 좋아 반장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https://shindonga.donga.com/3/all/13/3518176/1|#]]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hanpi.png|width=100%]]}}} || || {{{#ffffff '''학창 시절'''}}} || [[현대고등학교(서울)|현대고등학교]]에 진학 후에도 전교권 성적을 놓치지 않고 반장을 도맡아 했다. 현대고에서는 1등에서 3등까지 전교생이 볼 수 있도록 [[방(동음이의어)#s-1.2|방(榜)]]을 붙여뒀는데, 한동훈의 이름은 항상 그곳에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https://youtu.be/F5yj83XZRsc?t=1|#]] 같은 반이었던 한 고등학교 동기는 “(한동훈이)워낙 공부 잘하고 인기 있는 걸로 유명해서 처음 같은 반이 됐을 때는 솔직히 다른 세상 사람 같기도 했는데 의외로 모든 아이들과 잘 지냈다. 이른바 문제아, 꼴찌로 불리는 친구들과도 두루두루 친했다”라고 회상했다.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206100014|#]]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동훈중학교졸업사진.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동훈_현대고.jpg|width=100%]]}}} || || {{{#ffffff '''1989년 경원중학교 졸업사진'''}}} || {{{#ffffff '''1992년 현대고등학교 졸업사진[* 배우 [[이정재]]와 동기다.]'''}}} || 1992년, 현대고를 졸업 후, 서울대 법대에 92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시절, 서울대학교 학보사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으며,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 [[SNUPO]]의 1기 부원이기도 했다. 실제로 1992년 10월 13일 스누포의 제1회 정기연주회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다. [[https://www.snupo.org/?mid=main&act=dispConcert_membersPerson&person_srl=891777&l=en|#]]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동훈20대.pn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동훈대학교졸업사진.jpg|width=100%]]}}} || || {{{#ffffff '''대학생 시절'''}}} || {{{#ffffff '''1996년 서울대학교 졸업사진'''}}} || 당시 서울대학교 법대는 신입생들을 입학시킨 후 2학년 때 사법학과와 공법학과로 나누어 보냈는데[* 과거 서울대 법대에 법학과와 행정학과가 있던 시절의 흔적이며, 법대 정원을 늘리기 위해 운용한 편제였다. 일반적으로 사법학과가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갔고, 공법학과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갔다. 원래 [[민법]]이 법학의 꽃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운동권이 공부를 못한다 그런건 당연히 아니고 [[정성호(정치인)|정성호]]처럼 학생운동할거다하고 사법학과간 흠좀무한 사람도 있다.], 사법학과를 지망했지만 성적 서열에 밀려 공법학과로 진학하게 된다. 인생에 밀려본 경험이 거의 없던지라 거의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일에 충격을 받고서 절치부심하여 열심히 공부한 끝에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서울대학교 법과대학]] 4학년 재학 중인 1995년, 만 22세에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1995102500751|#]][*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생 중에서도 재학 중 사법시험 합격을 하면 상위권이다. 4학년 합격은 대단한 수재며, 3학년 합격자는 천재로 소문이 난다. 검찰 고위직 중 [[진경준]], [[안태근]] 등이 3학년에 사시에 합격했는데 모두 천재로 유명했다. 사법고시 이전 고등고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김기춘]] 또한 해당된다.][* 최연소 검사로 유명한 [[우병우]]의 경우 4학년 합격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후 1996년, [[사법연수원]] 27기로 입소했다. 연수원에서 함께 스터디를 했던 이의 말에 따르면 한동훈은 이른바 '놀 줄 아는 연수생'이었다고 한다. [[https://youtu.be/F5yj83XZRsc?t=30|#]] 또한 나이가 어려 조의 총무를 맡아 복사를 담당했으며 술을 한 잔도 하지 못해 그가 검사를 지망했을 때 걱정한 동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국회 법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최기상]] 의원의 질의에 "연수원 시절 술을 마시지 않아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었다"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동훈연수원졸업사진.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동훈연수원수료.jpg|width=200%]]}}} || ||<-2> {{{#ffffff '''1998년 연수원 수료 사진'''}}} || 이후 [[1998년]] 5월 연수원 수료 후 입대하여, 같은 해 [[강릉시]]에 위치한 [[대한민국 공군]] [[제18전투비행단]]에서 [[군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시작해[* 단기 군법무관은 입대하여 훈련은 다 같이 받고 이후 추첨으로 군종을 나누는데, 역시 도시 근처의 비행단에서 복무할 가능성이 높은 공군이 인기가 가장 높다. 육군은 웬만한 사단, 군단, 심지어 군사령부에 가도 대부분 경기, 강원도 최전방이지만, 공군 중 법무관이 배치되는 규모의 부대는 모두 후방이며 도시 가까이에 있다.] 2001년 4월, [[대위#s-3.4.4]]로 전역해 3년간의 군 복무를 마쳤다. 이때, 소속 부대 간부(중령)을 혼자 [[인지#s-1.1.2|인지수사]]해 [[수뢰죄]]로 구속하고 이에 반발한 단 헌병대장을 체포한 적도 있다고 한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105/117304438/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