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론토/역사 (문단 편집) === 영국령 캐나다 === ||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파일:FortYork1804.jpg|width=100%]]}}} || || '''{{{#fff 1793년 완공된 포트 요크}}}''' || 한편 토론토의 존재를 알게 된 [[프랑스]]는 [[1750년]] 상인들을 통해 루이 요새(Fort Rouillé)라는 이름의 모피 교역소를 세우지만, 얼마 가지 않아 [[7년 전쟁]]이 터지며 파괴된다. 7년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결국 토론토 일대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동시기 영국에게 할양된 [[퀘벡 주]]와 함께 영국령 캐나다의 일부가 된다. 영국인들은 당시 토착민들이었던 애니쉬나비 족과 협상을 통해 토론토 일대의 영토를 가져왔으며, ~~항상 그래왔듯이~~ 지역에 '요크'(York)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요크는 미국에서 쫓기듯 도망쳐 온 10만 명의 영국계 충성파(Loyalists)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고,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며 성장하기 시작한다. ||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파일:Celebrating_the_incorporation_of_the_City_of_Toronto.jpg|width=100%]]}}} || || '''{{{#fff 1834년 토론토 시의 승인을 축하하는 시민들}}}''' || [[1793년]] 영국령 캐나다 총독 존 심코(John Simcoe)는 [[미영전쟁]]의 전운을 감지하고, 행정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캐나다의 수도를 본래의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Niagara on the Lake)에서 요크로 옮긴다. 곧이어 발발한 미영전쟁은 요크마저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지만, 머지않아 토론토 주교였던 존 스트라찬(John Strachan)이 [[미군]]과 협상에 성공하며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1834년]] 캐나다는 요크의 이름을 원주민들의 언어에서 따 온 토론토(Toronto)로 바꾸었으며, [[영국인|영국계]], [[아일랜드인|아일랜드계]][* 동시기 [[아일랜드 대기근]]이 찾아오며 고향 땅을 떠나 북아메리카로 향한 아일랜드인들이 정말 많았다.], [[흑인|아프리카계]][* 대부분 노예 출신이었으며, 영국계 충성파들도 드물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