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나라당 (문단 편집) == 성향 == 전신인 [[신한국당]] 시절 [[IMF 외환위기]]로 [[김영삼]]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이 인기를 잃으면서 보수 내부의 헤게모니를 상실했고 뒤이어 등장한 삼김청산을 외친 개혁적인 성향의 [[이회창]]을 중심으로 보수가 재편하는 와중에 '''한나라당'''이 창당했다. 이회창은 삼김청산 과정에서 당내 다수파이자 김영삼의 계파인 [[상도동계]]를 적으로 돌렸고 그러면서 강경보수 세력인 [[민정계]], [[공화계]]와 손을 잡았다. 이로 인해서 보수화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신한국당]] 시절보다는 확실히 우경화된 당의 정치적 색깔이 도드라졌다. 다만 이회창 본인은 민정계, 공화계와 정치적으로 협력한다 하더라도 성향은 개혁보수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회창이 당권을 잡고 있던 시절에는 당내 개혁보수 세력을 수혈하며[* [[남경필]], [[정병국]], [[원희룡]], [[유승민]], [[오세훈]], [[권영세]], [[이재오]] 등.] 이들의 입지도 매우 건재했다. 그러나 이회창이 [[제16대 대통령 선거|2002년 대선]] 패배 이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이 후 당대표로 취임한 친YS계 [[최병렬]]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건]]으로 조기 사퇴하면서 한나라당 내 개혁보수 세력의 당내 입지는 매우 약해졌다. 이 때 소위 [[독수리 오형제]]라고 불리는 개혁파 의원 5명과 [[김원웅]] 의원 등 개혁주의 성향의 인물들이 [[열린우리당]]으로 이탈하기도 했다. 2004년 [[박근혜]]가 탄핵 열풍 속에서 당권을 차지하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17대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둠과 동시에 당의 중심으로 부각하면서 한나라당의 정치적 권력은 [[이회창]]으로 대표되는 [[민주계]]와 개혁보수에서 [[민정계]], [[공화계]]로 넘어가게 된다. 강경 보수 성향의 공화계 의원들과 [[2006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합당 이후 당에 영입된 민정계 의원들은 [[박근혜]]가 휘두르는 막강한 당권을 중심으로 뭉치며 한나라당의 주류를 차지하였고 여기에 한 때 [[이회창]]과 [[김영삼]] 계열이었던 [[유승민]], [[김무성]], [[이혜훈]], [[서청원]] 등의 인사들도 박근혜 진영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단 서청원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모두 박근혜의 곁을 떠나 비박계가 되었다.] 15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한나라당의 정치적인 대격변이 일어났던 시기가 바로 박근혜가 당권을 잡았던 2000년대 중반으로, 이전까지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 한정으로 인기를 얻었던 [[박근혜]]는 이 시점을 계기로 한나라당의 유력 대권 주자 자리에까지 올랐다. 2007년 대선경선 시즌이 시작되자 온건보수 세력들은 [[이명박]]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으로 집결하였고 중도실용 노선을 천명하며 자유보수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는데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녹색보수주의]]의 맹아를 보여줬다. 경제정책으로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과거 박정희식 친대기업적 관치경제가 혼합된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다만 신보수주의적인 정체성은 명확해서 [[친미]], 친서구적인 외교노선을 뚜렷이 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집권 중후반기부터 불어닥친 정권의 부정부패와 무상복지 열풍으로 인해서 다시 온건보수는 헤게모니를 상실했고 친이계는 당내 입지를 크게 상실하였다. [[2012년]] [[2월 13일]]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의사가 강력히 반영된 것[*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2004년 한나라당 대표에 오른 후에도 당명을 선진한국당으로 교체하려고 했으나 당내 의원 반발로 중단했다.]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나라당은 15년만에 간판을 내리게 된다. 단 비법인사단(社團)으로서의 정당 자체는 [[2020년]] [[미래통합당]] 창당 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2011년]] 말 박근혜 비대위 출범 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를 발판으로 박근혜는 새누리당의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박근혜는 2008년 국회의원 퇴임 이후 야인 생활을 하던 [[김종인]]을 캠프로 영입, [[경제민주화]] 슬로건을 내설고 대선판에 뛰어들어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정작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도리어 강경보수 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보수정당은 우경화되었다고 평가받는다.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은 과거보다 좌경화되어 친대기업적인 관치경제적 요소가 늘어나고 경제적 자유주의가 퇴조하였다는 평가가 있다. 여기에다가 [[사회보수주의]]적인 성향이 강화되어서 사회 전반의 영역에 걸친 보수화를 추구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새누리당은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 여부를 놓고 [[친박]]계와 [[비박]]계가 크게 갈라서며 보수의 분열이 일어났고, 이에 비박계 의원들은 [[바른정당]]을 창당해 떨어져 나갔다. 이에 새누리당은 2017년 2월 13일, 창당 5년만에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개정하고 경선을 통해 [[홍준표]] 경남지사를 대선후보로 출전시켰다. 그러나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헌법재판소로부터 헌정사삭 최초의 대통령직 '''파문''' 선고를 받고 물러나면서 자유한국당의 입지는 매우 위태로워졌고, 결국 5월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역대 대선 사상 '''최대 표차'''로 패배하며 정권을 내주는 치욕을 당하고 야당이 되었다. 야당 시절 자유한국당의 성향은 새누리당 시절의 [[사회보수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가미된 포지션이었다. 7월 전당대회를 통해 홍준표 대표 체제를 출범시키고 박근혜를 출당조치 시키는 초강수를 두었으나, 탄핵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2:3'''이라는 참패를 당하며 홍준표 대표는 물러나게 된다. 이로 인해 홍준표 대표를 밀었던 비박계의 당내 입지가 매우 위태로워졌으며, 이를 틈타 2019년 2월 박근혜 정부의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전 총리가 대표가 되어 다시 [[친황]], [[친박]]계의 당내 입지가 다시 높아지는 듯 보였다. [[2020년]] [[2월 17일]], 황교안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당명을 '''[[미래통합당]]'''으로 개정했다. 미래통합당 창당 당시 [[새로운보수당]]과 신설합당하는 형태로 법인을 재등록했기 때문에 1997년 11월부터 이어져오던 한나라당의 법인은 완전 소멸되었다. 이 후 역사는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